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외는 소외를 품을 수 있는가

영화 <디태치먼트> 리뷰

by 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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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냉소'라고 답한다.


'알빠노'는 말할 것도 없이 싫고, '누칼협'은 더 끔찍하게 싫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공감의 힘까지 무시하고 타인의 비극을 일관되게 깔아뭉개는 차가운 비웃음들이 이 사회를 망치고 있고 망칠 거라고, 나는 꽤 극단적으로 장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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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교사가 있다.


정교사는 아니고, 기간제 교사다.


고용의 안정성을 갈구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오히려 기피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거다.


어떤 상황으로 어느 학교 교사 자리에 구멍이 나면, 다음 정교사를 구할 때까지 그 자리를 땜빵한다. 후임이 구해지면 자신을 필요로 하는 다른 구멍을 찾아 미련 없이 떠난다. 그게 본인이 해야 할 일, 본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삶은 조각이 나 있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 일어난 비극을 목도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한 줄 금이 그 다음을 살아가는 하루하루 계속 이어져 나갔을 것이다. 그게 그가 정착을 포기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장담은 할 수 없고 미약한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 두 아이가 있다.


한 아이는 문제아만 가득한 교실의 한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 숨어 있어도 그녀를 향한 비난과 모욕이 집요하게 그 뒤를 따라 붙는다. 집에서도 화살을 피할 수가 없다. 아웃사이더는 울타리 속에 있어도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한다. 그 누구보다 구원에 목말라 있다.


한 아이는 마치 야생마 같다. 학교, 가정, 어디에도 속한 곳이 없다. 속한 곳이 없으니 돌아갈 곳도 없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 품어줄 곳도 없다. 보호받아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른다. 하루를 살기 위해 스스로를 폭력의 구렁텅이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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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가 한 교사를 만났다. 학교 안에서, 학교 밖에서.


두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을 만났다. 그들에게 그 교사는 처음으로 자신을 둘러싼 폭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따뜻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때로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들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만은 똑같았다. 교사 또한 그 아이들과의 만남을 말미암아 마음 속에 쳐 둔 벽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 그렇게 한 걸음 더 솔직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는 세 사람의 내면 속에 잠재된 우울이 공명하는 순간이라고 하겠다.



문제는 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다. 공교육은 본격적인 사회의 시작이고, 그래서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근간 중 하나이다. 그런데 학교가 무너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보람을 느낄 수 없는 교사들이 쥔 교편에는 힘이 없고, 무서울 게 없는 아이들은 탈선을 주저하지 않는다. 근간이 무너지니 사회안전망에도 갈수록 금이 가고, 그 틈을 폭력이 메운다. 그들을 가장 밀접하게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처참하게 무너져 가고 있으니, 개인은 붕괴를 막을 힘이 없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엔딩을 제시한다. 피 흘리는 새드 엔딩과 눈물로 껴안은 해피엔딩.


엔딩을 맞이하는 그들에게는 전혀 잘못은 없다.


깨져버린 생의 조각들에 찔리느라 다정함을 건네는 방법도, 다정함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서툴렀던 사람들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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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의 피 흘리는 벽과 단순한 풍경을 보았다. 나의 우울한 영혼과 썩어버린 나무를 보았다.

그것은 구역질 나는 마음의 냉정함이었다.


- 에드거 앨런 포, <어셔 가의 몰락>





숨막히는 냉담함 앞에 무릎 꿇고 무너지는 세상, 그 한가운데에서 조각난 삶이 깨어진 파편들을 진정으로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인가.


소외가 소외를 품을 수 있을 것인가.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헨리 바스는 엉망이 된 교실에서도 애드거 앨런 포의 구절을 읊을 것이다. 그렇게 선 교단에서, 그리고 에리카를 비롯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헨리는 끊임없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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