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드러지게 사업체 하나를 말아먹었지요.
약 10년 동안 해오던 사업을 마침내 끝내고야 말았어요.
뭐 그럴 때가 된 거죠, 오래 했고 오랜 시간 버텨왔는데 결국 모든 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깐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던데 정말 세상이 많이 변해버렸지 뭐예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시간 동안 사업을 하면서 고민해 왔던 것, 그것은 시대의 흐름이었어요.
이렇게 문장을 적어놓고 보니 왠지 핑계의 글이 될 거 같기도 한데, 말하자면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걸어왔던 길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었던 것을 깨달았던 거죠.
10년의 시간 동안 세상의 흐름이 변해가는 걸 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꼭 사업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을까?'
'내가 원하던 행복한 삶을 그리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 과연 사업을 통해서만 벌 수 있는 것일까?'
이 말은 다시 돌이켜보면 돈을 벌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가 라는 말로 귀납되는 말이었지요.
사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어요. 밈으로도 많이 나왔고 요즘 세상에서 흔히 고백하는 문장이지요. 저도 그 사실을 구태여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돈이라는 물질적인 재화가 있음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자본주의의 시장에서 살고 있는 저로써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사업을 시작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내가 얼마만큼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전주'라는 도시에서 자영업자로 살아오는 건 참 힘든 일이었어요. 전국에서도 자영업자 비율로는 가장 높았던 도시고 그런 것 치고는 인프라나 재정적으로 두텁지 않은 도시에서 IT 기술을 갖고 사업을 하기에는 쉽지 않았어요. 그 말은 결국, 내가 여기서 벌어서 저기에다 쓰면 저기도 벌어서 나한테 쓰는 품앗이 같은 경제구조를 갖춘 도시거든요. 그러면서도 기술이나 유행의 흐름에는 조금은 느린, 슬로시티를 표방하는 도시다운 조금은 더딘 도시이지요. 청년들이 일할 직장이 없어서 자꾸 탈 전주를 하게 되고 갈수록 연령대가 높아지는 도시.
이런 도시에서 지역 거점의 IT 회사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IT라는 기술은 결국에 공간과 거리를 초월해서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이라 생각했고 이 지역에서는 이런 분야로 큰 비전을 갖고 움직이는 회사는 없었어요. 적어도 제가 파악하기론 말이죠. 그래서 이 회사를 통해서 나와 뜻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인생을 그렸어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꿈과 행복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그런 기반이 되는 회사를 꿈꿨지요.
열심히 뛰었고,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었어요.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게 만드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사업을 시작하고 첫 1년은 그것을 배우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 도시와 사람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는 시기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시간은 꽤나 고통스러웠어요.
어릴 때부터 프로그램을 만들어왔고, 특히 웹이라는 언어의 탄생부터, 그 언어들의 성장과 지금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지고 사라졌던 그 수많은 언어들을 다뤄왔던 저에게는 나름 자신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고객이 원하는 건 가장 최신의 기술이 아니라 적절한 금액과 겉으로 보기에 적당히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제품이었어요. 이 부분을 타협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20대의 치기였을까요, 아니면 전문가라 불리고 싶은 이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최소한의 양심때문이었을까요. 사실 쉽게 가자면 쉽게도 갈 수 있었거든요, 적당 적당히 만들고 그에 맞는 가격을 받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사업을 하는 사람의 입장보다 앞서 기술을 다루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좁은 지역에서 또다시 마주할 사람들이고, 지역 거점의 IT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도 있는데, 어떻게 ‘적당히’만 할 수 있겠어요? 결국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었죠.
가끔 생각을 해요. 나 홀로 너무 고고한 척 살아왔나라고, 그래도 최소한의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답니다. 물론 이 선이라는 게 절대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이 기준이 다른 사람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어요. 각자가 살아오면서 축적된 삶의 경험들이 그 기준을 만들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남들 탓을 할 수 없었어요.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곱씹으며 채찍질할 수밖에요. 그러다 보니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계속 덧나기 시작했지요.
그래도 나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월급을 줘야 할 팀원이 있었고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기 때문이었죠.
사업적인 성과는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그 채찍질 덕분인지 개인적인 역량은 꾸준히 발전했어요,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니 성장할 수밖에 었었지요. 그러다 보니 대학교에서 위촉강사로 강의도 하고 여러 가지 사업에 관련해 부수적인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일을 하다가 저녁에는 대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고 10시가 넘어 돌아와서 다시 남은 일들을 하며 조금씩 희망이란 불을 피우기 위한 불쏘시개도 모으기 시작했었죠.
깨지고 부딪치고, 겉으로 보기에는 모난 부분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완만해지는 시기였지요. 남들은 이 시기의 저를 이렇게 표현했어요. '이제는 좀 대표다워졌네?' 저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지만요. '이제는 좀 장사꾼다워졌네'라고.
3년, 사람들은 말해요. 3년만 버티면 된다. 이 말은 모든 분야에 쓰이기도 하지만 주로 사업에 관해서 많이 쓰이는 표현이지요. 그 이유를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모아둔 돈을 써가면서 사업에 관련한 기반을 만드는 것. 그 기반이라는 것은 고객일 수도 있고 인지도 일수도 있고 아이템의 사업일 수도 있겠지요.
