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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Nov 08. 2020

50년 만에 다시 읽은 부활(復活)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부활을 읽었다


부활을 읽었다. 연말연시가 되면 공연히 들떠서 시간을 흘려보내기 쉽기에 몇 년 전부터 그 시간엔 장편소설을 읽기로 했다. 평상시에는 왠지 소설에는 손이 잘 안 가고 인문학이나 종교서적 쪽으로만 손이 간다. 그래서 어수선한 연말연시에는 좀 편안한 마음으로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어 소설 그것도 장편을 읽기로 했다.


재작년 연말연시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 ‘죄와 벌’을 다시 읽으면서 꽤나 좋았었는데 이번에 읽는 부활은 그보다 오히려 다른 의미로 재미있었다. 서가에 꽂혀있는 부활을 꺼내 드니 1969년 정음사(正音社) 판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였다. 그때 대학교 3학년 때 읽고 올해 다시 읽으니 꼭 50년 만에 부활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이번에는 좀 새로운 번역으로 읽고 싶어서 도서실로 건너가 1987년에 발행된 신영 출판사(信永出版社)의 부활을 집어 들었다. 책을 들고 푹신한 안락의자에 몸을 누이며 나는 부활을 읽으면 혹시 나도 다시 50년 전으로 부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하며 혼자 웃었다.


젊었을 때엔 부활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네흘류도프의 카츄사에 대한 사랑과 속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그보다도 이 소설이 쓰이던 당시의 러시아의 사회상, 그 사회상을 꿰뚫어 보는 톨스토이의 눈, 그리고 그의 사상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예나 지금이나 러시아 소설을 읽으려면 처음엔 작중 인물들의 길고 이상스러운 이름 익히기가 쉽지 않기에 이번에는 처음부터 백지에다 나오는 이름마다 메모를 해가며 읽었다. 


부활의 줄거리


부활은 카츄사라는 불쌍한 여인의 삶을 통해 한 여인의 영혼과 그 여인을 사랑하는 청년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고 부활하는 이야기이다. 또한 여기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청년 귀족 네흘류도프는 바로 저자인 톨스토이의 사상을 대변한다. 톨스토이가 평생을 지주 밑에서 고생하는 농민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려고 애를 쓰고 사유재산을 부정하여 스스로의 저작권까지 포기하고 기성 종교와 교회의 잘못을 날카롭게 비판했듯이 네흘류도프도 카츄사를 구원해내려는 도정 속에서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살인 사건의 배심원으로 나왔다가 용의자인 여자가 옛날 숙모의 집에서 하녀로 있던 카츄사라는 것을 알고 네흘류도프는 양심의 가책에 사로잡힌다. 나중에 장교가 되어 다시 들렸던 숙모 집에서 그는 매력적인 여인으로 성장한 그녀를 유혹해서 그 육체를 범하고 돈 1백 루블리를 주고 떠났었다. 그런데 바로 그 카츄사가 창녀로 전락하여 살인 용의자로 잡혀서 배심원의 하나인 그의 앞에 나온 것이다. 그 아름답고 청순하던 카츄사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자 네흘류도프는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분명히 무죄였으나 재판상의 잘못으로 유죄 선고를 받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된다. 


이에 더욱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 네흘류도프는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잘못된 재판을 뒤집고 그녀를 구해내려 애쓴다. 또한 그녀에게 속죄하기 위하여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결심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단지 좋은 가문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호의호식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부류의 인간들과 그렇지 못한 집안에 태어났기에 평생 고생만 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잘못된 제도를 고쳐보려다 미운털이 박혀 정치범 혹은 사상범으로 낙인이 찍힌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네흘류도프는 변해 간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감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카츄사도 유형지에까지 따라오는 네흘류도프를 통해 변화한다.


톨스토이는 변화를 추구했지만


지금부터 백여 년 전 19세기 말에 고희의 나이의 톨스토이가 평생 품어온 생각들이 ‘예술적 혹은 문학적 성경’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소설 부활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잘 드러나있다. 


