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길다고 하지만, 나에겐 너무 짧은 자율 수행 기간
방학- 아이들이 좋아하고, 교사들도 그 못지않게 좋아한다.
그렇다면 부모는 싫어하고 교사와 학생들은 좋아하는 그 방학은 며칠이나 될까?
2025년을 기준으로 대체공휴일, 공휴일,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치면 121일이며, 이때 휴일이 아닌 평일은 244일이 된다. 그 가운데 법정 수업일수는 190일이니 올해 초중등학교 대부분의 방학 일수는 학교장재량휴업일을 포함하여 54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적당한 기간이라고 느껴지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긴 기간이다. 특히 교사집단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부류에게는 너무 길다. 비판의 요지는 '왜 교사들은 월급을 받으면서 쉬냐'는 거다. 교사에게는 방학이 없다. 그보다 정확한 표현은 41조 연수이다. 근무지 외의 장소에서 연찬의 시간을 갖는 것. 누군가에게는 노는 시간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 않고서는 41조 연수 대상자가 노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그가 책을 읽는지, 소소하게 뭔가를 익히는지, 아니면 다큐를 보는지 알 수 없으며, 그가 그런 일을 하는 데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또한 그들의 소소한 경험이 그들의 교육 역량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실제 수업이나 업무 수행 과정을 장기간 관찰하지 않고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초등교사의 경우 다양한 교과를 가르치는데, 학생들의 흥미를 고려하여 교과를 주로 삶의 경험 수준에서 접근한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의 수업은 학생들은 교과를 학습하는 과정이 아니라, 교사에 투영된 교과를 학습하는 과정에 가깝다. 즉, 초등학교 수업은 교과를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교사를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니 교사가 경험한 것이 다양할수록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질적으로 풍성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교사가 방학 때 여행을 가든, 책을 읽든, 소소하게 노작을 하든 그것은 수업의 질을 풍부하게 만드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방학 때 겪은 교사 자신의 경험을 교육적으로 적합하도록 자료화하는 능력과 성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외로 여행을 떠나 이색적인 문화를 접하고 기가 막힌 풍광을 체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아이들의 교육에 적용할 만한 수준으로 되새김질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흥으로 끝날 것이며, 공예나 기악 솜씨를 갈고닦더라도 수업 시간에 적용할 만한 아이디어를 정리하지 못하면 취미생활에 그치게 된다. 다른 하나는 교사가 자신의 경험을 교육 장면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41조 연수와 같이 자율적인 연수이건, 국가가 주관하는 공식적인 자격 연수이건 배운 것을 업무 수행에 적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 말은 곧 어떠한 경험이든 수업의 질을 풍부하게 만드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만 실천하지 아니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 방학은 자율 수행 기간이다. 이 수행은 遂行(기대하거나 지정된 일을 해낸다는 의미의 수행)이기도 하고 修行(행실, 학문, 기예 따위를 갈고닦는다는 의미의 수행)이기도 하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따르면, 교사의 법정(法定) 수행은 학생을 교육하는 일이다. 이 교육이라는 것은 좁게 보면 교과 지도와 생활 지도를 의미하며, 넓게 보면 이러한 교육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획이나 준비 등의 제반 활동을 포함할 수 있다. 즉, 학생들의 방학이란 교사들이 190일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법정 수행 범위 내에 집중한다면, 본질적인 일과 떨어져 있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율적으로 지정한 일을 수행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修行)의 관점에서, 수업이 없는 기간 동안 교사가 교사로서 필요한 역량과 관련해 스스로 정한 무언가를 갈고닦는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방학은 교사의 자율 수행 기간이다. 그 역량이라는 것은 가까이 들여다볼 때 교육과 직결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 역시 포함한다. 당장의 다음 학기 수업과 명시적으로 관련이 있지 않더라도 교사의 교육활동 밑바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험도 여기에 해당된다.
자율 遂行이건 자율 修行이건 간에, 이 둘은 모두 충분한 여유를 동반해야 한다. 명확한 업무 지시에 따른 과업 수행이나 선명한 커리큘럼이 있는 교육 프로그램처럼 갈 길이 분명하지 않는 한, 일이건 학습이건 갈지 자로 방향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불안정함은 불필요한 방황이 아니라, 미답의 길에서의 신중함이다. 자율 수행은 닥친 일을 서둘러 처리하는 것이나 정해진 것을 숙지하고 숙련화하는 것과는 다르다.
돌이켜보면 정교사 1급 직무연수를 받은 학기부터 늘 방학이 지나치게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나 생활지도 이외에 교사가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했다. 연가를 이용해 방학 중 여행을 갔던 시간을 제외하고 늘 뭔가 스스로 해내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그래서 학생들의 방학이라고 특별하게 신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방학 중에는 조용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학교가 편했다. 개인적으로 긴 직무 연수를 받는데 시간을 사용한 적도 있지만, 대학원 코스웍으로 보낸 12학기를 비롯해,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논문이나 보고서 쓰기에 집중하거나 교과서나 책을 쓰는 데 힘을 쓰며 보냈다. 학생들의 방학이 내게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법정 수행(遂行) 범위 밖의 것들에 집중하며 내 경험의 질을 높이는 수행(修行)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은 방학 중이나 학기 중이나 '또이또이'인 셈이다.
'너나 바쁘겠지, 다른 교사들은 다르다'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관찰해 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방학 생활을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처럼 할 일이 잔뜩 밀려 있는 사람이 치열하게 시간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율 수행에서 여유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교사가 과연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 얼마나 아이들과 좋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까?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방학 기간 동안 페이스를 조절하며 일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진 교사가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다. 교사의 41조 연수를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은 방학 때 교사들이 바쁘게 보내길 바라지만, 경력 초기부터 수석교사가 되기까지 그들이 말하는 대로 충실하게 일정을 빡빡하게 보낸 내 입장에서 볼 때 그 판단은 대체로 틀렸다. 언짢음에 기초한 제삼자의 견해와 실제로 겪고 있는 당사자의 체험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 시대가 사뭇 야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