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소풍 가는 날이면 보통의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전날부터 설레 잠 못 이루다 아침이 되면 기분이 한껏 들떠서 눈을 떴다. 그때 어머니는 아마도 새벽부터 일어나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딸에게 싸줄 김밥 도시락과 선생님 도시락까지 준비하시던 그 모습은 소풍날 아침이면 으레 펼쳐지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어릴 적엔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엄마들은 다 그렇게 해야 하고 딸이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도 신나서 김밥을 싸는 줄만 알았다. 요즘 말로 워킹맘이었던 내 어머니는 나에게 힘든 내색 한번 보이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딸이 학교 가는 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딸 도시락을 챙겨주고 당신일을 나섰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힘든 것인 줄 몰랐던 난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도 철없는 어린애인 것 같다.
어머니가 정성 들여 싸준 김밥과 과일들로 아침부터 배가 찢어지게 먹고는 도시락과 간식이 가득 든 가방을 달랑 메고 신나게 소풍을 떠났다. 어머니가 나에게 해준 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그저 참새처럼 입만 벌려 받아먹기만 했던 그 시절이 이젠 기억에서 가물가물 지워질 것만 같은 희미한 꿈속의 일이 되어간다. 이젠 더 이상 어머니에게 김밥 도시락을 싸 달라고 조르지 못하는 철부지 어른이 되어버려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기도 하다.
엄마가 되어보니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딸의 소풍은 엄마에게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 도시락이 신경 쓰여 고민해야 하고 전날부터 장을 봐 놓고 새벽잠을 줄여 바리바리 도시락을 챙겨야 한다. 또 혹시 소풍 가서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조바심이 나는 그런 날.... 엄마에게 딸의 소풍은 몸도 고되고 마음도 편치 않은 그런 날이었다.
이제 나에게 소풍이란 것은 그렇게 즐겁지 않은 날이 되었다. 늘 기쁠 것만 같았던 일이 걱정으로 변한다는 건 참으로 애석하지만, 한편으론 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나도 어머니로부터 받은 끝없는 사랑을 딸에게 많이 나누어 주고 싶다. 나중에 내 딸이 커서 자신의 딸에게 첫 소풍 도시락을 싸주는 날이 오면 그때서야 나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