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8-10장
지난 부분 요약 및 예고
기술의 발전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감정 이입 범위의 확장’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고, 이에 따른 제도적 변화는 다양한 범위에서 폭력의 감소를 가져왔다. ‘폭력과 위험의 최소화’라는 업적은 세상의 수많은 일들 중 감히 ‘절대적으로 옳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몇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을 인류는 이루어냈으며, 현재에도 수많은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다만 통계가 따르지 않는 행위, 결과만을 지향한 강압적인 행위는 어리석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8, 9장에서는 인간 내면의 공격성과 이타심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폭력의 역사적 감소를 말하는 이 책의 주제와 약간 어긋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폭력의 역사적 감소 추세에 대해 말하다 보면 결국엔 인간 본성의 문제, 즉 인간은 폭력적인가 아닌가라는 질문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러 과학을 동원하여 인간 본성에 대해 탐구한다. 10장에서는 몇 개의 키워드로 간단하게 앞선 내용들을 요약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다음 리뷰글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를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8장 내면의 악마들
: 인간 내면의 공격성 - 포식적-도구적 폭력, 우세 경쟁, 복수심, 가학성, 이데올로기
9장 선한 천사들
: 인간 내면의 이타심 - 감정 이입, 자기 통제, 도덕 감각, 이성
10장 천사의 날개를 타고
: 폭력을 감소시킨 다섯 가지 역사적 힘 - 리바이어던, 상업, 여성화, 세계주의,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스티븐 핑커는 1~7장까지 1200페이지 중 800페이지를 할애하여 ‘폭력의 역사적 감소 추세’에 대해 말했다. 그에 대한 증거와 통계, 뒷받침하는 이론들, 또한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반격까지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8-9 장에서는 ‘폭력의 역사적 감소 추세’와 인간 본성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볼 것이다.
앞서 본 여러 사례를 보면 통제가 없을 때 대부분의 인간은 폭력을 저지를 확률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악마가 존재한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악마가 있을까? 몇 마리나 있을까? 그 녀석들의 이름은 무엇일까? 저자는 폭력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1. 포식적 폭력: 원초적인 폭력, 무언가를 얻기 위해 행하는 폭력.
2. 우세 충동: 국가의 위신이나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게 하기 위한 폭력.
3. 복수심: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상대를 해치는 폭력.
4. 가학성: 상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기 위해 가하는 폭력.
5. 이데올로기: 무한한 선을 추구한다는 이상주의적 개념을 달성하기 위한 폭력.
(폭력의 분류 및 특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맨 아래에 추가했다.)
이러한 폭력의 씨앗들이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가해자를 순수한 악 그 자체, 혹은 사이코패스로 여기는 것은 크나큰 오류다. 그러한 사람들만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폭력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 악마들이 잠자고 있다. 바로 우리 뇌 속에. 그렇기 때문에 억제하고, 예방하고, 통제해야 한다.
다행히도 인간의 뇌 속에는 그 악마들을 억제하는 천사 또한 잠재되어 있다. 감정이입, 자기 통제, 도덕 감각, 이성이 바로 그 천사들이다.
1. 감정이입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하고 스토리를 알게 되면, 그는 물론 그가 대변하는 집단까지 공감이 확장된다. 심지어 가상의 이야기라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출판 기술과 인터넷 등의 발달로 우리는 많은 스토리를 접하게 되며, 다양한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에 대한 폭력이 점점 더 억제된다. 개인과 가족을 넘어 지역사회, 국가, 민족까지 확장되었으며 다른 인종과 취약 계층, 심지어 동물에게 까지 공감 대상이 확대되었다. 이는 폭력의 감소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감정 이입은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 어떤 실험에서는 중병을 앓는 열 살 소녀에게 감정 이입을 한 피험자들이 치료를 위한 줄에서 새치기를 했는데 (물론 통제된 상황에서),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 또한 잘생긴 외모, 학력, 혈연, 유사성에 대해 감정 이입은 더 많이 반응하게 되는데, 이는 편협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감정 이입의 단점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감정 이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2. 자기 통제
자기 통제 능력은 인간의 뇌의 특정 부분에 할당되고 내재되어 있는 본성이다. 이는 내재된 폭력적 본성을 억누른다. 하지만 사람마다 자기 통제의 정도는 다르며 자기 통제 능력이 부족할수록 폭력을 많이 저지른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자기 통제 능력을 상승시킬 수 있을까? 오디세우스는 미치지 않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었다. 이처럼 현재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을 불리하게 만드는 상황에 몰아넣는 기법을 오디세우스 기법 혹은 율리시스 기법이라고 부른다. 이는 자기 통제를 향상하는 한 예시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며, 현대 사회는 고대에 비해 자기 통제 능력이 좋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이 크다. 따라서 앞으로 자기 통제 능력이 증가할 가능성이 더 높으며, 폭력을 더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3. 도덕 감각
