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엄마, 아빠와 스오체를 다녀온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유럽 여행이 겨울에 다시 부활했다. 오뉴월에 다녀온 유럽여행은 당시 열심히 돈 벌고 있던 동생은 가지 못했기에 이왕 거지가 되기로 한 거 동생과 오래간만에 해외여행을 다녀옴으로써 완벽하게 거지가 되어보기로 했다. 동생이 방학을 해야 갈 수 있기에 1월 말로 계획을 했고 처음에는 이탈리아를 가려고 했으나 겨울 이탈리아는 춥기도 춥지만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그나마 겨울에 갈 수 있는 유럽 국가인 스페인으로 최종 결정했다. 독일을 경유하는 루프트한자 항공권을 예매하고 숙소까지 뚝딱뚝딱 예약하고 나니 여행 계획의 70퍼센트는 끝난 기분이 들었다. 포르투갈도 묶어서 갈까 하다가 동생이 처음 가는 유럽 여행이니만큼 스페인에 집중하고 싶다고 하여 주요 도시인 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바르셀로나만 방문하기로 하였다.
마드리드로 입국해서 바셀에서 출국하기로 하고 기간은 약 2주 정도로 잡았다. 숙소는 주요 관광지와 가까운 곳에 잡았고 마드리드 제외 전부 에어비앤비 형식의 숙소로 예약했다. 다른 도시에 비해 바르셀로나 숙소 물가가 정말 높았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도시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숙박비가 거의 다른 도시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다른 곳에서 최대한 아껴보기로 하고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져보며 숙소를 골랐다. 그 외 구체적인 계획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나도 스페인은 15년 전에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라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 어쨌든 동생보다는 유럽 여행 경험이 있기에 도시 간 이동할 기차와 비행기 예약, 미리 예매해야 할 티켓 확인, 이심 구매, 여행자 보험 등등 여행 관련 부가적인 모든 일들을 나 혼자 준비했다. 마드리드에서 세비야, 세비야에서 그라나다 모두 기차로 이동,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는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하고 오미오를 통해 티켓을 예매했다.
투어는 거의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알람브라 궁전은 전문 가이드가 필요할 것 같아서 예약했다. 나머지는 그때그때 검색하거나 현지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면 충분할 것 같았다. 또한 '투어 라이브'라는 어플을 통해 알고 싶은 도시나 미술관을 검색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어 굳이 비싼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도시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근교 도시 투어도 신청하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동 거리를 아끼고 도시 그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지난 유럽 여행과 마찬가지로 각 도시별 주요 관광지를 선별, 기상 시간과 아침 식사 먹을 시간을 확보하고 그 이후 일정을 시간대별로 간략하게 계획하여 계획서를 작성했다. 사전 예매가 필요한 유명 관광지는 티켓이 매진되기 전이 미리 예매했으며 특히 신경 써 준비한 것이 바로 가우디 메스이다.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 관련 유명 건축물이 많은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구엘공원이다. 특히 구엘공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료입장이었으나 너무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유료화가 되었고 이에 바르셀로나 시민들을 위한 무료입장 패스가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가우디 메스이다. 가우디 메스는 한국에서 미리 신청을 했어야 했는데 여권 번호는 물론 내 얼굴도 입력해야 하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어 절차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하라는 대로 다 진행했음에도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다는 후기를 보았다. 다행히 나와 동생은 절차대로 무사히 진행하여 정상 발급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구엘공원을 당일 예매만 하면 정시 오픈 전에 미리 입장하여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 한산하게 걸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혜택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때 아닌 큰 사건이 터졌다.