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운 김동찬 Dec 04. 2023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삼십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고국을 떠나 이국 땅에서 삼십 년을 살다 돌아왔습니다. 


제가 살았던 나라는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는 별명을 지닌 뉴질랜드였습니다. 자연 풍광이 아름답고 기후가 온화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마저 순박하기 그지없어 흔히 지상의 마지막 천국이라고도 불리는 뉴질랜드지만 남의 나라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힘이 들어서 때로는 외로워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붙들어 주고 일으켜 준 것은 글쓰기와 여행이었습니다. 하루 일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밤이 되면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피로도 외로움도 풀렸습니다. 그러다가 틈만 나면 아내의 손을 잡고 훌쩍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습니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고국 방문은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고국은 언제나 그 따뜻한 품으로 우리를 반겨주었고 그곳엔 다정한 형제자매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지나간 저의 삶은 두 하늘 아래의 삶이었고 저는 두 하늘 아래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2023년 봄이 끝나갈 무렵 삼십 년 편안하게 살았던 뉴질랜드의 삶을 훌훌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옛말이 있듯이 나이가 들면 고향이 더욱 그리워지게 마련입니다.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쳐야 하겠다는 생각이 가슴속 깊은 곳에 있었기에 몸은 이국 땅에 있어도 마음의 고개만은 언제나 고국 쪽을 향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이국 생활을 정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망설이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결심을 굳히고 실천에 옮기도록 만든 것은 의외로 2020년에 터져 나온 코로나 사태였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하늘길이 막혀 거의 3년이나 고국을 방문하지 못하자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사무쳤습니다. 2022년 6월에 코로나 사태가 조금 진정되어 하늘길이 열리자 우리 부부는 곧장 고국으로 날아들어 보고 싶던 사람들 모두를 고루 만났습니다. 그분들의 따뜻한 사랑 속에 두 달이 넘는 동안 발길 닿는 대로 고국산천을 누비며 우리 부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정리합시다. 이번에 돌아가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남은 삶을 여기서 삽시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우리 부부는 이렇게 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로 돌아오자 곧 귀국준비를 서둘렀습니다. 30년 그곳에서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고국에서 살 새로운 삶을 생각할 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내려놓기 힘든 것을 만날 때마다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박경리 선생의 시(詩) 구절을 생각하며 홀가분하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금년 2023년 3월 말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고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의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제까지의 그 삶이 남긴 흔적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냅니다. 젊은 날 방황의 흔적, 이국 하늘 아래에서 삶의 흔적, 틈틈이 여행을 하며 묻혀왔던 발길의 흔적이 이 책 속에 모여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 흔적의 하나라도 누군가의 가슴에 날아가 우리 삶의 한 단편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때로는 ‘달은 우리에게 똑같은 한쪽의 모습밖에는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들의 삶도 이와 같다’고 한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의 말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어쩌면 저도 글을 쓰면서 달과 같이 저의 한쪽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렇지 않도록 나름 노력했습니다. 별로 잘난 것도 없고 그렇다고 꼭 숨겨야 할 만한 것도 별로 없는 삶이었기에 오히려 진솔하게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어떤 내용은 너무 유치할 수도 있고 또 너무 사적(私的)인 것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고희(古稀)의 나이를 넘어 팔순(八旬)을 향해 걸어가는 마당에서는 감출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기에 그냥 담담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내어놓습니다.


여러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어느 이웃집 노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편히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3년 겨울에 석운(夕雲) 김동찬 드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