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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Nov 03. 2023

화요음악회를 마치며

제95화 지난날을 돌아보며 사랑하는 화요음악회 여러분께 드립니다

화요음악회를 마치며 

제95화 지난날을 돌아보며 사랑하는 화요음악회 여러분께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뉴질랜드로 이주해서 살기 시작했던 때로부터 어언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곳 교민 대부분이 그러셨듯 저도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지상에 남은 마지막 낙원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환경과 생활 조건이 좋은 뉴질랜드이지만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시시때때로 가슴속을 밀고 들어오는 외로움입니다. 그 외로움에 못 이겨 가슴앓이하며 방황하는 이웃들을 볼 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 가까이 지내던 교회 분들과 같이 우리 집에서 음악을 들었는데 모두 좋아하시며 이런 기회가 가끔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의외로 기뻐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저와 아내는 매주 하루 음악 모임을 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모여서 정담도 나누고 음악도 듣고 하나님 말씀도 나누다 보면 외로움도 잊을 수 있으니 일석다조(一石多鳥)의 보람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제게는 학창 시절부터 모아 온 레코드판과 CD들이 많이 있었고 괜찮은 오디오 기기들도 웬만큼 갖고 있었기에 언제라도 음악회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몇몇 분들께 전화를 걸어 취지를 말씀드리고 어느 요일이 제일 좋을까 의논하였더니 모두 화요일이 좋다고 해서 그다음 주 화요일(2012년 3월 6일)에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첫 모임을 가졌던 음악실 모습

                                   

첫 모임에는 교우(敎友) 중심으로 모였지만 한두 달이 지나며 입소문이 나자 참석하고 싶다는 분이 계속 늘어났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도 많지만 ‘좋은 모임’에 목말라하시는 분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저와 아내는 음악회에 오시기 원하는 모든 교민 분께 집 문을 활짝 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음악회에 참석할 수 있느냐고 전화로 문의하시는 모든 분께 “귀만 갖고 오시면 됩니다. 다만 음악 감상 뒤에는 잠깐 같이 성경 구절을 보는 순서가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시는 분들은 점점 많아졌고 매주 화요일에 모이다 보니 음악회 이름이 저절로 ‘화요음악회’가 되었습니다. 


정이정(淨耳亭)으로 승격한 우리 집 창고

사람이나 사물이나 그 쓰임 받음에 따라 격이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집니다. 우리 집 1층은 한가운데가 주차장이고 양쪽에는 창고가 있었는데 직사각형의 양쪽 창고가 꽤 넓었습니다. 그중 왼쪽 창고를 조금 손봐서 음악실을 만들었습니다. 천정이 조금 낮은 것이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열댓 명이 음악을 듣기에는 손색이 없었습니다.

화요음악회가 시작된 이래로 많은 분이 모여 음악을 듣는 곳인데 그럴듯한 이름 하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음악평론가 박용구(朴容九) 선생님께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은 때가 2016년 6월이었습니다. 102세까지 장수하신 선생께서는 만년에 여유가 생기시자 댁에 음악실을 마련하시고 그 이름을 세이정(洗耳亭)이라 지으셨다 했습니다. 선생님의 음악실 이름을 본떠서 지은 우리 음악실의 이름이 정이정(淨耳亭)입니다. 화요음악회에 와서 음악을 들으며 마음과 귀를 깨끗하게 하면 우리도 모두 박용구 선생님처럼 102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덕담과 더불어 생겨난 이름입니다. 


십 년이 넘게 계속된 화요음악회

이렇게 시작한 화요음악회가 많은 분의 사랑과 성원에 힘입어 어언 십 년이 넘게 계속되었고 횟수로는 300회가 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오클랜드에 있는 한 우리 집은 언제나 화요일 저녁에 여러분에게 열려있을 것입니다,”라고 이곳 교민 모두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우리 부부는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때때로 여행을 하느라고 일 년에 한참씩은 집을 비워야 했지만 그 외에는 매주 화요일 저녁에 항상 음악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동안 정이정에서는 많은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던 분끼리 음악을 통해서 만나 마음을 열고 십년지기(十年知己)가 되고 어떤 분들은 자식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돈이 되기도 했습니다. 외국에서 살면서 제일 어려운 문제의 하나가 자녀의 결혼입니다.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음악을 좋아하는 가정끼리 만나 아들딸을 결혼시켰으니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 어떤 분들은 음악 감상 끝에 매번 듣게 되는 하나님 말씀이 너무 좋아 부부가 같이 교회에 나가게 된 분들도 계십니다.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겨 날 때마다 생각나는 말씀은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이었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저와 아내는 오직 ‘심고 물 주는’ 청지기의 마음으로 화요일 저녁이 되면 정이정을 활짝 열고 다과와 음악을 준비하며 화요음악회를 찾는 귀한 손님을 맞았습니다. 마음 맞는 몇 분을 중심으로 시작한 작은 음악 모임이 오랜 세월 지속되며 자연히 교민 사회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교민 신문들이 다투어 몇 차례씩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 유일의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천라이프(Christianlife)’에서는 지면을 할애하여 화요음악회 이야기를 싣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고마운 요청에 부응하여 지난 4년 동안 크리스천라이프에 ‘석운의 화요음악회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였습니다. 작년에는 그 칼럼들과 지난 십 년 동안 화요음악회에 있었던 이야기를 모아 ‘화요일의 클래식’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석별의 인사를 나눌 때

처음에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듣기 위해 그리고 따뜻한 모임의 분위기가 좋아 찾아오시는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50회, 100회, 200회가 지났을 때는 회원들 스스로가 놀라기도 하고 또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정초에 발발한 코로나로 인해 음악회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모였고 그런 와중에도 2021년 4월 17일에는 드디어 대망의 300회 음악회를 열었지만 그 뒤로 다시 극성을 부리는 코로나로 인해 음악회를 열 수 없었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진정되어서 다시 음악회를 열어도 좋은 때가 되었지만 우리 부부의 개인 사정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음악회를 열 수가 없게 되어 너무도 죄송합니다. 나이가 들었는지 고국 생각도 간절하고 또 우리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삼십 년 정들었던 뉴질랜드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319회를 마지막으로 화요음악회는 끝이 났지만 저도 여러분도 결코 이 아름다웠던 모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고국에 가서도 화요일 저녁이면 정이정(淨耳亭)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음악을 듣던 여러분을 항시 기억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솔로몬은 구약의 전도서 3장 1절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했고 11절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감히 그의 말씀을 생각하며 우리 화요음악회에 주어진 기한은 여기까지이고 이제껏 아름답게 이끌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는 알 수 없기에 화요음악회는 이렇게 끝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지는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화요음악회 여러분, 이제껏 같이 해주심에 가슴 깊이로부터 감사드립니다. 지난 10년 동안 319회의 모임마다 가슴에 새겨진 추억을 안고 우리 부부는 떠나갑니다. 우리 모두의 남은 삶에도 기한이 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뉴질랜드로 돌아와 여러분을 만나 뵙겠습니다. 항시 건강하시고 음악과 더불어 그리고 화요음악회 끝날 때마다 같이 본 하나님 말씀과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이제 이 글을 맺습니다. 


2023년 3월 정이정(淨耳亭) 청지기 석운(夕雲) 김동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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