당시의 귀족이자 지주였던 네흘류도프는 혁신적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토지는 어느 특정인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농민들을 모아서 자기의 토지를 모두 농민들에게 분배해 줄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당연히 기뻐서 날뛰며 지주인 네흘류도프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했어야 할 농민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심지어는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얼굴이 붉어진 것은 오히려 네흘류도프였다. 그는 다시 힘을 내어 말을 이었다. ‘밭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땅을 가져서는 안 되며 사람은 누구나 다 토지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농민들의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져서 눈을 모두 아래로 깔았다. 그것은 마치 너의 교활한 속셈을 알고 있으니 아무도 너 같은 사람에게 속아 넘어갈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지주인 네게 망신을 주고 싶지는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몇 대에 걸친 지주에 대한 그들의 경험에 의해서 그들은 지주라고 하는 것은 항상 농민의 노력을 희생물로 삼아서 자기들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네흘류도프가 그들을 불러서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것은 이전보다 더 교활한 방법으로 자기들을 속이려고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드디어 그들은 외친다. ‘그런 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전과 같이 그대로가 좋습니다,’하고 불만에 찬 거친 목소리로 그들은 외쳤다.


소설에서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무지한 농민들이 네흘류도프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 속고 당하고만 살았기에 그렇게 마음속으로 바라고 꿈꾸었던 자유와 토지소유의 기회가 다가왔건만 오히려 거부반응을 보이며 그대로가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자 그들 농민들이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도록 여러 가지 제도와 악법으로 그들을 착취하고 압제해온 소위 귀족이란 족속들에 대한 미움이 눌러도 눌러도 가슴속에서 솟아올랐다. 


타성에 젖어 있는 대중의 태도 


그러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왜 농민들이 네흘류도프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계속 머리를 쳐들었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의 말대로 했다면 그들의 삶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변화 대신에 그냥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타성에 굴복했기에 그대로 농노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몽매한 대중들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고 하셨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중들은 그들을 자유케 해 줄 진리를 택하지 않고 그때까지 그들을 얽매고 있던 율법과 제도를 택해 오히려 예수를 붙잡아 십자가에 매달았다.


오죽하면 이를 딱하게 여긴 이방인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어쩜이뇨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마태복음 27: 23)’고 유대인들에게 묻자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면서 급기야는 ‘그(예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지어다,’라는 끔찍한 자기 저주의 말을 토해냈다. 그 결과가 이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과연 오늘의 대중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의 대중 아니 바로 우리 자신은 톨스토이의 농민이나 예수의 유대인들과 어떻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 때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오늘의 우리는 오히려 그들보다 한결 더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보다는 물질문명이 발달한 현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는 절대 빈곤의 상태에서는 대부분이 벗어나 있지만 바로 그 '무언가 조금 갖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비겁하게 만들고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시절엔 오히려 잃을 것이 없기에 과감히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가진 그것'을 잃을까 겁이나 현실과 타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톨스토이나 예수 당시의 일반 대중들은 무지하였고 배울 기회도 없었고 오늘과 같이 정보에 쉽게 접할 길이 없었기에 어쩌면 대를 이어 내려온 환경에 그대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조금만 정신 차리면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수 있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눈을 똑바로 뜨고 크게 귀를 열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본디 우리의 것이었던 것을 되돌려주겠다고 외치고 있는 제2 제3의 네흘류도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들에게 본디 그들의 것이어야 했던 토지를 돌려주려고 했듯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상실했던 우리의 것을 돌려주겠다는 네흘류도프가 바로 내 옆에 있을 수 있다. 그를 볼 수 없고 그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비겁함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면 나의 지나친 편견일까? 


다섯 부류의 죄인들


카츄사를 구해내기 위해 네흘류도프는 계속해서 형무소를 드나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카츄사의 부탁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온 여러 죄수들을 도와주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도 듣고 또 변호사와 형무소 담당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네흘류도프는 보통 범죄자라고 부르는 죄인들이 다섯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계속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다섯 부류는 다음과 같다.

제1의 부류: 카츄사처럼 오판에 의하여 형을 살고 있는 무고한 사람들이다. 전체 죄수의 7%에 해당한다.

제2의 부류: 순간적인 분노나 질투와 같은 상황에서 저지른 행위로 재판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사람들도 같은 상황에서는 같은 행위를 저지를 것이 틀림없다.

제3의 부류: 본인의 생각으로는 당연하거나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 행위가 그들과 상관없는 법률을 만든 인간의 생각으로서 범죄로 판결된 사람들이다. 밀주 판매업이나 대지주의 들에서 풀을 베거나 장작을 마련한 행위들이다.