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남부로 향하던 기차가 탈선을 하는 바람에 인명 사고가 크게 발생한 것이다. 출발하기 약 한 달 전이었다. 안타까운 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과 동시에 스페인 내 열차 구간이 대부분 통제되었고 예매해 놓은 기차 티켓도 취소되었다. 유럽 여행 카페에서 실시간 정보를 얻어가며 부랴부랴 대체 교통편을 알아봐야 했다. 마드리드에서 세비야까지 비행기를, 세비야에서 그라나다까지는 알사버스를 예매했다. 계획한 여행 금액보다 더 지출하게 되었고 일정도 조금 꼬였지만 그럼에도 대체 편을 구했다는 것에 감사했다. 동시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공항버스를 예매하고 동생은 방학을 맞이했다. 짐 싸는 건 늘, 언제나 귀찮은 일. 그러나 대문자 P인 동생은 처음 가는 유럽이 기대되었는지 이것저것 여행 관련 물품들을 구매하며 일찍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문자 J라 하더라도 짐 싸는 건 항상 미루는 나는 그런 동생을 보며 '나도 얼른 짐 챙겨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결국 출발 이틀 전에 캐리어 지퍼를 열었다. 겨울 유럽이라니. 옷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고 결국 이것저것 집어넣다 보니 또 맥시멀리스트가 되어 겨우 지퍼를 닫을 수 있었다. 밤에 추울 것을 대비하여 온열매트까지 챙겼으니 말 다했다. 그 와중에 동생은 올리브유를 잔뜩 사 오겠다며 완충제까지 야무지게 챙겼고 나 역시 꽉꽉 들어찬 캐리어를 조금 비워놔야 하나 고민했다. 어찌어찌 짐을 다 챙기고 출력해 놓은 티켓과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비롯한 각종 자질구레한 것들을 넣은 배낭, 지갑과 여권을 넣은 크로스백까지 정리하고 나자 여행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오후 1시 비행기라 새벽까지 공항에 갈 필요는 없었지만 조금 여유롭게 출발했다. 공항버스 타는 곳은 이미 사람들도 앉을자리가 없었다. 다들 해외여행 많이 가는구나. 5분 정도 늦어진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하고 짐 검사를 하고 면세점이 늘어선 출국장에 들어서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 여행 가는구나. 한 시간 정도 연착된 비행기 티켓을 잘 챙겨 넣고 면세점에서 엄마가 부탁한 화장품과 비행기에서 뿌릴 미스트, 역시나 비행기에서 먹을 간식거리 등을 샀다. 한식으로 야무지게 배를 채우고 커피를 마시며 부디 날씨가 좋기를 바랐다.
좌석은 다리를 조금 뻗을 수 있는 Extra leg room으로 예매해 확실히 조금 편했다. 다만 우리 앞 좌석이 프리미엄 이코노미라서 정말 우리 앞 좌석까지만 웰컴드링크를 주고 우리부터는 주지 않는 모습에 조금 웃기기도 하고 짜치기도 하고. 그래 너네 많이 먹어라. 비행기에서 풍향고도 보고 미리 다운로드하여놓은 스페인 여행 관련 영상들을 보며 긴 비행시간을 견뎠다. 루프트 한자는 기내식 두 번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샌드위치며 컵라면까지 먹을 수 있는 우리나라 국적기를 떠올리자 조금 많이 아쉬웠다. 괜히 물만 벌컥벌컥 마시며 가도 가도 줄어들지 않는 시간을 열심히 계산했다.
경유지인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는데 공항이 워낙 넓어서, 그리고 첫 비행기의 연착으로 급작스럽게 줄어든 대기 시간으로 우리는 본의 아니게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겨우 도착하여 두 번째 짐검사를 하고 독일 입국 심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는 곳까지 서둘러 반 뜀박질을 했다. 긴 비행으로 퉁퉁 부운 다리를 억지로 재촉하며 겨우 탑승장에 도착하자 곧장 탑승 시간이 되었다. 서둘러 화장실을 다녀오고 마드리드까지 가는 두 번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 시간 반 정도 이동이라 초콜릿과 물만 제공되었다. 이미 훌쩍 넘어버린 취침 시간에 두 번째 비행에서는 기절하듯 자버렸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자 이미 밤 11시 50분이었고 짐을 찾아 공항을 나오자 12시가 넘은 시간이 되었다. 곧장 택시를 타고 솔광장으로 향했다.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택시는 우리에게 솔광장 입구에 내려줄 테니 걸어서 호텔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캐리어를 끌고 솔광장을 걸었다. 곰이 나무에 기대 있는 유명한 동상을 지나 생각보다 빠르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숙소에 늦게 도착할 예정이니 기다려달라고 미리 메시지를 보내 부탁한 덕분에 우리는 다행히도 늦은 시간이었지만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 옛날 방식의 유럽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에 도착, 체크인을 무사히 마쳤다. 냉장고도 없는 작은 방에 짐을 풀고,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자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우리는 지금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