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책 보다 가여운 책은 잊혀진 책이다’
그날, 2017년 12월도 중순이 지난 어느 날, 인천 공항에서 뉴질랜드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때부터 나는 이 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벌써 이십여 년을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지만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고국을 찾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의 하나라는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지만 가을 풍경만큼은 한국을 따라올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 풍경뿐일까? 고국엔 딸과 손주들, 형제자매들, 그리고 그리운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매년 9월이 되면 아내와 나는 마치 나침반의 바늘처럼 고국을 향하는 몸과 마음을 가눌 수 없어 주섬주섬 짐을 싸서 고국 행 비행기를 탔다. 보통은 9월 중순에 한국에 왔다가 가을을 만끽하고 추워지기 전 11월 중순쯤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이 해엔 꼭 첫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싶다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귀국 날짜를 늦춰 12월로 잡았다. 일 년 내내 눈이 내리지 않는 오클랜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눈 내리는 고국의 겨울은 가장 아쉽고 그리운 것 중의 하나였다.
다행히 그 해 겨울 서울엔 11월 20일에 내린 첫눈을 시작으로 비교적 눈이 많이 내려서 아내와 나는 눈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12월이 되자 날씨가 제법 추워졌지만 눈만 내리면 우리는 답답한 아파트를 빠져나와 거리를 쏘다니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무 버스나 집어 타고 차창으로 부딪쳐오는 눈발을 감상하며 말없이 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의 그림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다는 광고를 보고 가서 보았다. 그녀의 그림들은 몽환적일 만큼 아름다웠다. 그녀는 화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할 만큼 재능이 많은 여인이었지만 그녀의 삶의 도정엔 군데군데 슬픔과 질곡이 있었다. 그녀의 그림을 뒤덮은 황홀하고도 부드러운 다양한 색채 속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는 우울한 회색은 바로 그녀의 평탄치 못했던 삶과 사랑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전시회 끝 부분에 ‘진통제(Le Calmant)’라는 그녀의 시(詩)가 벽에 게시되어 있었다.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을 그녀는 ‘죽은 여인보다 더욱 가여운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다,’라고 매듭지었다. 그날 전시회장을 나오는 내 가슴에 남은 것은 그녀의 수많은 아름다운 그림들보다 오히려 그녀의 시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던 때는 대학교 4학년 때였다. 그랬기에 그녀의 시(詩) ‘진통제’의 마지막 구절은 먼 옛날 젊은 날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그렇게 애잔하게 내 가슴을 울렸던 것이다. 맨 처음 피카소의 소개로 맺어졌던 그들의 사랑은 불과 5년 뒤에 파국을 맞게 되었고 아폴리네르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슬픔과 상실을 ‘미라보 다리’라는 시(詩)로 승화시켰다. 로랑생과의 결별을 못내 아쉬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잘 표현한 이 시는 발표되자 곧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가 되었고 유명 가수들이 노래로 불러 불후의 샹송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 江이 흐른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
아 추억해야만 하는가 그 사랑을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왔다
밤이여 오라 鐘이여 울려라
歲月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詩) 미라보 다리를 내게 알려준 책이 ‘半獸神의 午後’라는 프랑스 시집이었다.
대학교 4학년 학기초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종로서적에 갔다가 우연히 서가에서 발견돼 구입한 책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프랑스어에 흥미를 느껴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이 시집(詩集)을 발견했을 때 나는 눈이 번쩍할 정도였다. 붉은 포도주 빛 표지에 장 콕토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책의 크기도 손안에 쉽게 들어오는 아담한 판형이었다. 당시 종로서적은 국내 최초의 대형서점으로 종로의 명물이었으며 학생들이 약속 장소로 많이 이용하던 곳이었다. 주머니가 가벼워 쉽게 책을 살 수 없었던 학생들이 서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와도 주인이 아무 말 안 하던 인심 좋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책을 뽑아 서가에 기대서 친구가 올 때까지 재빨리 책장을 넘겨가며 읽었다. 앞부분 불과 몇 쪽을 넘기지 않았을 때 눈에 들어온 시가 바로 기욤므 아뽈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였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 江이 흐른다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 Et nos amours
생전 처음 만져보는 프랑스 시집이었고 생전 처음 프랑스어로 읽어보는 프랑스 시였다. 나는 너무 기뻤고 거의 황홀할 정도였다. 정신을 차리고 목차를 살펴보자 그때까지 귀동냥으로 들었던 유명한 프랑스 시인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었다. 발레리, 베를렌느, 보들레르, 렝보, 말라르메 등등. 우와 이런 분들의 시를 읽을 수 있다니. 나는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듯 책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때 친구가 왔다. 서점을 나오며 나는 책값을 치렀다. 정가 550원. 조금도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학교 마지막 해 1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손에 들고 있었던 책이 바로 이 시집이었다. 혼자 배운 프랑스어라 발음도 실력도 시원찮지만 이 시집에 담겨있는 시를 읽기 위해 열심히 사전을 찾았고 가장 먼저 읽고 외웠던 시가 비교적 쉬운 말로 쓰여있었던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였다. 그랬기에 그날 마리 로랑생의 전시회를 보고 나오는 내 머리에 오랜 망각의 늪을 헤치며 이 책이 떠오른 것이었다. 참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내 삶의 도정 어딘가에서 사라져 버려 잃어버리고 찾지 않았던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 이 책이 내 서가 어딘가에 꽂혀 있을 것을 믿었다. 무정하고 무심한 나는 잊고 있었지만 한 때 내가 그렇게 아꼈던 책은 결코 나를 잊지 않고 어느 구석에서 다소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찾아내서 다시 그 옛날 젊음의 손때가 묻어 있을 ‘미라보 다리’를 읽어보리라 생각하자 빨리 뉴질랜드로 돌아가고 싶었다.
