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병실에서

병실 너머 세상에 나갈 때도 그 순수한 간절함을 갖고 가고 싶다

by 석운 김동찬

오랜만에 다시 노쇼어(Northshore) 병원에 갔다. 작년에도 한두 번 갔었지만 그때엔 검사를 하기 위해 갔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지만 이번엔 수술을 받으러 갔으니 가기 이삼 주전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작년 12월에 초음파 검사를 받은 뒤 의사가 pharyngeal pouch가 생긴 것 같다고 하며 내시경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의학 용어라 그때에도 의사에게 쉽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주며 설명해서 그것이 ‘인두(咽頭)에 생겼을 것 같은 작은 주머니’라는 것을 알았다. 크게 걱정할 것 없고 확실하게 하기 위해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하니 병원에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해서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달 전에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술 날짜가 3월 18일로 정해졌는데 그날이 괜찮겠냐는 내용이었다. 수술이라는 말에 나는 좀 당황해서 날짜는 괜찮은데 수술이 아니고 검사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화를 한 여자분은 자기는 전화 안내만 하는 직원이라 잘 모르니 간호사가 다시 전화할 터이니 그때 자세히 물어보라고 했다. 이틀 뒤 전화를 한 간호사는 수술을 겸한 검사라고 말했다. 내시경 검사를 하는데 부위가 민감한 곳이어서 4~6시간 걸릴 것이며 검사 중 주머니(pouch)가 확인되면 제거할 것이라며 수술 전 일주일 전부터는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아스피린은 지혈을 지연시키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부터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해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병원에서 알고 복용 중단 지시까지 내리니 틀림없이 수술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번에 간호사가 알려주는 내용이 또다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낯설고 긴 영어였다. Pharyngoscopy and Oesophagoscopy라고 하니 너무 길어 다시 반복해서 물어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철자를 하나씩 불러 달라고 부탁해서 사전을 찾아보고 대충 이해를 했지만 검사만 생각했다가 수술이라니 걱정이 됐고 게다가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니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날짜가 돼서 아내와 같이 병원에 갔다. 별 것 아니라고 계속 아내를 안심시켰지만 아내의 큰 눈동자 속에 어리는 그림자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검사와 수술이 합해서 4~6시간 걸리고 여기 병원에선 간호사들이 잘 돌보아 줄 터이니 접수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다 전화하면 다시 데리러 오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로 진료실까지 따라 들어왔다. 담당 간호사가 들어와서 오늘 진행 사항을 설명해 주었고 곧이어 담당 외과 의사가 들어와 처치 내용을 자세히 알려 주었고 잠시 뒤 마취 전문의가 들어와 내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그런 뒤 아내를 보고 수술실(theatre)에는 들어올 수 없으니 집에 갔다가 병원에서 연락하면 다시 오라고 했다. 걱정이 가득한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내가 마취 의사에게 저녁에 아내가 와서 반드시 살아있는 나를 만나도록 마취를 잘하겠다고 아내에게 다짐을 하라고 농담을 했더니 맘씨 좋게 생긴 의사가 아내를 보며 "Sure, I promise." 하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려 아내를 웃겼다.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환자복으로 갈아입자 내가 환자라는 사실이 더욱 실감이 났다. 간호사가 들어와 수술실로 안내했다. 수술실 사인이 보이는 곳에 오자 간호사가 아내에게 여기까지입니다라고 말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아내의 큰 눈을 애써 외면하며 나는 간호사를 따라갔다. 수술실 입구에서 뒤를 돌아보자 복도 끝에서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작아 보였다. 나도 손을 흔들어 빨리 가라고 신호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대 위에 눕자 곧 마취 의사가 다가와 산소호흡기를 내 입과 코에 대고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들이마실 수 있는 만큼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기를 몇 번 하다가 나는 의식을 잃었다. 목 안이 무척 아픈 것을 느끼며 깨어났을 때 벽에 걸린 시계가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1시쯤 수술실에 들어왔으니 3시간 정도가 지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가 다가와 모두 잘 끝났다고 하며 이제 병실로 옮기겠다고 했다. 목이 아프다고 했더니 목을 통해 내시경이 들고났으니 당연히 아플 것이라며 병실에 가서 진통제를 주겠다고 했다. 남자 간호사가 와서 내 침대를 밀고 병실로 데려갔다. 병실엔 나 이외에도 세 명 정도의 환자가 누워있었다. 모두가 나처럼 처치(處置)를 끝내고 회복을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혹시 아내가 와있나 해서 물었더니 간호사가 최소한 두 시간은 여기서 경과를 지켜본 뒤에 주치의가 퇴원 허가를 내려야 아내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초조하게 기다릴 아내 생각에 나는 간호사에게 내 전화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단 한 번의 전화벨이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는 아내에게 모두 잘 됐으니 걱정 말고 퇴원 허가 떨어지면 전화할 테니 그때 오라고 했다. "알았어요,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하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가슴 쓸어내리는 소리와 같이 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것 같았다.


