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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Sep 14. 2015

주님 오 나의 酒님

데낄라는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는 소문이 있어. 소주는 아니더라

"이 시간에 너와 만나서 술을 마시는 게 옳은 일일까." 


옳지 않다. 그래서 첫잔을 기울였다.  잔의 수평을 기울여 흔들고 입가에 털어 넣었다. 


주님의 아리따움은 그 무엇에 비할소냐


"거 또 혼자먹냐. 하여간."

"잔이 차 있는 꼴을 못 봐 나는. 한잔 더 따라봐."


쓰디 쓴, 그리고 달달함이 식도를 타고 혀끝으로 올라온다.  보통의 음식들은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내려가던데 어찌 이 녀석들은 순서가 반대인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어떠리 하고 연거푸 들이킨다.  부어라 부어라, 비워야 담는다. 주님은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 하였는가.  담을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로다.


"무슨 일이야 오늘은? 이 시간에. "

"뭐 일이 있어야 마시나. 주님을 영접하는 건 어디서든 은혜로운 일인데."


한 마디씩 나누고 한잔씩 마시고.  약속이라듯 한 것처럼 주님을 몸안에 영접한다. 

적막. 도란도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은 그래서 고요하다. 술이 아니라 대화를 마시러 온 사람들이기에 불필요한 소음이나 움직임은 없다.   불을 줄이며 찌개를 졸이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 외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 없이 서로의 잔을 부딪친다.


매번 그렇다. 별다른 할 이야기도 없지만 간혹 이렇게 만나 마주 보고 잔을 섞는다.  평소에는 마주 보는 것도 오글거리는 주제에 주님 앞에서는 서로를 마주 보고 시간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부족하다 느끼며 살아가고 누군가의 시간을 뺏으려 하고 뺏기길 거부하는 강박의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 종종 이렇게 부유한다.


잔을 채우고 채워진 잔을 부딪치고, 입안에 털어 넣는 과정까지의 시간. 10초.

음미하는 시간 10초. 

주고받는 대화 10초.

내가 따라야 할 것인지 따라주길 기다려야 할 것인지 재는 찰나. 


아무럼 어떠냐 내가 따르지.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 이지.

따른다. 어림짐작으로 서로 간에 비슷한 양으로 대중을 맞추고 머뭇거린다. 적막을 깨야하나


"이모, 여기 한 병만 더 주세요."


도란도란 나누던 사람들의 대화가 잠시 끊기고, 다시 이어지는 그 짧은 2초. 

당신들의 2초를 뺏은 것 마냥 미안하다. 무의식적인 배려일까. 



넘긴 잔이 몇 잔이었는지 기억을 돌아보기가 약간 아리송 해지고 눈앞의 병들이 비틀비틀 춤을 추고 젓가락들이 탈출을 강행한다.  숟가락은 바닥과 대화를  시작한 지 오래.  대화와 혼잣말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청중과 화자가 뒤섞일 무렵.  문득 이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버스 끊길 시간이다. 가자."

"벌써 그런 시간이 됬냐. 그래 일어서자."


"언제 한번 날 잡고 먹어보자. "

"그래 그래. 내가 계산할게. "

"아냐, 내가 먹자고 했는데 내가 살게."

"괜찮아. 뭘 또."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정신을 꽉 붙잡고 단어 하나하나를 틀릴까 주의하며 말을 내뱉는다.

괜스레 말이 어눌해지는 느낌.  혀는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 듯 이제 제어를 벗어나 제멋대로 놀기 시작하고 땅바닥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것을 이때야말로 보여주겠다는 듯 빙글빙글 돌아간다.


돌아라 돌아라.

그래야 내일의 해가 지평선을 넘어 떠오르지. 


"조심히 들어가. 늦었다."


끝내는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이럴 바에는 좀 더 일찍 마주할걸 그랬나.


하늘에서 사다리가 내려왔어. 그래서 내가 기어올라간거야



*사진과 일상이 함께하는 본격 일상 스냅글 사진

**모든사진은 직접 찍은것입니다. 아마두요. 찍긴 찍었으되 완성은 포토샵이로다. 


그리고 해쉬태그

#미스터그니쉬 #일상스냅글사진 #브런치북 #김근희 #주님주님 #일기인듯일기아닌일기같은글 #언제는날잡지말고오늘마시면되지 #'일'이들어간날에만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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