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에 독일과 슬로바키아를 살짝
예전에 무슨 책 제목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걸어서 환장 속으로'라고 해서 깔깔대며 웃었다. 딸이 부모님을 모시고 스페인 자유여행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와 정말 안 읽어봐도 대충 내용이 훤히 보이는 그러니까 정말 환장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글쓴이의 모습이 보여서 나중에 꼭 읽어봐야지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난 자율연수를 쓰고 1년을 쉬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23일 동유럽 여행을 가게 되었다. 정말 환장 속으로 걸어가는 경험이었냐 누가 묻는다면 감히 환장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고, 환장이라는 단어는 너무 귀엽다고, 불구덩이나 지옥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그렇다고 정말 힘들기만 했느냐 진짜 고통만 가득했느냐 묻는다면 꼭 그런 건 아니라고. 그러니까 부모와의 여행은 단순히 단어 하나로 귀결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그런 것이라 일단은 그렇게 갈음하겠다.
8월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 휴직을 결정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변이 왔다. 걱정, 우려 아니면 반대 뭐 이런 거 아니고. '오 그럼 너 데리고 동유럽 자유여행 갈 수 있겠다!' 기다렸다는 듯 엄마와 아빠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내가 왜 휴직을 하고 싶어 하는지, 휴직하고 무엇을 할 건지 역시나 그런 건 관심이 없었고 당장 유럽 자유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나 역시 그러한 것에 큰 기대는 없어서 서운하진 않았으나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유럽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동유럽이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 그렇지. 좋겠지. 그렇게 좋으면 가야지. 어차피 1년 쉬는 거 효녀 노릇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라는 생각에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휴직 소식을 듣고 궁금해했다. 왜 쉬는지, 쉬는 동안 뭘 할 건지. 가족도 안 궁금해하는 것들을 생판 남들은 참 많이 궁금해했다. 제도는 있지만 실제로 쉬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내가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부모님 핑계를 댔다.
"저도 나이 들어가지만 부모님도 마찬가지잖아요. 부모님께서 건강하실 때 여행 다니려고 결정했어요."
내가 생각해도 눈물 나는 대답이었다. 학교에는 하늘 아래 이런 효녀가 없다는 식으로 소문이 났다. 앞서 핑계라고 했지만 굳이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나는 21세기 최고의 효녀가 된 것을 은근히 즐기며 2학기를 보냈다. 학교에서는 수업 준비를 하고 집에서는 여행 준비를 하며 그래 이왕 효녀로 소문난 거 기깔나게 효녀 노릇을 해보자. 최고의 효녀가 되어 2025 효녀 짱이 되는 거야! 너무 피곤해서 이런 생각도 했다.
9월 휴직계를 제출하기 전 8월에 비행기를 먼저 예약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객기였다. 교육청에서 허가 안 해주면 휴직 못하는 건데 무슨 자신감으로 냅다 비행기를 끊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스위스로 들어가 체코로 나오는 22박 23일 일정이었다. 여행하기 가장 좋다는 5월 말 6월 초 비수기 유럽 여행의 시작이었다. 엄마, 아빠 덕에 나도 비수기 유럽을 가보겠네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여행 계획표 제목은 [GO! GO! '스오체' 여행 부모 연수 자료]. 진부한 공기관 공문 흉내를 내보았다. 일단 머무르기로 한 도시들을 결정하고 각 도시별 몇 박을 할 건지 정했다. 취리히로 들어가지만 바로 인터라켄으로 이동하여 숙박을 시작하기로 했다. 비행기를 끊었으니 이제는 숙소 차례. 부모님은 무조건 온 가족이 한 방을 이용해야 한다 주의. 문제는 3인실이 있는 숙소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3인이 넘어가면 숙소 가격이 크게 뛰어오른다는 점이었다. 평범한 2인실 다음에 갑자기 스위트룸이 등장하는 식이었다. 방을 두 개 잡으나 스위트룸을 잡으나 가격 차이도 크지 않고. 결국 최대한 3인이 함께 사용하는 숙소를 예약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여행 직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숙소를 얼추 정해나가며 세부 일정을 계획했다. 우선 알프스산에 대한 동경이 있는 부모님을 위해 융프라우 투어를 예약했다. 첫 도시가 인터라켄인 것도 거기에 있다. 그리고 등산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피르스트 트레킹을 일정에 넣었다. 스위스는 자연이 주요 관광 포인트이기에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돌아보는 것도 코스에 포함시켰다. 이런 식으로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비엔나, 프라하 등 주요 도시 일정을 넣고 근교 가까운 곳은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투어들을 마이리얼트립으로 미리 예약했다. 비엔나와 프라하는 내가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정을 짜는데 수월했지만 잘츠와 할슈는 나 역시 처음이라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아봐야 했다. 인문학과 미술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을 위해 미술관과 박물관을 일정에 넣었고 빈음악협회에서 주관하는 모차르트 공연도 미리 예약하여 바우처까지 출력해 준비했다.