간호사가 갖다 준 진통제를 먹고 좀 있으니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침대에 누워 하얀 병실 천정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벌써 몇 년 전 이곳 병원에 와서 처음으로 목 수술을 받았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수술이어서 며칠 입원까지 했었다. 그때 병실에서 써놓았던 글이 생각났다. 왼손에 링거 주삿바늘이 꽂혀 있어 불편했지만 그런대로 스마트 폰을 움직여 카페에 올렸던 글 ‘병실에서’를 찾아내 읽었다. 날짜를 보니 2017년 8월 11일이었다. 벌써 3년 반 이상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었다. 다시 세월의 무상을 느끼며 앞으로 또 3년의 세월이 지나면 그때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읽었다.


글을 읽으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느끼는 감정이 거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반 전 ‘병실에서’ 내가 느꼈던 생각과 지금 ‘다시 병실에서’ 내가 느끼는 생각을 여러분과 같이 공감하고 싶은 마음에 여기 3년 반 전 썼던 옛 글 ‘병실에서’를 올린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의 느낌이 어떠실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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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2017. 8. 11 석운


지난 7월에 작은 수술을 받았다. 그 몇 달 전 어느 날 칫솔질을 하다 우연히 거울을 보니 오른쪽 턱 아래가 조금 부은 것같이 느껴졌다. 잇몸이 부었나 하고 며칠간은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러다 가라앉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나도 턱밑의 부기가 빠지지 않자 의사를 찾았고 다시 전문의를 만났고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침샘과 관련된 부분에 이상이 있어 작은 혹이 생겼으니 더 크기 전에 제거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는 전문의의 의견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에 볼거리 수술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뒤론 몸에 칼을 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었다. 큰 수술이냐는 나의 질문에 의사는 큰 수술은 아니지만 얼굴의 예민한 부분이라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기에 서너 시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 자체에 대해서 걱정은 안 했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수술받기 전에 유언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마취를 한다는데 혹시라도 깨어나지 못하면 세상 물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아내가 무척 당황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평소 가깝게 지내는 변호사를 통해 아내와 더불어 유언장을 작성해 놓았다.


수술 날이 다가와 아내와 같이 병원에 갔다. 수속을 마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마취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더 이상 나를 따라 들어올 수 없었고 애잔하게 손만 흔들었다. 사방이 흰 마취실에는 의사를 비롯한 몇 명의 간호사들이 있었지만 난 세상에서 동떨어진 혼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의사가 무엇인가를 내 코에 가까이 갖다 대었고 무언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난 의식을 잃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엔 이미 수술이 끝난 때였다. 옆에서 지키고 있었던 간호사가 깨어나는 나를 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말했다. 괜찮으세요. 걱정했어요. 너무 늦게 깨나셨네요. 전화기를 통해서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마치자 간호사가 이제 병실로 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거기 가면 아내를 만날 거라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수술실에 있었고 수술은 3시간 이상 걸렸고 나는 5시간 넘게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간호사가 말해 주었다.


