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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하다 Dec 05. 2022

바다숲

모래사막에서 만들어낸 위대한 생태계

전체적인 컬러는 그린과 블루로 이루어진 청량한 쿨톤에 수직으로 높게 뻗어있는 다양한 식물군이 하늘하늘 거리는 모습. 낯설게 몽환적이지만 두렵거나 피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 자꾸만 더 알아보고 싶고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공간. ‘바다숲’ 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몽글몽글하면서도 푸르게 일렁이는 느낌을 받으며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13년 한 프로그램 촬영으로 갔었던 울릉도 바다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다녔던 동해에서는 보지 못했던 장관을 보고 감동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라는 표현은 너무 상투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한 문장이 정말 온몸으로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모자반이 군락을 이루어 바닥 수심부터 수면까지 정말 멋지게 뻗어 올라있었고, 그 사이를 수중 스쿠터를 타며 누비던 그때 느꼈던 그 짜릿한 전율이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나에게 숲은 육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도 늘 살아있는 마음속 친숙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늘 살아 숨 쉬는 이미지인 ‘바다숲’이 해양수산부가 수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수산자원 조성사업의 예쁜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올해 봄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제 다이빙을 시작한 지 10년의 세월이 훌쩍 넘어가고, 스쿠버다이빙 프로의 자격으로 수중 관련 활동을 꾸준히 해오다 보니 바다와 해양생물, 환경에 관한 일을 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 매년 5월 10일은 우리나라의 바다 식목일이다. 올해 바다 식목일을 맞아 제주 성산 지역 바다숲 2곳을 둘러보고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기후변화로 갯녹음이 발생하고 사막화된 지역에 인공어초를 설치해서 바다를 치유하고 연안 생태계를 복원하는 작업이 바다숲 조성 사업의 전체적인 내용이다. 쉽게 말하자면, 아무것도 살지 않는 사막에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 시작은 모래 바닥에 해조류가 부착해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인공어초를 설치하고 그곳에 해조류를 심고 가꾸는 일이다.      


인공어초 투하 장면. (한국수산자원공단 자료제공)
케이블 타이에 수작업으로 해조류를 하나하나 이식하는 작업. 한국수산자원공단 전문가들의 손길이다.


인공어초는 아주 커다란 시멘트 구조물인데,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던 정글짐처럼 육면체 사이사이 공간이 뚫려 있는 형태, 삼각뿔 모양, 구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이 존재한다. 내가 바다 식목일을 맞아 방문했던 제주 바다숲 포인트는 피라미드 형태에서 꼭대기 삼각뿔을 잘라낸 아래 사다리꼴 기둥 모양이었다.


첫 번째 입수했던 제주 평대리 바다숲. 조식동물 제거 작업 중인 나. 2022(해양수산부 자료제공)


2번의 다이빙을 진행했는데, 처음엔 어초를 투입하고 관리한 지 3개월 된 포인트였고, 두 번째는 3년이 지난 포인트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어초에 심어진 감태류가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모니터 하는 것과 해조류를 잡아먹는 조식동물(대표적으로 소라, 군소, 해삼 등)을 잡아 오는 것이었다. 안정적으로 생태계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생산자인 해조류 군이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  

    

첫 번째 입수한 포인트에서는 너무나 빠르게 번식하는 조식동물들을 해조류들의 안락한 집에서 떼어내어 다른 해역으로 방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사실 다이빙을 하면서 생물을 만지고 물 밖으로 생물을 건져 올린 경험이 정말 처음인지라 내게는 참 생경한 경험이었다. 배로 위치를 이동해서 살아있는 채로 잘 방생했지만, 갑자기 환경이 바뀐 소라들이 소라둥절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소라가 바다 생태계 보전과 번식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린 인간의 마음을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소망하며 두 번째 포인트로 이동했다.   

   

첫 번째 포인트에서 모래밭에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인공어초와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던 감태들을 보고, 나는 바다숲을 조성하는 과정도 육지의 식물 키우기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많이 쓸려나가지 않고 잘 부착되어 아기자기하게 번식된 종자까지 자라나는 모습을 봤던 터라 3개월 만에 이 정도라면 좋은 결과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니 바다는 때론 너무도 잔인했다.   

   

보통 육지에서는 같은 환경에서 나무를 심고 가꾸면, 더 오래전에 심은 나무가 더 클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바다숲도 단순하게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 더 풍성하게 형성되어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태풍의 집중 피해를 받게 된다면 바다숲을 조성해온 시간의 오래됨과 관계없이 한순간에 완전히 쓸려나가 다시 제로의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육지에도 산불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있긴 하지만 바닷속의 위기 상황은 좀 더 잦고 치명적이며 제때 대응하기가 어려워서 바다숲 조성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조성된 지 3개월 차 된 바다숲을 보고 3년 차가 된 바다숲 포인트로 이동하는 배 위에서 이런 설명들을 들었다. 전문가님들이 왜 이 설명을 해주시는 걸까. 3년을 가꾸었지만 별로 기대하지 말라고 미리 말씀해주시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멋지게 만들어냈다고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말씀해주신 걸까. 나는 궁금한 마음을 안고 입수했다.      


