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부리 Nov 30. 2022

[호주사는 김기자의 인터뷰] 02.멜번 천윤화 작가

2021년 인터뷰 기사모음

“멜번은 아티스트와 창작물이 존중받는 도시”


미대 졸업 후 2년 호주서 활동, 현재 한국서 개인전 

“호주 삶에서 ‘여유’ 배워.. 나를 위한 시간 갖는 것 중요” 

“낯선 호주에서 길 잃지 않으려고 주위를 돌아본 것이 작업의 기초가 돼”


천윤화 작가


한국에서 호주 대학 출신 아티스트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청년 아티스트 천윤화도 멜번 RMIT(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에서 미술(Fine Arts) 학사 과정을 마치고 2년간 호주에서 활동을 하다가 현재는 한국에서 개인전 등 다양한 전시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한국에서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에도 목소리를 냈고,  최근 전주 아트 갤러리에서 협업 작가들과 전시를 했다. 체험형 편집숍 ‘패브리크(FABRIK)’ 오픈기념 ‘월 니팅(Wall Knitting)’ 작품을 설치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때의 경험이 작업세계의 기초가 됐다. 현재는 물리적 공간을 떠나 보이지 않는 현미경 속 작은 세계나 우주의 공간 등을 평면회화, 설치, 종이 드로잉으로 풀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원어민(호주인)  교사로부터 호주와 멜번의 미술교육에 대해 듣게 된 것이 천 작가의 호주 유학(2006년)으로 연결됐다. 영어 공부의 목적도 있었고 예술 과목 위주로 VCE(Victorian Certificate of Education: 빅토리아주 대입과정)를 준비하며 대학에 입학했다. 그에게도 낯선 땅에서 시작한 유학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Unrealistic Reality (2018,80x117, 판넬아크릴 50호)


“언어가 유창하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답답함이 컸었다. 한국에서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신나게 놀았는데 호주에서는 말을 못 하니 ‘그냥 가만히 있자’ 하던 때가 많았다. 그런데 결국 시간이 흐르면 언어도 늘기 마련이고 사람의 본 성격은 바뀌는 게 아닌지 어느샌가 활기찬 옛날의 나로 돌아와 있는 것을 느꼈다. 아주 오래 걸렸지만..!” 

그런 기간 중 마음을 잡는 방법은 ‘일기쓰기’였다.
“당시엔 인터넷도 안되니 앉아서 일기를 한두 시간 정도 썼다. 귀여운 스티커도 붙여가면서, 그렇게 답답하고 화나고 했던 마음을 쏟아내면서 나의 길을 찾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멜번은 길거리 예술로도 유명한 도시다. 그래피티 스피릿(graffiti spirit)이 살아 숨 쉬는 골목 호시어 레인(Hosier Lane)에서부터 광활한 대자연의 감동이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까지 많은 영감을 받았다. 

“가장 많이 방문했던 장소는 멜번의 NGV(National Gallery of Victoria) 미술관과  랜 포터센터(The Lan Potter Centre)였다. 특히 NGV는 연간 회원권을 끊고 집처럼 수시로 드나들었다. 출출하면 멤버 라운지에 가서 할머니들 사이에서 안작 쿠키를 먹고, 상설전시는 외울만큼 자주 봤다. 특별 전시는 원하는만큼 보고 또 봤다. 칼튼(Carlton) 지역에 살 때는 멜번 뮤지움을 자주 다녔다. 공룡 뼈도 보고, 호주 역사관도 자주 방문했다. 멜번의 옛 가옥을 재현해 놓은 전시가 그때는 참 재미있었다. 미술관에서 느껴지는 차분함과 박물관에서 아이들의 흥미로운 표정이 기분 전환에 많은 도움이 됐다.” 

월 니팅(Wall Knitting)


멜번의 도심 속에 살다 보니 자연 속에서 영감을 누릴 기회가 적었지만, 크고 작은 공원이 많아 자연을 느끼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천 작가의 SNS를 보면 에너지가 넘치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돌보며 일하는 워라밸을 지향하는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호주에서 삶 가운데 얻게 된 것 한 가지가 바로 ‘여유’다. 사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여유를 많이 잃어버렸지만, 나 자신을 돌아 보는 여유, 바쁜 시간 속에서 휴식을 찾으려는 여유를 호주에서 얻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만난 호주인들은 24시간 중 30분이라도 가족과 보내거나, 자기 자신을 위해 보내는 시간을 갖는다. 또 아무리 바쁘더라도 ‘커피는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커피를 마실 거야’ 하는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나도 모르게 바쁘니까 ‘나 자신을 챙기는 여유를 잃어버려  안타깝다.” 

RMIT 학사 과정을 마치고 2년동안 아티스트로 멜번에서 활동했다. 
“멜번은 여러 가지 형태의 예술이 공존하는 동시에 접근성이 뛰어나며, 아티스트와 창작물이 존중받는 도시다. 멜번에서는 개념이나 표현하는 형태가 중심인 반면 한국은 ‘기술’이 먼저 보일 때가 많은 것 같다.” 

호주와 한국의 표현 방식에 대해 그는 “기술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작업도 호주에서 공부했을 때는 그 속에 어떤 생각을 집어넣느냐를 생각했다면 요즘엔 어떻게 그 생각을 기술적으로 더 완벽하게 구현하느냐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천윤화 작가의 작업실


“나의 모든 작품은 평면회화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나를 대표하는 작품이 있다면 회화 작품이지만 월 니팅(Wall Knitting) 작품도 소개하고 싶다. 3차원의 공간을 2차원 평면에 표현했다면 설치 작품은 이를 또다시 공간 밖으로 끌어 나온 작품이다. 멜번의 화이브 월스 갤러리(Five Walls Gallery)에서도 이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근처 대학교 학생들과 협업으로 작품을 설치하고, 이후에도 계속 관객 참여형으로 전시 기간 동안 작품이 변화하는 형태였다. 관객들도 즐거워하고 나 또한 작가로서 뿌듯했던 전시로 기억한다.”

예술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천 작가는 어디서 원동력을 얻을까. 

“아티스트로서의 어려움은 경제적인 점과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다. 다행히 요즘엔 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고 정부 지원금이나 예술 제도를 많이 개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인식개선에 내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마음과 예술 활동을 거듭할수록 넓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이 예술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처음엔 이게 맞는 것인가하는 불확실성으로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불확실하고 위태롭겠지만 이 여정을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길 중 하나를 가고 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끔 가지 않은 길, 지나쳐온 길, 지나간 길을 생각하곤 한다. 아쉽고 후회스럽고 내가 잘 한 것은 보이지 않고 못한 것만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땐 한 숨 자고 다시 하면 된다. 매일이 똑같지만 매 년이 똑같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우린 아직 청춘이기 때문에..” 


김형주 기자 julie@hanhodaily.com
출처 : 한호일보(http://www.hanhodaily.com)

작가의 이전글 [호주사는 김기자의 인터뷰] 01.브리즈번 장수희 작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