조금 있다가 간호사가 내 침대를 밀고 병실로 갔다. 아내가 복도에서 나를 맞았고 병실로 내 침대를 밀고 들어간 간호사는 창가에 내 자리를 잡아주었다. 내가 편안하게 누웠는지를 몇 번이나 꼼꼼히 확인한 뒤 간호사가 자리를 뜨자 아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괜찮으세요 하고 내게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진통제를 먹어서인지 통증은 거의 없었고 수술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오히려 평안함을 느꼈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셔야 한대요. 저도 있고 싶은데 가족들이라도 8시에는 모두 나가야 한다고 하네요 하고 아내가 다시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도 집에 가서 쉬어요. 간호사들이 모두 잘해 주니까 아무 걱정 말고요 하고 나는 아내를 안심시켰다.


아내가 집으로 간 뒤에 나는 비로소 병실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나까지 모두 4명의 환자가 병실에 있었다. 내 앞에 있는 두 명의 환자는 키위였는데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드신 노인들 같았고 내 옆의 마오리 환자는 육십 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주사를 꽂아 고정시켜 놓은 왼손이 책을 보기에는 거북해서 나는 책 보기는 포기하고 조용히 기대앉아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또 세분의 병실 동료들을 바라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다가 바로 맞은편의 환자분과 눈이 마주쳐서 눈인사를 했다. 그가 나보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손으로 오른쪽 턱 밑의 수술 부위를 보여주며 오늘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얼마나 입원해 있을 거냐고 물어 아마도 내일 나갈 거라고 하자 그는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는 내일 복부 수술을 받는데 얼마나 오래 있을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그가 왜 복부 수술을 받는지는 묻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 대각선 방향 맞은편의 환자분이 자기는 심장에 통증을 느껴 들어왔는데 아직도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에 가고 싶지만 심장은 다른 부위와 달라 위급할 경우가 있기에 확실한 결과가 나와야만 퇴원할 수가 있다고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의 불안을 덜어 주기 위해서 나는 나도 심장 부위가 아파서 3년쯤 전에 병원에 왔다가 협심증 진단을 받고 스텐트(stent)를 심었는데 그 뒤로 전혀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말을 주의 깊게 듣더니 그때 증상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나는 한도에서 증상을 말해 주자 자기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큰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좀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병원 밖에서 마음껏 활동하던 내가 오늘 병원에 들어와 수술을 받고 병실에 들어와 다른 환자들과 섞여 지내며 나는 내가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나는 아는 병이라서 내일이면 퇴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회복의 가능성도 없이 계속 입원해 있을 사람들도 있겠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병의 원인을 몰라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건강할 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다른 세계를 생각하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간호사가 들어와 병실의 전등을 하나씩 껐다. 불 꺼진 병실의 침대 위에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곤 머릿속으로 시(詩)를 써나갔다.


병실에서


환자들은 모두 아픔이 있다

환부가 어디건

그 아픔을 통해 환자들은 세상을 본다

아픔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유리창 밖의 풍경처럼

소리는 없고 움직임만이 있다

볼 수는 있어도 끼어들 수 없는 풍경

환자들의 가슴은 안타깝기만 하다


환자들은 모두 바람이 있다

나음이라는 바람

그 바람을 통해 환자들은 세상을 본다

바람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봄날 아지랑이 같아

실체는 없고 아른거림만이 있다

느낄 수는 있어도 잡을 수 없는 아지랑이

환자들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아프기 전의 아픔은 추상명사였다

아픈 뒤에야 아픔은 고유명사가 되어 내게 들어왔고

주변의 수많은 아픔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환자라는 보통명사가 되어 있었다


환자들에게는 모두 간절함이 있다

아프지만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

낫기만 했으면 하는 간절함

그때의 간절함은 순수하여 다른 욕심이 없다


병실 너머 세상에 나갈 때도 그 순수한 간절함을 갖고 가고 싶다


2021. 3. 18 다시 병실에서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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