모든 사람들 속에는 도덕에 대한 감각이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감각이다. 이 감각은 단순히 특정 행위를 꺼리고 반기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다. 살인, 강간, 절도를 비도덕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꺼리는 것과, 파인애플이 올라간 하와이안 피자를 맛이 없고 불쾌하기 때문에 꺼리는 것은 다른 감각이다. 도덕 감각에는 여러 특징이 있다. 첫 번째로 보편화된다는 점이다. 하와이안 피자를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남들이 못 먹도록 하지는 않지만, 살인을 비도덕적이라 생각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도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두 번째로 도덕화 된 규범은 실천된다. 특정 행위를 비도덕적이라 생각한다면, 쉽게 행하지 않는다. 세 번째로 도덕화 된 규범은 처벌 가능하다. 어떤 행위가 비도덕적이라는 것이 사회 규범상 받아들여진다면, 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한다. 마지막으로, 도덕은 규범이나 터부의 형태로 다가온다. 한 예를 보자. 병든 아내를 위해 약을 훔친 남편이 있었다. 이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할 때, 사람들은 ‘절도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거나 ‘절도를 해서라도 아내를 살려야 한다.’라고 대부분 답변한다. ‘인간의 생명은 상품의 가치보다 우선되기 때문에 절도를 해도 된다.’ 라거나 ‘그럼에도 절도를 하는 것은 사회 질서를 무너뜨린다.’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람들은 잘 설명할 수 없으면서도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한다.
어떤 특정 도덕규범을 위해서라면 폭력적인 행위를 쉽게 행할 수도 있다. 종교, 국가에 대한 헌신이라는 규범을 위해 폭력이 일어난 예를 우리는 수없이 알고 있다. 반대로 폭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인도주의 혁명, 권리 혁명이 바로 그런 예다. 그러면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이에 대해 다루기는 어렵다. 도덕규범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극단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연구 결과, 다행히 세계의 도덕규범은 몇 가지 주제를 둘러싸고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인류학자 앨런 피스케는 이런 도덕적 관심사를 네 개로 분류했다.
1) 공동체적 공유: 집단, 사회, 국가, 민족 내의 통일성
2) 권위 서열: 우세, 지위, 나이, 성별, 몸집, 힘, 부, 선행 등을 기준으로 정의되는 직선적 위계
3) 동등성: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모든 체계
4) 합리적-법적: 통화, 가격, 임대료, 이윤, 이자, 신용, 파생상품 등 현대 경제에 대한 체계
이러한 분류를 ‘관계 맺기’ 모형이라고 한다. 도덕규범은 타인과,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나온다. 이런 도덕규범과 폭력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사람들은 타인과 어떤 관계 맺기에도 포함되지 않는 타인을 비인간화하면서 폭력을 허용한다. 공동체적 공유라는 관계 맺기가 지배적인 사회 - 주로 고대 사회 - 에서는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만, 반대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을 죽이고 노예화하는 것이 허용된다. 권위 서열 모형에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보호하지만 반대로 무례, 불복종, 신성 모독에 대한 처벌이 허용된다. 동등성 모형에서는 제법 낫다. 다른 사람과의 협동, 공감, 교환을 장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복을 합리화하여 폭력을 정당화한다. 합리적-법적 추론은 특이한 항목이다. 문자, 숫자, 계산을 아는 사회에서만 등장하는 도덕 규범이다. 공리주의가 대표적으로 이에 해당되는 규범이라 할 수 있겠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인류의 진화, 아동 발달, 역사 속에서 볼 때 1부터 4까지 순차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도 그와 같이 바뀌고 있다. (이는 어떤 도덕 규범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보수주의자들의 도덕규범은 1~4의 모든 항목에 고루 분포해있지만 이전의 보수주의자들에 비해서는 1,2를 덜 중요시하게 여기고 3,4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진보주의자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1,2는 거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3,4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흐름은 폭력의 추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1,2를 중요하게 생각할 때는 단체적인 폭력이 쉽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세계화와 감정 이입, 경제 발전 등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경향은 유지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내면에 도덕규범을 가지고 있으며, 그 규범은 사람마다 사회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 상대방이 자신과 다른 규범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누군가를 대할 때 그 사람의 규범을 기반으로 대응한다면 불필요한 폭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종종 협상을 할 때 분쟁자들을 합리적(4)인 사람으로 가정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종교나 국가, 민족(1)에 더 큰 가치를 매기는 사람일 수 있다. 이럴 경우 협상은 쉽게 결렬되고 폭력으로 마무리된다. 분쟁자들의 도덕규범을 알고 그에 따라 대응한다면 더 온건하게 분쟁을 마무리할 수 있다.
