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오송을 생각하며
남자들의 우정, 친구 오송을 생각하며
11월입니다. 11월이 되면 2011년의 한국 방문이 생각납니다.
2011년 그 해 11월의 한국 방문은 여러 가지로 뜻이 깊었습니다. 뉴질랜드로 이민 온 뒤 거의 매년 한국을 갔지만 그때처럼 거의 삼 개월이라는 오랜 시일을 묵어본 적도 없었고 또 연말연시를 보낸 적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런저런 많은 경험을 했고 또 한국 특유의 연말연시의 여러 모임 중 몇몇을 골라서 참가해 본 것도 아주 유익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고등학교 동창회였습니다. 졸업한 뒤 40년이 훨씬 지났지만 한국에 있었을 때 한두 번 참석했지만 그 뒤로는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동창회 모임엔 내가 온 것을 알고 있던 한 동문이 권해서 참석했었는데 참으로 감회가 깊었습니다. 너무도 다정히 대해주는 옛 동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감사하지만 특히 그날 저녁 우연히 옆에 앉게 된 오송(친구의 아호) 동문과의 만남은 너무도 값진 것이었습니다.
오송과는 고등학교 때 아주 각별한 사이였지만 내가 뉴질랜드로 간 뒤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동창회에서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마치 엊그제 헤어졌다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번에 내게 베풀어준 우정은 나이 들며 굳어져 있었던 내 눈시울을 다시 부드럽고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감격했고 또 고마웠기에 이 친구의 선물을 받은 뒤 나는 동창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 동창회 회장과 총무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동창 여러분께,
지난번 동창회에 나갔을 때 멀리 있다 오랜만에 나타난 나를 참으로 따뜻하게 맞아준 친구들 모두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아무쪼록 다가오는 새해에는 모두 더더욱 건강하고 또 보람 있는 나날을 맞기 기원합니다.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떠나야 하지만 여러분 모두의 따뜻한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돌아갔다가 내년에 다시 돌아와 또 반갑게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중 어느 한 사람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이번에 특히 참 너무도 고맙게 대해준 오송 동문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날 저녁 바로 옆자리에 같이 앉았기에 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이 다르고 또 사회에서도 활동분야가 달랐기에 자주 만나지 못했기에 그 저녁 오송 동문과의 만남은 정말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헤어질 때 우리는 아쉬워서 잡은 손을 놓기 힘들 정도였는데 내게 전화번호와 주소를 물으면서 오송은 나에게 무언가를 보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 씀씀이만 해도 고맙기 그지없는데 지난 27일 택배로 보내온 그의 선물은 너무도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지나간 40여 년간 사람들의 가슴속을 울려주었던 아름다운 가요와 가곡들을 고르고 골라서 CD 10장에 담고 그 한 장 한 장에 직접 나와 우리 집사람의 이름을 인쇄해서 보내준 그 정성은 그만 내 눈시울을 붉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더더욱 한지에 붓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가 마침 같이 있었던 딸 내외와 집사람 앞에서 굵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송이 내게 붓으로 써 준 편지
한참이나 입을 열지 못하던 내가 어렵게 입술을 움직여 둘러앉아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한 말은, “이게 남자들의 우정이지,”라는 짧은 한마디였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또 가슴이 시렸습니다. 그 CD들을 보물처럼 싸 들고 지난주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차 속에서 그 CD들에 담긴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우리 친구 오송의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에 대해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송이 손수 구워준 음악 CD
아마도 2011년을 보내면서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을 받은 사람은 나이고 또 그를 통해 가장 행복했던 사람도 나라고 확신합니다. 그 고마움과 아름다운 우정을 여러분과 같이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여러분 모두 이 글과 사진을 보면서 비록 겨울 날씨는 차가워도 훈훈한 우리 어린 시절의 우정을 다시 느끼기 바랍니다. 내년에 돌아와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기 희망합니다.
먼 남쪽 길고 흰 구름의 나라에 사는 친구 김동찬이 드립니다.
뉴질랜드로 돌아와서
한국 방문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돌아올 때 친구가 준 편지와 음악 CD들을 귀하게 품에 안고 돌아왔습니다. CD는 차에 비치해 놓고 항시 즐겨 듣습니다. 아내도 이 CD들에 있는 곡들을 좋아해서 아내와 같이 차를 탈 때는 이 CD들을 들으면서 다시 친구 오송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리고 친구가 써준 귀한 편지는 잘 보관해 놓고 때때로 펴보면서 그때를 추억합니다. 어느 날 저녁엔가 또 친구의 편지를 펴놓고 보다가 친구 생각이 간절하게 나기에 가슴에 떠오르는 대로 시 한 편을 썼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친구 어허 내 친구여
우리 다시 만나 뜨거운 손 잡을 때
못 만났던 긴 세월 손 사이로 빠져나가고
움켜쥔 우리 두 손 그 옛날 조막손이 되었네
친구 어허 내 친구여
이게 얼마만인가 손 한 번 잡고 흔드니
우수수 우르르르 우수수 우르르르
막혔던 시간도 공간도 모두 부서져 내리고
우리들 기쁜 가슴도 무너져 내리네
친구 어허 내 친구여
옛 눈길 그대로 옛 목소리 그대로
내 앞에 나타난 친구여
눈길 따라 추억이 살아나고
목소리 따라 우정이 살아나네
친구 어허 내 친구여
고맙네 다시 만난 것 만도 그냥 고마운데
헤어진 뒤 내게 보내는 이 사랑은 또 무엇인가
다시 무너져 내리는 내 가슴
그 큰 사랑으로 채우네
고맙네 그냥 고마워
친구 어허 내 친구여
2014.11.19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