정답은 후자였다. 울릉도에서 느꼈던 전율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대단한 바다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엄청나게 강한 횡조류가 흐르고 있어서 모자반들이 가로로 누워있긴 했지만 정말 길이가 대단했다. 수심 10m 지역이었는데, 아마 조류가 없었다면 바닥부터 수면까지 뻗었을 길이의 모자반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평소에 해조류라고 하면 미역, 감태, 모자반처럼 잎의 면적이 넓고 매끈한 식물을 떠올리는데, 그날은 모자반 사이사이에 알알이 열매가 달린 것처럼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용으로 예쁠 것 같은 식물이 많아서 신기했다. 여쭤보니 모자반에 포자가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그게 터지면서 또 다른 모자반이 태어나게 된다고.


모자반에 포자가 달린 모습. 종달리 바다숲, 2022 (해양수산부 자료제공)


동해에서 수도 없이 보는 군소들인데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군소를 만났다. 군소는 어두운 색깔의 연체동물인데, 껍데기 없는 달팽이처럼 생겼다. 일반적으로는 어른 손만 한 크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내 한 팔 길이의 초대형 군소를 마주했다. 그 거대함에 정말 놀랐다. 그리고 함께 입수했던 전문가님의 팔뚝보다 큰 홍해삼도 봤다. 어떻게 무(無)에서 시작한 이 생태계가 이렇게 거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냈을까 너무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군소. 종달리 바다숲 포인트. 2022(해양수산부 자료제공)

평소라면 이런 조류에서 다이빙은 그만 끝내고 싶다고 생각할 나인데, 나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솟아나고 있었다. 거센 조류를 이겨내며 어초 하나하나를 잡고 살펴보았다. 피라미드 형태의 어초들은 사다리꼴의 형태 안쪽이 비어있는 공간이었기에 안쪽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생물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전문가님의 손짓을 따라가서 어초의 안쪽 공간을 살펴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해조류들이 엄청나게 센 조류에 가로로 휘어져 있다. (우)종달리 바다숲으로 하강중인 나, 2022(해양수산부 자료제공)


제주는 원래 수지맨드라미라는 연산호로 유명한 바다다. 분홍, 보라 총천연색 예쁜 연산호들이 군락을 이루는 장관은 해외 다이버들에게도 극찬을 받는 포인트다. 그렇지만 수지맨드라미 산호는 크기가 큰 산호는 아니다. 그런데 전문가님의 손끝으로 따라가 고개를 들이민 곳에서 발견한 것은 내 키만 한 연산호였다. 내가 출연자로 참여한 다이빙이라 내 개인 카메라를 소지하지 않은 것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후회가 되는 시점이었다. 너무 조류가 세서 카메라 감독님과 거리가 멀어지면 그를 불러와 다시 이곳까지 데려올 여력이 없는 바다였다. 우럭, 돌돔 등 물고기들도 평소에 보던 크기보다 훨씬 큰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나는 출연자로 참여했지만, 잠시 본분을 망각하고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 다이버로 바다를 즐겼음을 양심선언한다.  

    

수지맨드라미 산호. 종달리 바다숲, 2022(해양수산부 자료제공) 아쉽게도 내 키만한 연산호는 촬영되지 못했다.


사실 나는 강사가 되기까지 거의 모든 교육 다이빙을 국내 바다에서 했고, 국내 바다 다이빙을 하며 감동받았던 경험이 적지 않다. 그런데 종달리 바다숲에서 나는 정말 아주 오랜만에,


‘맞아. 나 이래서 다이빙했었어.’


하고 잊어버렸었던 것 같은 다이버의 열정과 희열을 느꼈다. 내 안에서 뜨거운 희망과 감격이 솟아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다이빙 타임이 짧다고 느꼈다. 조류를 거스르는 다이빙을 정말 싫어하는데도 인솔자의 상승하자는 수신호를 보고 ‘왜 벌써 출수죠?’라는 생각이 들만큼 바다숲이 정말 아름다웠다.     

모래사막에서 3년의 시간 동안 이렇게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종달리 바다숲, 2022(해양수산부 자료제공)


바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나는 늘 인간이 바다와 해양 생물에게 주는 것은 하나도 없고 받기만 하면서, 그들을 아프게 하고 죽이고 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아프고 무기력했던 적이 참 많았다. 쓰레기, 폐어구 수거, 플라스틱 줄이기 등은 속도를 늦출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 방식이나 바다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바다숲을 직접 경험해보고 나니      


'아, 이거다.’ 우리도 바다에게 새로운 집과 양식을 줄 수 있어.'    


그냥 그저 그런 곳이 아니라 정말 멋지고 오래 머물고 싶고 또 가보고 싶은 그런 윤택하고 생기 넘치는 세상을 말이다. 절망 상태에서 희망을 보게 되었던 날. 내가 미쳐 알고 있지 못했던 시간 동안 이런 방법을 연구하고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고 지원하는 수많은 사람과 자원이 존재했음에 깊이 감사한 날이었다.  

    

나는 기회가 주어지면 이번처럼 일회성으로 바다숲 조성사업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그날 만난 전문가님들처럼 바다숲 곁에 살며 어초를 직접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며 해조류를 관리하진 못할 거다. 해양생물을 사랑하지만, 생물 전문가가 아니니 연구를 하지도 못하겠지.

그렇지만 나는 바다와 해양생물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것으로 바다를 위해 계속 무언가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어주는 독자들이 내 힘의 원천이다. 여러분의 사랑이 조금씩 조금씩 더 모여 어느 날 숲처럼 풍성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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