4. 이성
사람들은 점점 똑똑해진다. 놀랍게도 사실이다. 교육 환경이 좋아져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당연한 의문이 든다. 아래의 그래프를 보자. 정보, 산수, 어휘 능력은 상승하지 않지만 행렬, 유사성, IQ는 상승했다. 즉, 전체적인 일반 지능은 그다지 상승하지 않았지만 추상적 능력의 하위 항목만 상승했다. 만약 교육의 영향이라면 전반적으로 상승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추상적인 상징이나 첨단 과학 기술의 결과물이 풍부해지면서 어릴 때부터 이를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추상적 능력, 그러니까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서 추상화를 해내는 능력은 도덕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관점을 취하도록 하고, 감정 이입하여 도덕 범위를 넓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추상적 지능의 상승은 폭력 범죄를 줄이고 협동 가능성을 상승시킨다. 또한 지능과 고전적 자유주의 - 개인의 자율과 안녕을 국가나 집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 - 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 즉 추상적 능력의 향상은 폭력을 감소한다.
이처럼, 사람 내면에는 폭력을 조장하는 악마들 뿐만 아니라, 폭력을 억누르는 천사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제, ‘폭력의 역사적 감소 추세’는 천사가 악마보다 더 강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노력 없이는 폭력이 감소할 수 없었다. 저자는 이 챕터에서 폭력을 감소시킨 다섯 가지 역사적 힘 - 리바이어던, 상업, 여성화, 세계주의,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 을 요약하면서, 폭력의 역사적 감소 추세는 인류의 무한한 노력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류는 천사의 날개를 타고 악마를 무찔러 폭력을 감소시켰다. 폭력은 아직 세상에 남아있으며 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폭력을 계속해서 줄여온 인류의 위대함이 빛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이 위대함에 대해 역설하며 책이 끝난다.
1장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폭력을 감소시킨 위대한 인류에 대한 사랑, 인류애에 취하는 책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는 두 가지 주목할만한 점이 추가로 있다. 첫 번째는 폭력의 역사와 통계, 그것을 분석하는 이론의 정교함이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역사와 통계를 본다면 누구든 현대에 태어났음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문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대조차 분석해내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기술에 감탄할 것이다. 두 번째는 ‘폭력의 최소화’라는 절대적인 가치에 대해서다. 아인슈타인은 어떠한 절대성도 없는 과학에서 ‘빛의 속도’라는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을 도입하면서 과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세계의 수많은 국가, 사회는 서로 다른 목적과 규범을 가지고 다양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다만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절대적인 가치가 하나 있다면, 그것이 ‘폭력의 최소화’라는 가치가 아닐까. 이 책에서 간단하게 소개한 폭력의 성질과 인간 본성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폭력의 최소화’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 노력한다면 점점 더 지구는 살기 좋은 행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기원 전이나 중세 시대의 폭력, 심지어 20세기의 폭력을 보면서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비인륜적인 행위들이 서슴없이 자행되었다. 22세기 사람들은 21세기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 지금 우리가 과거의 사람들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낄까? 아니면 이만하면 충분하지,라고 하면서 폭력이 더 이상 감소하지 않게 될까? 어떠한 요인에 의해 폭력이 증가하게 되어서 22세기의 사람들이 21세기를 황금기로 추억하게 될까?