인천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까지의 비행시간은 열 시간이 넘는다. 꽤나 긴 시간이었지만 그날 비행기에선 내내 이 책을 생각하며 지나간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엔 남자 고등학교에선 제2외국어로 대개 독일어를 가르쳤다. 프랑스어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지만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나는 대학교 3학년 때에 혼자서라도 프랑스어를 배울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배운 프랑스어였기에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기엔 역부족이었던 내 앞에 나타난 ‘半獸神의 午後’ 시집은 너무도 반갑고 귀한 책이었다. 나는 열심히 사전을 찾으며 시를 읽었고 짧은 시들은 외웠다. 오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쉽게 외울 수 있는 시가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를 비롯하여 뽈 베를렌느의 거리에 ‘비가 내리듯(Il pleure dans mon Coeur)’, 보들레르의 ‘음악(La musique)’등이다. 대학교 4학년 1학기가 다 끝나가는 어느 날 오후 학교 앞 다방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과 차를 마시던 때에도 내 손에는 이 시집이 들려있었다. 이야기 끝에 여학생 하나가 짓궂게 졸라대는 바람에 내가 용기를 내어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프랑스어로 암송하자 모두가 잠깐 숙연해졌다. 좀 뒤에 나를 졸랐던 여학생이 똑바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무 좋아요, 혼자 공부하셨다며 어떻게 그걸 다 외우세요.’ 아직도 그때 그 여학생의 빛나던 눈동자가 머릿속에 생생하다.
오클랜드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짐도 풀지 않고 서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서가 한 귀퉁이에 얌전히 꽂혀있는 ‘半獸神의 午後’를 찾아냈다. 비록 오랫동안 읽지 못했고 눈길마저 제대로 주지 못했지만 나의 책은 내가 아껴 보관하고 있는 몇몇 책들과 더불어 집 나간 망나니 서방님을 기다리는 새악시처럼 다소곳이 서있었다. 조심스레 책을 뽑아내며 나는 ‘고맙다,’라고 조용히 책에게 속삭였다. 책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오래된 책 특유의 향기로 대답을 대신하는 것 같았고 나는 지나간 오십 년의 긴 세월에 가려있던 여러 추억이 신기루처럼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때 로랑생의 시 ‘진통제’의 마지막 구절이 다시 생각났다.
Plus que morte 죽음보다 더 한 것은
Oubliée. 잊혀지는 것이다
이 마지막 구절을 보통은 ‘죽은 여인보다 더욱 가여운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다’라고 해석하지만 시집 ‘半獸神의 午後’를 찾아내 손에 들었던 그 순간의 나는 ‘죽은 책 보다 가여운 책은 잊혀진 책이다’라고 해석하고 싶었다. 나는 다시 ‘미안하다, 하지만 결코 너를 잊지는 않았다,’라고 말하며 조심스레 책을 열어 제일 뒷장을 폈다. 1970년 12월 20일이 출판 날짜였고 정가가 550원이었으며 역편자(譯編者)는 閔憙植 李在浩 두 분이었으며 그 옆에 두 분의 성함이 같이 들어있는 인장(印章)이 아직도 선명한 붉은색으로 찍혀 있었다. 그때 내 손에 들린 책은 작은 한 부분까지 새롭게 느껴졌으며 또한 너무도 귀하게 마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시 책을 제대로 펴서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찾았다. 분명히 책 앞부분에 있을 것이라는 옛 기억대로 곧 찾을 수 있었다. 28쪽에서 31쪽까지 네 쪽에 걸쳐 우리말 역시(譯詩)와 프랑스어 원시(原詩)가 같이 실려있었고 원시의 행간과 여백에는 내가 사전을 찾으며 연필로 메모해놓은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나는 선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를 읽었다. 처음에는 한글 역시를 한 줄 한 줄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그런 뒤 프랑스어 원시로 돌아왔다.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입에서 눈에서 멀어졌던 프랑스어인가? 나는 몇 번이나 입 속에서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발음해보았다.
수르 뽕 미라보 꿀르 라 센느(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에 노 자무르 (Et nos amours)
아니,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프랑스어에 이번엔 내가 놀랐다. 제대로 발음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오십 년의 세월 동안 거들떠보지 않아 잃어버렸던 시와 프랑스어가 입에서 그렇게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또 고마웠다.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감흥이 새로웠다. 나는 문득 그 옛날 학교 앞 다방에서 이 시(詩)를 프랑스어로 암송하자 ‘너무 좋아요,’라고 눈빛을 빛냈던 여학생이 지금 나를 보면 무어라고 할까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나는 계속 읽었다
Faut-il qu’il m’en souvienne 아 추억해야만 하는가 그 사랑을
La joie venait toujours après la peine 사랑은 언제나 고통 뒤에 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사랑은, 그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이던,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던, 친구 간의 사랑이던, 참된 사랑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였다. 그리고 그 고통이 있기에 사랑은 추억되고 또 추억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이 구절은 그대로도 좋았지만 아뽈리네르와 마리 로랑생의 부서진 사랑을 안 뒤에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나의 책을 나는 다시 찾았다. 2017년 첫눈을 보고 싶다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서울에 머물렀기에 마리 로랑생의 전시회를 볼 수 있었고 전시회에서 만난 그녀의 시(詩)가 일깨워 준 아뽈리네르 덕분에 나는 거의 반세기 동안 잃어버렸던 나의 책 ‘半獸神의 午後’를 다시 찾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책은 다시 그 옛날 대학시절 같이 항시 내 손에 들려 있다.
2020. 10월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