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코로나 학번을 걱정한다. 잦은 원격수업으로 사회 적응력, 협업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우려는 학교라는 공간이 공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님을 의미한다. 학교는 타인과 부딪치고, 연결되면서 끈끈한 유대를 경험하는 장소로 여전히 살아남을 듯하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이들도 있다.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아이들만 매해 6만 명이다. 이 아이들은 학교 담장 너머의 삶을 꿈꾼다.
비대면 수업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학생들의 얼굴을 격주로 마주했다. 그런데 대면 수업에 주기적으로 결석하는 아이가 있었다. 주 4회 수업에 꾸준하게 1, 2번은 결석했다. 창백한 얼굴이 차갑게 느껴지던 아이는 늘 과묵했다. 말을 건네도 돌아오는 답변엔 힘이 없었다. 수업 진행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궁금했다. 담임 선생님과 그 아이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1 때부터 학교 적응을 힘들어했고, 자퇴를 하고 싶어하지만 부모가 적극적으로 만류한다고 했다. 익숙할 정도로 자주 들어온 상황이라 놀랍지 않았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 시간에 책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책 목록에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나는 오늘 학교를 그만둡니다>라는 책이 있었다.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 20명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학교를 그만둔 계기, 학교 밖에서의 삶을 학교 밖 청소년의 목소리로 새긴 책이었다. 가볍고 얇아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그 아이가 고른 책은 역시나 이 책이었다. 수업은 6시간 동안 책을 읽고 독서 일지를 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기억으로 그 아이는 6시간 중에 3번을 출석했다. 그 아이가 쓴 독서일지는 재미있었다. 책 내용이 아닌 자신의 삶이 가득했다. 이 고민과 상처가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는 위로와 확신이 있었다.
그 아이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책을 다 읽고 발표 주제를 정하던 시기였다. 내가 권한 책은 그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와닿았을까. 선택을 위한 용기였을까, 어서 갈 길을 가라는 재촉이었을까. 다만 누군가의 흔들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기는 했다. 나만 특이하고 별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서 멀어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 무언의 조언이 그 아이의 삶에 어떤 언어로 새겨졌을지 궁금하다.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부적응, 학교 폭력, 건강상의 문제 와 같은 심리적, 육체적 이유가 대다수다. 물론 내신 성적 따기에 실패해 일찌감치 정시로 대학을 준비하려 자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아이들은 학교 교육이 무용하다고 여긴다. 어떤 사람은 푸코와 일리치와 같은 학자를 들며 감옥 같은 학교, 탈학교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다. 그저 힘겨운 아이들이 교문 밖을 나서고 있다는 현실이 눈에 밟힐 뿐이다. 나는 지금껏 교문 밖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못했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은 많으면서도 빈약하다. 2021년 기준으로 학교 밖 청소년은 15만 명 정도다. 전국의 시군구에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하는 꿈드림 센터가 설치되어 있다.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이라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이다. 그런데 학교 밖 청소년의 70%는 이 기관을 이용하지 않는다. 학교 안 학생은 평균 1,20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지만, 학교 밖 청소년은 95만 원에 그친다. 2023년 초 서울시의회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학교밖 청소년에 대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3개월 뒤 해당 예산을 복원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학교 밖 청소년을 향한 세밀한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단 돈뿐일까.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증은 국가가 보증하는 신분증이지만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할인을 받지 못하거나, 비행 청소년이라는 오해를 사곤 한다. 각종 공모전의 응시 자격이 학생으로 제한되어 참가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의 삶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가정에서 부모의 학대를 경험하는 학교 밖 청소년의 비율은 평균보다 높다. 부모 학대를 경험하는 학교 밖 청소년은 충동적인 경향성이 높고, 이 충동성은 범죄 발생으로 연결된다. 학교 밖 청소년 대다수는 진로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높다. 힘겹게 학교를 나왔지만 학업을 중단했다는 사회적 낙인은 자아존중감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대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안정감도 경험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2021년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에서 학교 밖 청소년을 가장 힘들게 하는 항목 1위는 ‘선입견과 편견’이었다. 다행인 점은 2015년 42.9%였던 수치가 2021년에는 26.1%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어려움이 없다는 답변 또한 25.8%에서 36.6%로 증가했다. 시대가 흐를수록 달라지는 시선에 안도감을 느낀다. 따뜻한 격려 속에서 학교 밖 청소년의 삶도 덜 흔들리게 될 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학교 밖을 향하는 아이들이 줄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투고, 화해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의 지옥과 천국에서 자신을 단련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마음이 욕심임을 안다. 누구나 내 마음 같지 않음도 안다. 너무 힘들어서 이곳을 나가야겠다는데 어쩌랴. 오랜 고민의 끝에 내린 선택을 쓰다듬는 수밖에. 다정한 걱정과 위로로 담장 너머의 삶을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