인간의 뇌는 이상하게 생겨먹어서, 부정적인 사건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인 사건에 대한 반응보다 3배가량 크다고 한다. 만약 6:4 정도로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이 일어난다면, 실제로는 긍정이 우세한 것이지만 인간은 4x1:6x3, 즉 6:12로 느낀다. 부정적인 사건이 우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느낌과 현실은 크나큰 괴리가 있다. 통계와 수치를 보지 않는다면, 22세기의 사람에 대한 세 가지 예측 중 두 번째나 세 번째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역사적, 과학적, 논리적으로 추론해본다면 미래는 첫 번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절대적인 결론은 아니다. 지금까지 처럼 인류가 폭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다는 전제 하의 결론이다. 과연 인류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 번외 - <폭력의 분류 및 분석>
폭력들을 소개하기 전에, 인간 심리의 기본 전제에 대해 알고 넘어가자. 바로 ‘자기 위주 편향’이라는 것이다.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모두 자신만의 관점을 가진다. 모두들 자기한테 유리하도록 생각한다. 가해자의 서사든 피해자의 서사든 실제 사건과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누구나 자신을 무고하고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린 사람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을 악랄한 파괴자로 여긴다. 감옥에는 자신이 무고하다고 생각하는 범죄자들이 수두룩하다. 이러한 자기 위주 편향은 폭력이 발생하고 심화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포식적 폭력
가장 원초적인 폭력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행하는 폭력이다. 동물을 사냥하고, 약탈 전쟁을 하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사람을 괴롭히는 등의 행위다. 이 폭력에서 자기 위주 편향은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공격자는 자신이 받을 피해와 얻을 이득을 생각하여 후자가 더 클 때만 공격을 실행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피공격자는 자신이 패배하는 결과가 예상된다면 항복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힘을 실제보다 더 과신한다. 공격자는 하지 말아야 할 공격을 하고, 피공격자는 항복해야 할 때 모든 것을 걸고 맞선다. 이 때문에 적절한 수준으로 끝날 수 있는 포식적 폭력이 끔찍한 소모전으로 커지게 된다.
-우세 충동
구체적인 이득이 걸려있지는 않지만, 국가의 위신이나 개인의 명예로 인한 폭력이다. 수많은 전쟁들은 별로 이득이 없는 상황에서도 발생했다. 이것이 생각보다 멍청한 행위는 아니다. ‘나를 건드리면 큰일 난다’라는 메시지를 세상 모두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만약 상대의 도발에도 가만히 있는다면 자신이 힘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침략을 받을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국가, 민족 등의 사회적 집단도 포함된다. 여기에도 자기 편향이 힘을 발휘한다. 나르시시스트 지도자들은 자신의 지도력과 국가의 힘에 대한 근거 없는 자존감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에 대한 정당한 비판도 대단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며 과격한 대응을 하며 피해는 더 커진다. 다행히 현대 사회에서는 명예, 위신, 영광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동물적 본능적 행위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복수심
자신을 해친 사람을 해치는 것, 그것이 이 폭력이다. 이것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인 충동이다. 복수가 존재해야만 상대의 폭력을 억제할 수 있다. 자신이 100의 피해를 입혔을 때 100의 피해를 받아야 한다면, 매우 우세한 상황이 아닐 때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왜 복수가 복수를 낳을까? 자기 위주 편향으로 인해 자신이 입은 피해는 과장하고, 자신이 입힌 피해는 적게 생각한다. 복수당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준 피해보다 몇 배로 심각한 피해를 자신이 받았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다시 복수한다. 그러면서 피해는 점점 더 커지기 마련이다. 한 연구 결과에서는 최종적으로 가한 힘이 최초의 힘의 약 18배였다. 강한 정부는 사적 복수를 억제하면서 어느 정도는 이 분류의 폭력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가학성
다른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폭력을 가하는, 악질적인 행위이다. 고문,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연쇄 살인범 등이 이에 해당된다.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한 폭력에 대한 원초적 거부감은 가학성을 막는다. (사이코패스는 이런 거부감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불행히도, 인간의 두뇌의 특정 부분은 가학성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능력이 있다. 정부를 위해 고문을 하는 베테랑들조차도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점점 더 목적을 위한 수준을 넘어서는 고문을 가한다. 연쇄 살인범들 또한 첫 살인에서는 실망과 불쾌감을 느끼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점점 더 잔혹해진다.
-이데올로기
더 큰 선을 추구한다는 이상주의적 개념을 위한 폭력이다. 가장 막대한 희생자를 불러온 폭력의 동기다. 십자군 전쟁, 홀로코스트, 마오쩌둥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무한한 선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대가가 무한한 선이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많은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에는 치료약이 없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똑똑하게 만드는 능력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악마화한 후, 그들만 제거하면 무한한 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을 언제든지 누구나 구축할 수 있다. 군중들의 심리적 특성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론에 휘둘리거나 앞장설 수 있다. 다만 예방할 수는 있다. 열려있는 사회, 민주적인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