그 3년이란 시간 안에 뭐든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어져버리겠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마의 3년은 버텨냈었어요. 힘들긴 하지만 어찌 버텨내서 사업의 범위도 전주를 벗어나고 더 많은 지역에서 일을 시작했지요. 사실 이건 '전주'라는 지역의 한계를 느끼고 전략적인 선택을 한 거였긴 하지만 아무튼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다 '코로나'가 왔지요. '코로나'는 말 그대로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은 전주는 특히 더 피해가 컸지요. 알고 지내던 많은 대표님들이 사업을 정리하고, 도시는 쇠약해져만 갔어요. 나날이 침체되고 활기를 잃어가는 도시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그동안 곪아왔던 것들이 터져 나왔어요. 임시방편으로 막아놨던 상처들이 봇물이 터지듯 터져 나왔지요. 마음이라는 것은 참 묘해요. 스스로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움직일 수가 없더라고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들 반대도 중요하더군요.
그렇게 긴 침전의 시간이 있었어요. 곪은 것들을 잘라내야 새살이 생겨날 텐데 그것을 잘라내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마음의 상처든, 사람 간의 인연이든. 사업적인 부분이든. 오랜 시간 침전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던 시간이었어요. 너무 늦은 감이 있죠. 좀 더 빨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걸어갔어야 했는데 너무 욕심을 부렸었죠. 덕분에 긴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 긴 사유의 시간뒤에 나를 힘들게 만든 것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반 강제적인 사유와 반성의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았어요.
'이 사업을 계속해야만 할까?'
'내가 원하던 행복한 삶을 그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오랜 시간 붙잡아왔던 것이 나를 매몰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땐 깨닫지 못했지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도출하면서 절뚝거리지만 일단은 일어나 보았어요.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선 일단은 일어나야 하니깐요.
시대가 변했어요. 코로나를 지나면서 정말로 시대가 변해버렸어요. 산업의 구조가 특히 많이 변했지요. 이것이 바로 4차 혁명일까요. AI와 빅데이터, IoT 등 다양한 기술들이 생활에 밀접하게 접목되기 시작했고 그 기술들을 실제로 다뤄왔던 저에게는 더 큰 체감이 되었지요. 제가 어느 정도 전문가라고 이야기하며 차지할 수 있었던 영역이 점차적으로 기술의 혁신을 통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지요. 물론 아직 완벽히 그러한 역할을 대체하진 못하지만, 그러한 날이 곧 오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오랜 시간 노력하고 공부해야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그 노력의 1/10만으로도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결국 기술의 혁신이 불필요한 노력과 노동의 시간을 줄이고, 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시대가 오고 만 것이죠. 기술의 대한 이해와 그 기술을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시기.
결국, 개인의 역량과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온 것이고 이 사실은 산업구조의 변화를 이끌게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미시적으로 보면 지금은 개인도 사업을 하는 것만큼의 큰 수익을 창출하고 자신만의 꿈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자신의 역량만 된다면 말이죠.
그렇다면 이것은 나에겐 어떻게 적용이 될까요.
다시 한번 질문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 행복을 위해 사업이 필요한 가?'
결론은 '아니다' 였어요. 오랜 시간 붙잡아왔던 '미련'을 놓아줄 때가 온 것이에요.
이제부터 무엇을 할까 많은 고민을 했어요.
'코로나'를 거쳐 계엄의 시대가 오기까지, 사실 살아생전에 계엄이란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참 놀라운 일이 가득한 인생이지요.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든 현재, 이 사업을 하면서 지켜내고자 했었던 것들. 그리고 이제와서는 사업을 끝내고도 남아있는 것들.
그것은 결국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지요. 결국 사람이 콘텐츠인 것을 알게 되었다랄까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요. 그런데 가끔은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 답답해요. 오랜 시간 사업을 해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위해 개인의 생각이며 감정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글들이 너무 많은 오늘날.
누구나 쉽게 생각을 나누고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그런 오늘날이야 말로 '진정성'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아니 '진솔함'일까요. 그래서 이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김근희'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들을 한 땀 한 땀 적어가면서 손과 발치에 닿는 것들을 다뤄나가고 싶어요. 그것이 사람이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 예를 들자면 문화라든지 예술이라든지 온갖 것들 말이죠.
사람들을 다루고,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들을 다루는 기록.
이 길이 정답일까요?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예전보단 즐겁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즐겁게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 남은 반절을 위해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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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자기소개.
김근희, 국민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해서 약 30년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으며 10년간의 해왔던 사업을 막 해치워버렸음. 대학시절부터 취미로 정한 펜탁스 카메라 하나 들고 19년간 취미로 사진을 해왔지요.
활자중독, 텍스트를 좋아하며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방면의 관심사가 있는 프로관심러.
앞으로 다양한 이야기로 찾아올 예정입니드아.
01. 첫번째 글 - 도보방랑가 10년의 끝에서 다시 첫걸음 떼기
02. 사진을 취미로만 어떻게 19년을 할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