제4의 부류: 정신면에서 사회의 평균 수준보다 높은 사람들이다. 독립운동을 했거나 반정부 음모를 했거나 파업에 참가한 정치범 같은 사람들이다

제5의 부류: 사회에 대한 그들의 죄보다도 그들에 대한 사회의 죄가 훨씬 크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아 그들이 속해 있는 생활환경이 그들로 하여금 살기 위해서는 범죄라고 불리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네흘류도프가 분류해 놓은 이 다섯 부류의 죄인들은 모두 그가 카츄사를 만나기 위해서 형무소를 드나들며 만난 죄수들이다. 따라서 모두가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한 부류를 더한다면 제6의 부류는 권력형 그리고 탐욕형 비리를 저지르고 들어온 범죄자들일 것이다. 권력이든 물질이든 가지고도 더 가지고 싶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탈취하다가 들어온 진짜 죄인들이다. 그러나 그런 죄수들은 형무소에 없었다. 정말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그런 인간들은 돈과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면죄부를 받고 바깥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인간들은 위선과 의로움의 탈을 쓰고 다섯 부류의 죄인들을 심판하고 정죄하여 형무소로 보내고 있었다.


한때 자기가 사랑했던 청순한 여인이 자신의 잘못으로 타락하여 법정에 섰는데 자기는 배심원의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에 네흘류도프는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구해내고자 마음먹는다. 구하는 것뿐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그녀의 과거를 보상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과 속죄의 여정에서 네흘류도프는 밑바닥 인생의 죄수들의 삶 속에 들어오며 점차 사회의 모순과 잘못된 제도에 눈을 뜬다.  


그렇기에 그가 만난 죄인들을 5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고 그중에서도 많은 죄수들이 특히 제5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는 과감히 선언한다. 나도 그가 말하는 제5의 부류의 죄인들에 대해 공감한다. 올바른 사회란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있는 사회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거의 모든 사회들은 죄를 짓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되어있다. 충분한 권력이나 금력이 있어 제도 위에 군림할 수 있으면 죄를 지어도 잡혀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면 비겁하고 나름 똑똑해서 힘 있는 자들에게 굴복하고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가며 살면 비록 위태로워도 잡혀 들어가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힘이 없어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끼니도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고 잘못된 현실을 그대로 참아낼 수만은 없어 목소리를 높여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애꿎게도 이런 사람들은 형무소 행이고 그들은 제5의 부류에 속하는 죄인들이 되어버린다.


이곳 교도소에서 만난 제5의 부류의 죄인들


네흘류도프가 분류한 제5의 부류의 죄인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맨 처음 이 나라 뉴질랜드의 형무소를 방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미 10년쯤 전의 이야기지만 나는 그때 밀알 선교합창단이란 선교 단체에 속해 있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노래와 말씀으로 봉사하는 단체였는데 한 달에 한 번씩은 교도소를 방문하였다. 합창단원들 중 소정의 교육을 받고 등록을 마친 사람들이 교도소에 가서 수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고 나중엔 간단한 하나님 말씀으로 끝을 맺었다. 노래를 못하는 내가 합창단원에 낄 수 있었던 것은 말씀 전하는 역할이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클랜드 북쪽 교외의 파레모레모(Paremoremo)에 있는 교도소를 첫 방문하기로 된 며칠 전부터 계속 기도로 무장하였지만 무언가에 눌리는 듯한 답답한 심정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과연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떨리기만 하였고 방문 중에 그들이 난동이라도 부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공포심도 들었다. 드디어 그날 저녁이 오자 우리 모두는 산 중턱의 교도소를 향해 난 외길을 차를 몰고 들어가 교도소 입구에서 수속을 마친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영화에서나 보았던 높고 높은 삼엄한 철조망 사이를 뚫고 들어가 우리에게 면회가 허락된 장소에 들어설 때까지 우리 모두는 완전히 얼어있었다. 그러나 강당과 같은 꽤 큰 실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주는 그들을 보고 그들 수인들(교도소에서는 inmate라고 부른다)도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안도를 했다. 


