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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Feb 08. 2024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우정은 기적을 낳고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지난 2017년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50년 되는 해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에 동창들이 모여 졸업 50주년 자축연을 가졌습니다. 다같이 힘을 모아 마련한 자축연이기에 재미있고 유익한 순서가 많았지만 그 중에 압권은 단연 네 명의 동창이 부인들과 함께 나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노래한 순서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가 일어나 열렬히 박수를 치며 성원했지만 이는 결코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50년 세월 속에 계속되는 이들 네 명 동창의 변함없는 우정은 모든 동창들 사이에서 유명했습니다. 이들의 사이가 너무 좋았기에 부인들도 친해져서 부인들의 사이도 남자들 사이 못지않게 좋았습니다. 그랬기에 졸업 50주년 행사를 주관하는 동창들이 이들 네 명에게 부인들과 같이 나와 행사 중에 노래를 한 곡 불러달라는 특별 요청을 한 것입니다. 네 명중에 두 명은 한국에 있었고 한 명은 미국에 한 명은 뉴질랜드에 있었지만 이들은 쾌히 응낙하고 그 해 시월에 한국에 모였습니다. 무슨 노래를 할까 서로 의논하다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오랜 만에 같이 모인 네 부부는 매일 같이 만나 회포를 풀고 또 노래 연습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엔 커다란 슬픔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 하나가 바로 얼마 전에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뜻밖에 폐암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암의 전이 상태도 아주 안 좋았기에 그들의 슬픔은 컸습니다. 네 부부가 같이 모인 것은 사실 50주년 행사보다 오히려 아픈 친구를 만나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네 부부는 모일 때마다 아픈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또 노래 연습도 했습니다. 이들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택한 이유는 그 가사 때문이었습니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를 연습하다가 ‘너’라는 가사가 나오면 모두가 아픈 친구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다가 자연스레 그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곤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라고 큰소리로 외치다가 그만 눈물을 터뜨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연습해서 졸업 50주년 자축연에 나온 네 부부의 노래였기에 어느새 이들의 사연을 알아버린 동창들이 그렇게 열렬히 박수로 성원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올 시월에는 여러분이 아끼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듣고 또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바리톤 김동규의 노래가 좋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 들으셔도 됩니다.


https://youtu.be/eCeuIuoS5pA



노래를 부르다가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라는 가사가 나오면 아픈 친구를 위해 눈물을 글썽이며 노래를 하던 네 부부를 생각하시면 더욱 이 노래가 좋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뉴질랜드로 기쁜 소식이 전해 왔습니다. 친구들의 기도 덕분이었을까요 아니면 다같이 목놓아 부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의 노래’ 덕분이었을까요? 길어야 6개월에서 일년 밖에 못 살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아픈 친구의 암세포가 거의 사라져 거의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온 것입니다. 괴롭고 지루한 4년여의 암 투병을 옆에서 지켜본 담당의사는 단지 기적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친구의 손을 잡으며 축하했다고 합니다.


기적을 체험한 네 친구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비록 떨어져 살고 있지만 지금도 매주 금요일 12시(뉴질랜드 시간)가 되면 네 명의 칠십 노인들은 그룹 페이스톡으로 모여 한바탕 수다를 떨면서 다가올 졸업 60주년 자축연 때는 다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의 노래’를 부를 것을 기약하곤 합니다.


코로나와 록다운으로 답답하고 힘든 요즈음이지만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며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의 노래’를 멋지게 부르시기 바랍니다.


2021.10월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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