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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Sep 14. 2015

고양이 기척을 담다.

"찰칵"

'뒤좀 돌아볼래' 뷰파인더를 통해 말을 걸었다. 7년 된 카메라 셔터막의 '찰칵' 소리가 녀석들의 주의를 끄는데 성공했다.  



요 근래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산책을 다니던 녀석들을 한번 담아봐야겠다 생각하고 아침에 카메라를 챙겼다. 오늘따라, 퇴근길 하늘에서는 비를 쏟아부었고 우산과 카메라 중에 카메라를 택한 나는 '비를 맞고 걷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양말에 무겁게 스며드는 빗물을 느끼며 집으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그리고 발꿈치까지 차오르는 차가움을 느끼며 선택과 선택에 대한 결과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를썼다.  손이 두개이면 카메라와 우산을 둘 다 챙길 수 있지 않았겠냐는 이성의 목소리는 애써 외면하기로 하였다. 그 녀석은 항상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나타나서 잘난 척을 하더라구.


내 나이만큼이나 함께 늙어온 대문은 이제는 녹슨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녹물을 질질 흘리는데도 아량곳 하지 않는다. 비좁은 열쇠 구멍에 열쇠를 조심히 틀어넣는다. 요새는 제 열쇠도 구분 못하는지 간혹 내 열쇠를 끊어먹는지라 비 오는 날 방심이라도 한다 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끊어먹으니 더 긴장해야 한다. 


문짝을 바꾸면 될 일이지만 산다는 것이 그렇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면 문제가 간혹 보여도 그러려니 하고 그냥 함께 흘러가는 것. 문제가 있다고 대상을 때려 바꾸는 것보다는 내가 순응하고, 적응하면 유유히 지나갈 일이라는 것.   문을 가는 것보다 열쇠를 하나 파는 게 더 저렴하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기로 한다.



뭐, 이 나라는 문제만 생기면 갈아치우니 나라도 그러진 말아야지.  그래서 내 카메라 핸드 스트랩은 가죽이 벗겨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으며 넥스트랩은 끊어지기 직전이고나 라는 깊은 깨달음이 홀연히 임했다 사라진다. 


마당을 지나며 화단 너머로 손을 벌리고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주고 나서 문짝만큼이나 오래된 계단을 오른다. 20년 이상을 오르내리던 계단은 이제는 눈감고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익숙해져서 그런가.  어떤 것이든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다. 


낯설었던 첫 걸음은 익숙해진 걸음으로,  어색했던 첫 키스, 첫 만남, 처음 사진기를 들었을 때, 처음 통기타를 뜯었을 때.  처음이었던 것은 익숙함으로 변하고 담담한 익숙함으로. 아, 첫 키스는 담담하면 안 되겠구나.  몰매 맞을 생각. 사회가 흉흉하니 조심해야지.  하이에나들이 너무 많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느긋히 계단을 오른다. 필요 없이 멈춰 서서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고 눈높이에 와버린 감나무 잎새도 한번 매만져주고. '오늘도 왔어. 집 잘 지키고 있었니'  


2층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인기척, 인기척. 아니 단어의 정의로는 인기척이지만 사람의 기색이 아닌 어떤 작은 존재의 움직임. 그걸 뭐라고 표현하더라.  눈을 감아도 알 수 있는 이 느낌은 잠에 들기 전에 귓가에 아스라이 들니는 풀벌레 소리. (도심 한가운데에서 들리지) 방바닥을 바스락거리며 기어가는 어떤 이를 모를 무엇의 움직임. 옥상 위를 내달리는 작은 존재들.  밤바람에 흔들리며 노래하는 나뭇잎들의 교향곡과도 같은 그런 느낌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나를 이루고 너를 이루고 우리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인기척이었지.  그리고 고양이. 



아, 잊을뻔했네! 


'뒤좀 돌아볼래' 뷰파인더를 통해 말을 걸었다. 7년 된 카메라 셔터막의 '찰칵' 소리가 녀석들의 주의를 끄는데 성공했다.  

"찰칵"




*사진과 일상이 함께하는 본격 일상스냅글사진

**모든사진은 직접 찍은것입니다. 아마두요. 찍긴 찍었으되 완성은 포토샵이로다. 


그리고 해쉬태그

#미스터그니쉬 #일상스냅글사진 #브런치북 #김근희 #고양이 #일기인듯일기아닌일기같은글 #양말차오른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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