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그 꽃잎 아니었으면

사랑의 자취

by 석운 김동찬

떨어진 그 꽃잎 아니었으면


‘여보, 나와보세요. 또 금이가 다녀갔나 봐요,’하고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나는 현관으로 나갔다. 외출했다 돌아온 아내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며 이것저것을 들여놓고 있었다. 예쁜 꽃이 담겨 있는 작고 앙증스러운 꽃병 서너 개, 과자가 담겨 있는 그릇, 그리고 현관 옆 담벼락엔 가을바람을 잔뜩 머금고 있는 탐스러운 갈대 송이 두엇이 기대 있었다.


금이는 작년 시월에 만나게 된 대학 후배이다. 문화원에서 책을 빌리다 알게 되었고 학교 후배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20년이나 후배면 거의 딸 뻘이지만 그 마음 씀씀이와 학문적 깊이는 오히려 이 나이 든 선배를 훨씬 앞선다. 그러나 나와 아내를 다 같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면서도 가까이 대해 주는 그녀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나중에 만나보니 그녀의 남편도 역시 대학 후배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어 이 외로운 타국 생활에서 마치 오래 헤어졌든 혈육을 다시 만난 듯 반갑기만 하다.


금이의 아이들이 타카푸나의 학교를 다니기에 아이들 학교에서 가까운 벨몬트로 집을 옮겨 온 뒤로는 데본포트의 우리 집과 거리상으로도 가까워져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직장에 나가랴 두 아이들 뒷바라지하랴 남편 섬기랴 정신없이 바쁠 그녀이지만 맛있는 것 하나 생기면 선생님 잡수라고 고이 싸들고 오고 집 정원에 예쁜 꽃 피어나면 꽃병에 담아 갖고 부지런히 달려온다. 그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씨가 너무 고마워 우리 부부는 그럴 때마다 ‘우리 딸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하나님이 더 큰 딸 하나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고 입을 모았다.


‘여보, 꽃들이 너무 예뻐요,’하면서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는 그날도 금이가 가져온 꽃들을 거실 이곳저곳에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아름다운 두 여인들의 손을 거친 꽃들이 군데군데서 색깔과 향기를 뽐내자 거실이 돌연 그윽하면서도 화려한 가을 분위기로 바뀌었다.


‘여보, 이것 좀 봐요, 너무 예쁘죠?’ 다음날 아침 일찍 부엌에 나간 아내가 다시 나를 불렀다. 부엌 창가에 놓여있던 작은 흰 꽃병 안에 소담하게 담겨있는 빨간 꽃과 그 아래 창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꽃잎들은 차라리 한 편의 시(詩)였다. ‘사진 찍어서 금이에게 보내야겠어요, 고맙다는 말도 하고,’라고 아내가 말했다.

꽃잎.jpg

다음은 아내와 금이가 주고받은 카톡 내용이다.


아내

‘어느 날 살그머니

어여쁘게 다가온 따뜻한 사랑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자취들

가족의 따뜻함을 그리워했는데

이렇게 고운 가족을

붙여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금이

‘눈물이 또로록

고맙습니다

저희를 마음속에 예쁘게 받아주셔서……

선생님의 하나님께 제 감사도

전해드려 주세요.’


아내와 금이가 카톡으로 사진과 글을 주고받고 있는 동안 나는 가슴에 떠오르는 대로 시 한 편을 쓰고 있었다.



떨어진 그 꽃잎 아니었으면


밤 사이에 누가 다녀갔나 보다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마음만 남기고 다녀갔을 터인데

꽃이 알려 주고 싶었나 보다

그 사람 다녀갔다고


입 벌려 속삭이고 싶어 밤새 뒤척이다

꽃잎만 떨구었네 한 잎 두 잎------


떨어진 그 꽃잎 아니었으면

알 수 없었겠네

살며시 다녀간 그 사람의 자취


2014. 4. 11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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