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오랜만에 만나서 악수를 청했다. 어쩐지 자라나는 어색함을 이유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무작정 던졌다.
못 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나불대며,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가까스로 밀어냈다. 떠오르는 농담이 바닥나는 동시에 죄책감이 떠오른다.
이유 모를 권태를 핑계 삼아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었던 죄책감은 민망함과 미안함으로 치환되어 돌아온다.
마음은 곧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진심 섞인 말들로 무작정 쏟아진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해, 여유가 많이 없더라.
마음에 가득 찼던 설레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보이지가 않더라.
현실이 너무 급급해서,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아니, 사실 내가 변했던 거더라.
잘못 없는 너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나를 위로했던 거더라.
어느 순간 보고 싶더라.
많이 이기적인 거 알지만 자꾸 생각나더라.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도 못한 채, 변명을 덧붙이고, 그럼에도 희망을 살짝 보태어 입 밖으로 마음을 꺼내본다. 이후 잠시동안의 정적을 끝으로 건너오는 한마디는 나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위로해 준다.
괜찮니?
나는 미안해야 하는 게 맞는데. 위로해주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먼저 좋다고 일방적으로 좋아했으면서 제 풀에 지쳐 먼저 떨어져 나간 것도 나인데.
또다시 이기적인 내가 되어 따뜻한 위로를 전달받는다.
앞으로 더 잘할게.
예전 같은 모습 보이지 않을게. 실수하지 않을게.
못해줬던 시간만큼 더 잘해줄게.
마치 첫날 했던 고백처럼, 아니 어쩌면 그날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허락을 구해본다.
슬쩍 들어서 쳐다본 상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짙게 물들어간다.
동시에 나의 마음에도 조금씩 설렘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고마워. 나의 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