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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하다 Nov 15. 2022

산호를 닮은 다육이

바다가 내게 선물한 육지 보물

“오빠, 얘 부채산호 닮았다!”


식물이 가득한 공간을 좋아하지만, 식물을 가꾸고 키우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나는 3년 전, 엄마의 특명으로 대신 방문한 양재 꽃시장에서 춘봉이를 처음 만났다.


선물할 화분을 고르고 예쁜 식물들을 구경하던 중 우릴 멈춰 서게 한 아이. 유포르비아 락테아(Euphorbia lactea cristava variegata)라는 학명의 춘봉 철화는 화이트 고스트라는 다육식물과 가시선인장이 접목된 형태다. 부채처럼 반원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모양,  내가 좋아하는 파스텔톤 민트빛 컬러에 끝부분이 핑크로 물든 모습이 참 예뻤다.

춘봉 철화. 내 수많은 다육이들 중에 언제나 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춘봉이가 날 멈춰 세운 건 바닷속에서도 늘 나를 멈추게 하는 부채산호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면이 아니라 미로처럼 이어진 선으로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서는 큰 면적을 만들어낸 부채산호와의 만남은 아무리 반복되더라도 수중에서 늘 설레는 행복이다. 부채 산호에는 눈에 띄지 않는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살고 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데 색깔까지 부채산호와 똑같은 피그미 해마를 찾는 건, 숨은 그림 찾기 최상 난이도 수준이지만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수중에서 영상을 주로 촬영하지만 부채산호를 만나면 꼭 사진 한 장으로 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보홀, 2022)


남편이 촬영한 피그미 해마. 실제 크기는 새끼손톱보다 작다. (말라파스쿠아, 2019)


그날 처음으로 내 돈을 들여, 뿌리를 흙속에 내리고 있는 식물을 키울 생각으로 사서 집에 데려왔다.

봄 춘, 봉우리봉(春峰) 한자어 이름인 춘봉이. 봄날의 산봉우리라는 싱그럽고 성장하는 기운의 이름을 가졌던 그 아이. 식물에 대해, 더구나 잎과 줄기에 수분을 가득 저장해두는 다육식물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춘봉이에게 잔인하고 나쁜 반려인이었다.


햇빛을 좋아하는데 하루 종일 실내에 두고 예뻐했고, 물을 좋아할 거라 생각해서 맛있게 먹으라고 물을 자주 주었다. 언젠가부터 춘봉이는 처음 집에 왔던 때의 건강하고 예쁜 빛을 잃어갔고, 악취를 풍기며 생명을 다해버렸다.


‘역시 나는 식물하고 안 맞아.’


마치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렇게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왜 춘봉이가 그렇게 아프게 떠나야 했는지 돌아보지 않은 채 나는 내 인생 첫 반려식물과 그렇게 두 달여 시간 만에  이별했다.


그로부터 1년 반 정도 지난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춘봉이가 너무나 그리웠다. 아니, 어쩌면 코로나 19가 덮친 이 숨 막히는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에 부채산호를 닮은 춘봉이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무작정 양재 꽃시장에 갔다. 한참을 찾아 춘봉이를 만났다. 남편도 바다에 가지 못해 마음 한쪽이 허전했던 탓일까. 사랑목이라고 불리는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 방울복랑금이라는 동글동글 귀여운 아이가 나도 데려가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꽃집에 갔을 때, 나중에 꼭 키우자고 봐 뒀던 하트 모양의 다육이 하트호야도 골랐다. 그리고 우리는 손바닥보다 작은 2000원짜리 다육식물 5 아이를 더 골랐다. 라울, 백도선, 까라솔, 자라고사, 라디칸스. 순식간에 아홉 다육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의 첫 다육이 친구들. 위좌측부터 하트호야, 라디칸스, 자라고사, 사랑목, 백도선, 라울, 까라솔, 방울복랑금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데 뭔가 모르게 맘이 요동치며 설렘과 책임감이 차올랐다. 지난번처럼 아이들이 잘못되면 안 돼. 다육식물에 대해 검색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육 식물에게 물만큼이나 빛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실내에서도 빛이 부족하지 않게 LED 조명을 구입했다. 정리정돈과는 다소 거리가 먼 우리 부부에게 다육이 친구들과의 동거는 신선한 분위기 전환이었다.

빛을 받으며 가지런히 자리한 아이들을 바라보면 바닷속을 유영할 때처럼 깊고 투명한 호흡이 가능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공조명이 할 수 있는 역할엔 한계가 있었다. 빛과 물 외에도 신선한 공기와 바람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베란다로 이동하게 되었고,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베란다에 나가 다육이를 바라봤다.