자그마한 동양 남녀들이 그들 앞에 나타난 것에 오히려 우리보다 더욱 놀라고 있는 그들에게 대충 우리 소개를 하고 우리는 아직도 겁먹고 있는 가슴들을 서로 눈짓으로 진정시키며 찬양을 시작했다. 우리말로 해도 목소리가 잘 안 나올 터인데 연습은 해서 갔지만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영어로 복음성가를 하려고 애를 쓰는 우리를 도와주려는 듯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우리와 합세해 찬양을 따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차차 힘을 얻었다. 그렇지만 찬양이 끝나고 말씀을 전하는 차례가 되었을 때에 그들 앞에 나서는 나의 심정은 참으로,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전하려는 것이니 제 입이 굳어서 버벅거리거나 말이 안 나오면 당신께서 망신당하는 것이니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강단에 서니 준비해 간 말씀 생각은 안 나고 별안간 “여러분 저는 키위들(Kiwi: 뉴질랜드 현지인들을 지칭하는 말)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는 반드시 한국말 한 가지를 가르쳐드립니다. 여러분도 이 말은 꼭 아셔야 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말에 어리둥절해 있는 인메이트(Inmate:수인들)에게 'I love you in Jesus'가 한국말로는 ‘예수 안에서 사랑합니다’라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알려주었다. 그런 다음 나를 따라 하라고 막무가내로 몇 번 반복하자 모두가 서툰 발음으로 따라 하다가 결국 다 같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분위기가 아주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시작해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에 나는 그들의 진지한 표정에 다시 한번 놀랬다. 그들 눈에는 참 별 볼품없었을 아시아의 한 작은 남자가 서툰 영어로 전하는 말씀을 한 사람도 한눈을 팔거나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경청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라는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무사히 말씀을 다 전하고 모임이 끝나 헤어질 때에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면서 “Thank you, sir”를 연발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몇몇의 눈시울은 벌겋게 변해 있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 저녁 모임이 끝난 뒤 차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저들은 우직하여 죄를 짓고 발각되었기에 저 안에 있고 우리들은 교활하여 죄를 짓고도 발각되지 않았기에 이렇게 바깥에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드오." 아내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아마도 그때 우리는 톨스토이가 부활에서 네흘류도프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사람은 결코 사람을 심판할 수도 교도 할 수도 없다’는 교훈을 파레모레모의 수인들을 통해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세상과 사람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 


소설은 마지막에 가서 반전한다. 그토록 간구했던 특사가 카츄사에게 내려져 자유의 몸이 되지만 그녀는 네흘류도프를 택하지 않고 감옥에서 사귄 정치범 시몬손을 택한다.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이제는 네흘류도프를 속죄의 부담감에서 해방시켜 온전히 놓아주어 그만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려는 그녀의 고결한 마음씨였다. 언젠가 네흘류도프의 누나가 카츄사에게 집착하는 동생을 보고 네가 그런 여자의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네흘류도프는 ‘난 그 여자를 바로잡으려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라고 답했었다. 기나긴 여정이었지만 카츄사도 네흘류도프도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바로잡았다. 그 사랑은 보통의 남녀의 사랑을 뛰어넘는 숭고한 사랑이었다. 톨스토이가 항시 주장해 왔듯 더 죄 많은 인간들이 오히려 자기들보다 죄가 덜한 사람들을 심판하는 제도로는 결코 세상도 사람도 바로잡을 수 없었다. 세상과 사람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었다. 


카츄샤를 보낸 뒤 네흘류도프는 사회와 질서가 그나마 존재하는 것은 남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제도 때문이 아니라 그런 속에서도 사람들이 여전히 서로 동정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의 뒷받침을 복음서에서 찾으리라 생각하고 마태복음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여러 번 읽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복음서의 참뜻이 마치 해면이 물을 흡수하듯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사랑의 참뜻을 깨닫고 21장의 포도원 농부의 우화에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이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고 드디어 6장 33절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너희들에게 더해지리라’는 말씀에서 완전히 무너진다. 먼저 구하라는 그의 나라와 의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너희들에게 그냥 더해지리라는 다른 모든 것들만 찾고 있었으니 그것들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날부터 네흘류도프에게는 새로운 생활 즉 부활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그에게 이제까지와는 아주 다른 의의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소설 ‘부활’은 끝났다. 마지막 줄을 다 읽고서도 한참 나는 책을 놓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계속 ‘너는 이제껏 무엇을 구하며 살았느냐?’라는 질문이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35세의 청년에 불과한 네흘류도프지만 부활의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책을 놓았다. 


2019년 1월 23일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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