수학과는 대체 뭘 배우는 거지?
지난 글에서는 어떻게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써 보았다. 그리고 공대와 수학과 사이에서 고민했던 부분을 글로 풀어 보았는데, 이번에는 왜 수학과를 선택했는지 짧게 적어보려 한다. 아직 현재 진행 중인 대학원 도전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가끔 한숨 쉬며 '수학과 왜 왔지'라고 농담조로 말하는 나에겐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 글은 대학원 도전에 대한 것 자체만 보고 싶은 분들께는 굳이 추천드리고 싶지 않은 글이기도 하다. 수학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놓을 것이기 때문에, 대학원 도전과는 조금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아, 아직 넘기지 마시라. 나도 수학이 어려운 거 잘 안다. 이 글의 독자가 누가 될진 모르지만, 설령 수학 전공자라 해도 수학에 대한 정의를 줄줄이 읽고 싶진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수학이 무슨 의미인지이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덧셈 뺄셈을 배우던 시절. 나는 남들보다 아~~주 조금 성취가 빨랐다. 정말 천재들도 많이 있겠지만, 평범하게 부산에서 살아온 내 주변엔 없었고, 내 주위에선 내가 바로 그 천재였다.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나보다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사이에선 내가 천재인, 뭐 그런 간단한 것이다. 그때 당시에 나는 굉장히 그 사실에 우쭐해 있었고, 또 좋았다.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나도 어린 시절에 수학으로 크게 칭찬받은 사건이 몇 번 있었고, 그것은 자연스레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시간을 건너뛰어 대학 원서를 쓸 때로 가보자.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전공, 즉 과를 골라야 하는데, 그때의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미래? 직업? 그냥 뭐 적당히 어떻게 잘 알아서 되겠지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심지어 원서를 쓰러 교무실 문을 열 때도 나는 결정을 못한, 정확히는 안 한 상태였다.
담임 선생님께서 어디로 원서를 쓰고 싶은지 물어보셨고, 이화여대라고 얘기하고 한 대 맞았다. (이화여대가 어떻다는 게 아니고, 나는 남자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친구가 갔던 대학 이름을 얘기하자 거기는 성적이 안될 것 같다고 하시자 또 생각이 없어졌다. 그렇게 멍하게 있자 선생님이 한 마디 하셨다.
"수학 좋아하니까 수학과 어때?"
이 한마디가 나의 평생을 결정하게 되었다. 만약 이때 내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컴퓨터 공학과를 진학했다거나, 그냥 친구들 많이 가던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면 지금 나는 수학으로 박사를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한마디가 나를 수학으로 이끌었다. 혹시 무슨 수학에 대한 깊은 사랑, 정말 영화 같은 계기를 기대했던 분들께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대학에 오니 수학은 정말 새로운 학문이었다. 수학과가 아닌 사람에게 수학과를 설명할 때 내가 자주 사용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1+1이 왜 2인지 증명해요."
사실 엄밀히 말하면 수학과가 저런 것만 하는 것은 아니며, 저런 것 만이 진짜 수학이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학이랑 다른 수학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수학에 매료되었다. 이제야 진짜 수학을 본 느낌? 막 종이 치고 천사가 내려오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고, 서서히 뭔가 빠져들어갔다.
당연히 빠져들어 가니 재미있고, 재미있으니 성적이 잘... 나오진 않더라. 놀만큼 놀아가며 공부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성적은 그냥 그럭저럭 이었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그리고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수학과 대학원을 선택하게 되었다. 더 알고 싶어서. 수학이 재미있어서.
아, 어려운 질문이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만 나보다 수학적 지식이 훨씬 월등한 사람이 혹시나 볼까 봐 창피해서 멋있게 딱 정의 내리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수학에서 뭔가 인류의 위대함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보고 있다. 인간이 만든 논리 체계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그 넓이와 깊음은 정말 나를 너무 매료시킨다. 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내가 공부한 만큼 수학에 대한 내 시야가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고 나니 '이만큼 넓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이 있다니!
인간이 우주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관심 없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딱히 우주, 블랙홀, 외계인 이런 단어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우주 맨 끝에는 이렇게 생겼대'라는 얘기를 해 주면 한번쯤은 귀가 솔깃할 것이다. 본능적인 호기심이다. 나도 수학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수학은 진리, 신, 세상의 법칙과 같은 단어들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진 않는다. 수학을 광신도같이 찬양 하진 않는다. 수학은 인간이 만든 논리체계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넓고 깊은 바다와 같아서, 그 끝이 궁금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수학이란 끝이 없는 인류 지성의 집합체이다. 그런 수학을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수학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다는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