나의 일과 중 대부분은 새로운 다육식물을 검색하거나 유튜브에서 다육식물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1년 전, 춘봉이 하나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떠나보냈던 나는 이제 달라졌다. 다소 몇 번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아이들을 제법 잘 키워내며 두 달 만에 100종이 넘는 다육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베란다에서 작은 화분에 다육이들을 키우던 시절


베란다의 공간을 더 이상 이겨낼 수 없었던 데다가, 여름의 고온다습한 환경에 취약한 다육이들이 허망하게 떠나버릴 것이 너무도 걱정되었던 나는 5월 말, 키핑장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키핑장은 다육식물을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춘 비닐하우스 내에 대략 3.6m x 1.8m 정도의 테이블을 월세를 내고 사용하는 다육 마니아들의 안식처이자 노동의 공간이다.

내 다육이들의 월세집. 키핑장이 최근 확장해서 나도 더 편한 자리로 이사하고 새 이웃들을 기다린다.


예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너무도 빨리 흐른다. 행복하게 집중했다는 걸 체감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 힐링의 공간. 그런 만큼 물 주기, 분갈이, 영양과 병충해 관리, 하엽 정리 등 수많은 다육이들에게 골고루 애정을 쏟으려면 신체적 노동이 고되기도 하다.


“이게 다 노동이야.”


분갈이를 하다가 마주치는 마니아들의 눈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데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마치 반복 다이빙으로 약해진 피부가 결국 오리발에 쓸려 파이면, ‘아, 다이빙 나랑 진짜 안 맞아!’라면서도 떨어질 게 뻔한 반창고 하나 붙이고,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쓰라린 고통을 이겨내며 바닷속으로 다시 입수하는 다이버들 같다.

언제부턴가 나는 다육이와 다육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내 인생이 다시 시작된 전환점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토록 소중한 ‘다이빙’을 투영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는 식물과 안 맞아.’라는 무책임하고도 단편적인  생각으로 떠나보냈던 춘봉이가 알면 흙에서 다시 태어나 살아 돌아 올 이야기다. (그랬으면 ㅜㅠ)


무엇이 달라졌을까.

무엇이 1년 반 사이에 나를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인정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또다시 결핍이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처음 다이빙에 빠져들었을 때, 배우로서 느꼈던 마음의 결핍과 무력감이 내게 바다의 의미를 더 소중하고 깊이 느끼게 만들었던 것처럼. 코로나19가 앗아간 내 호흡의 시간. 아무것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 빠져있을 때, 다육이의 존재가 내게 웃음을 주기 시작했다.


“있을 때 잘해.”


사람이든 물질적 풍요이든, 건강이든 시간이든.

사라지지 않을 거라 느껴지는 것들은 종종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의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곤 한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때론 아끼는 물건은 닳아 없어질까 봐 똑같은 것을 2개씩 구매하기도 하면서도, 정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매 순간의 소중함은 왜 이렇게 놓치게 되는 것인지.


그러나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겪을 당시에는 끔찍하고 잔인하다고도 느껴졌던 그 결핍과 상실의 시간이 결국 내게 소중한 만남을 가져다주었고, 그것을 통해 인생에 더해진 기쁨과 에너지가 훨씬 더 많아졌다는 점이다. 코로나 19는 모든 면에서 최악이지만, 그 시기였기에 찐 다육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고, 다육이를 키우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참 많다.


해양생물과 나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두기와 매너 지키기 사랑법이 중요했다면, 다육이와 나 사이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유대와 보살핌의 사랑이 필요하다. 해양생물이 팬심으로 만나는 덕질의 대상이라면 다육이들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내가 보살펴야 하는 내 새끼의 개념이다. 해양생물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했던 마음이 해주고 싶으면 한없이 해줄 게 늘어나는 다육이들 만나니, 뭔가 대리만족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내 보살핌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모양과 색깔이 변하고, 번식방법에 따라 개체수를 늘려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그 자체로 에너지를 얻는다.

레드혼. 6개월을 키웠더니 이렇게 예쁘게 어른이 되었다.
아리엘. 같은 아이가 맞나 싶을 만큼 6개월 만에 달라진 모습. 둥글고 탱글 하게 다져지고 붉게 물들었다.


참 신기하게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기던 시간이었는데, 나 스스로가 세상에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었음을 말 없는 식물들에게서 배운다. 가끔은, 내가 혼자 할 수 있더라도 아주 들어주기 쉬운 가벼운 부탁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고 제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진심 어린 인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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