각 도시별 이동은 기차로 했다. 대부분 1등석에 좌석까지 미리 예매하였고 모든 티켓은 종이로 출력하여 챙겼다. 대부분 한 번에 이동하는 기차를 선택하여 환승을 최소화했고 어쩔 수 없는 경우는 환승 시간이 넉넉한 것을 선택했다. 부모님이 캐리어를 들고 다음 플랫폼까지 뛰는 건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동 거리가 긴 경우 야간열차도 고려했지만 잠자리가 예민한 엄마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제외했다. 유럽은 기차 노선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 저가 항공 역시 제외. 렌트는 절차가 복잡할 것 같아서 역시나 제외. 대신 숙소를 무조건 중앙역 근처로 잡아 장거리 이동 후 바로 숙소에 가서 쉴 수 있도로 계획했다. 중앙역에는 주요 관광지로 가는 교통편도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 내 이동에 대한 부담은 적었다.
비행기, 숙소, 기차, 세부 일정 등이 어느 정도 선명해지자 자잘한 것들이 고민되었다. 그중 하나는 음식이었다. 부모님과 여행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하루에 한 끼는 무조건 한식을 먹어야 한다', '유럽 음식은 부모님과 맞지 않다'는 말이 많아 어디까지 한식을 포함시켜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멀티쿠커를 가지고 가서 음식을 해 먹었다는 글을 보았고 조금 고민하다가 우선 접이식 멀티쿠커를 하나 구매했다. 이어 작은 햇반과 라면, 소포장된 반찬들을 몇 개 샀는데 그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야,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야지. 한식 뭐 얼마나 먹는다니?' 하며 적당히 챙기라는 잔소리를 하셨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여행이 가까워져 오자 아빠는 넌지시 작은 밥솥을 챙기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고 난 극구 말렸다.
여행 준비는 여행을 가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뒤늦게 예약이 가능한 기차 시간들이 있어 달력에 표시해 놓고 기다렸다가 예매를 하기도 했고, 융프라우 VIP패스는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편하게 여행을 하기 위해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그 외 피크닉 매트, 여행용 샤워기 필터, 휴대용 타월, 수영복 등 가져가도 되고 안 가져 되는 몇 가지 물건들을 사고 주요 관광지 시간들을 확인하여 일정을 조율하고 중간중간 지출한 금액을 정산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 휴직이 시작됐다. 1월엔 한국사 1급 공부를 하고 2월에 시험을 봐서 딴 후 동생과 호캉스를 다녀왔다. 3월 동생은 개학을 하고 나는 아빠와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4월엔 부모님과 제주도를 다녀왔다. 휴직하지 않았다면 꿈도 못 꿨을 4월의 제주도. 아프고 아름다운 그곳을 드디어 다녀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계속해서 글쓰기 프로그램이 참여하며 책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니 꽤나 바쁜 시간들을 보냈음에도 난 항상 조급했다.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까웠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부끄러웠다.
부모님은 4월 말에 크루즈 여행을 떠나셨다. 10박 11일 정도 되는 일정이었고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돌아보는 여행 상품이었다. 5월 초에 돌아오신 후 20일도 채 쉬지 못하고 나와의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이라 괜찮을까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디 부모님의 체력이 버텨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 사이 나는 아파트 전세 재계약도 하고 야구도 보고 뭐 이것저것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5월 25일이었다. 여행은 5월 26일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면서 시작될 것이다. 미리 올라오신 부모님과 짐을 다시 한번 체크하며 공항버스 티켓을 확인했다. 아침 비행기니까 택시 타고 터미널 가서 버스 타고 공항 간 다음에 거기서 체크인하고 아침을 먹자 그리고 면세점 좀 돌다가 약국에서 필요한 약 있으면 사고 카페에서 차 한 잔 하면 돼. 뭐 이런 얘기들을 나누며.
새벽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깼다. 기억이 안나는 악몽이었다. 여행이 취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늘 있는 일이었다. 여행 전날 여행이 취소되길 바라는 나의 이상한 증상. 아직 깜깜한 바깥을 조금 보다가 다시 누웠다. 휴대폰으로 이심 설치가 제대로 되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태로 뒤척이는데 알람이 울렸다. 진짜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