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환자에겐 두려움 그 자체인 이 수술장이 의료진에게는 곧 일터다. 대기실에서는 약간의 즐거움도 섞인 노동자들의 대화와 웃음이 오간다.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그 광경이 부럽다. 불행히도 나의 진영은 환자 쪽.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수술장 바로 앞의 애매한 복도에는 벽을 따라 환자들의 침대들이 줄을 서 있다.
나와 일직선 상에 놓인 나이 많은 남자, 건너편에서 엄마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는 7-8살 남짓 된 어린이도 수술을 하나 보다. 비일상의 최정점을 달리고 있는 우리 팀에서도 어린 아이는 더 특이하게 비춰진다. ‘내가 나설 영역이 아니다. 하늘에 맡기자’. 반복된 회피와 체념으로 건조하게 굳어진 내 마음에 세상 순수하게 웃는 아이가 들어오니 눈물이 귓가로 흘렀다. 우리의 마음이란 내 도움 따위는 필요치 않는 강하기만 한 존재는 사랑할 수 없게 설계됐나 보다. 아직 몸도 마음도 완성이 덜 된 이 연약한 어린 새가 수술을 받는다니 가슴이 미어진다. 누군가가 휴지를 줘서 스스로 눈물을 닦고 수술장으로 옮겨졌다.
나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들어와야 하는구나. 누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도통 모를 사람들이 제 할 일을 분주히 하고 있다. 누워있는 채로 눈알을 굴려봤자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잠이 들면 내 수술복을 벗기고 수술할 부위를 닦고 위치를 잡고 그런 차례가 먼저 올 것이다. (고작) 한 달간의 집중 운동을 거쳐서 신기루같은 복근까지 만든-하지만 배에 힘 풀고 누워있다면 그저 살이겠지- 이렇게나 백점인 몸을 본다면 그 평가를 혼자만의 생각으로만 할까 잡담을 나눌까. 그 수위가 궁금하다.
“교수님이 폐는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해본다고 하셨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계세요”
머릿속으로는 세상 바쁜 날 보고 수술장의 누군가가 말했다. 고맙게도 미소까지 지어주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간의 덕목 중 하나인 친절을 가장 홀로 된 상황에서 받았다. 이런 사소한 조각조각들이 기억에 잔존하게 될 추억이 되곤 한다. 이어서는 아는 목소리, 집도의가 마스크를 씌우며 말했다.
“산소마스크예요”
원래 산소가 들어오면 뇌가 맑아지면서 호흡이 더 편해야 하는 건 아닌가. 뭔가 불편하다. 이대로여도 호흡곤란이 안 오나?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제 시작하는걸까?’라는 의문을 가지며, 의료진만 멀뚱멀뚱 보다가 나도 모르는 새 잠에 들었다.
“일어나야 해요, 환자분 자면 안 돼요.”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면 회복실에서 듣는 소리. 수술장에 들어간 게 고작 1분 전 같은데 시간이 사라져 있다. 회복실의 벽걸이 시계를 보니 수술 시작 시간으로부터 3시간 30분 정도 지난 것 같다. 머리가 졸음에서 도통 깨지가 않고 온몸이 마비된 것만 같다. 수술한 오른쪽 옆구리로부터는 끔찍한 통증이 흘러 나온다.
‘자 이제 수술 들어갑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패닉 상태에 빠질까봐 교수님이 쓰는 스킬일까? ‘산소마스크’라는 말만 듣고선 수술을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의학기술에 무한한 감사와 경외심이 솟구쳐오른다. 내게 앗아간 3시간 동안 의느님들은 내 생살을 뚫고 장기를 잘라서 적출했다. 너무나도 평안하게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것에 감사하고 감사하다.
“전이가 너무 많이 돼서 우중엽, 우하엽 다 자르고 임파선도 잘랐대. 항암도 해야 한다는데...”
보호자가 말했다. 수술 전 예상과는 모두 반대였다. 우하엽은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예측, 그냥 수술만 하면 되는 암이니 항암은 안 해도 된다는 확언이 모두 깨졌다.
어쨌거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했다. 죄다 잘랐다니 눈에 안 보이는 암 찌꺼기가 생존할래야 생존 할 수가 없었음 좋겠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좋다는 겸손한 마음이 생긴다.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사람, 우리 가족에게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