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코요아칸의 불안한 연인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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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아칸의 불안한 사랑


국화리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레온 트로츠키는 한때 레닌의 오른팔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본디 불안정한 속성을 지닌다. 레닌의 사망 이후 권력은 스탈린의 손으로 넘어갔고, 트로츠키는 하루아침에 정적이 되었다. 그는 당에서 제명되었고 마침내 조국 러시아에서 추방되었다.


트로츠키는 부인 나탈리아와 함께 노르웨이와 프랑스를 전전하며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그 불안한 삶의 여정 속에서 한 명의 구원자가 나타난다. 멕시코의 국민 화가, 그리고 매혹적인 아내를 둔 디에고 리비에라였다.


1937년, 디에고는 멕시코 정부의 허가를 받아 트로츠키 부부를 자신의 집, ‘푸른 집’이 있는 코요아칸으로 초대했다. 혁명가와 혁명적 예술가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살게 되었으니, 그들의 대화는 얼마나 격렬하고도 풍성했을까. 나는 그들의 심장이 부딪히는 소리를 엿듣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르크스와 레닌을 숭배한 디에고, 공산주의자였던 프리다 칼로. 그들 역시 예술과 사상의 불꽃 속에서 처음 만났다. 망명자의 불안한 삶 속에서도 식탁 위에는 웃음이 번졌고, 한동안 평화가 머물렀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집 안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바람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쉰일곱이었던 트로츠키는 지적이고 강렬한 스물아홉의 프리다 칼로에게 매혹되었다. 프리다 역시 그 작용을 거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반작용처럼 서로를 향해 밀어붙였고, 새파란 불꽃을 피워 올렸다. 나탈리아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영어로 속삭였고, 책 사이에 연애편지를 끼워 은밀한 사랑을 주고받았다.


프리다는 자신의 생일이자 혁명 기념일에 트로츠키에게 자화상을 선물했다.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그림 속에서

“모든 사랑을 담아 레온 트로츠키에게 바칩니다”

라는 문구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불꽃은 어느새 핏빛으로 타올라, 집 안의 공기를 태우고 있었다.


아내의 촉각은 예민하다. 여섯 달 남짓 이어진 비밀은 결국 나탈리아에게 발각되었다. 트로츠키는 디에고의 은혜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냈고, 집안의 공기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결국 트로츠키 부부는 그 집을 떠나야 했다.


프리다 칼로는 스물두 살에 아버지뻘인 디에고 리비에라와 결혼했다. 명성과 사랑을 동시에 누리던 화가, 그리고 여자관계에 있어 한없이 자유로운 남자. 프리다는 그 고통을 화폭에 심으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병든 몸으로도 남편의 외도를 감당해야 했고, 심지어 자신을 돌보러 온 여동생과의 관계까지 목도해야 했다. 그런 그녀가 트로츠키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나는 솔직히 그들의 불륜이 통쾌하게 느껴졌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오래된 법전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트로츠키 부부가 옮긴 집은 프리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같은 동네 코요아칸에 있었다. 그 이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스탈린이 끝내 멕시코까지 자객을 보내 트로츠키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그가 살던 집은 지금 부부의 묘가 있는 레온 트로츠키 하우스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프리다는 이 사랑을 진지한 관계라기보다 남편의 외도에 대한 ‘복수’로 여겼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복수했고, 디에고에게 가장 아픈 사랑을 남겼다고.


지금 코요아칸에는 프리다 칼로 뮤지엄과 레온 트로츠키 하우스 박물관이 나란히 관광객을 맞이한다. 내가 그곳을 찾았던 2007년에는 프리다의 집만 방문했다. 벽과 방 곳곳에 박제된 그녀의 고통을 보고 돌아왔다. 그때 트로츠키와 프리다의 로맨스를 알았다면, 그의 하우스 박물관도 찾았을 것이다. 혁명가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었을 텐데.


프리다의 마음을 훔쳤던 트로츠키는 어떤 매력을 지닌 남자였을까. 우크라이나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레닌과 함께 붉은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 세상을 바꾸는 일에 한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었던, 신념과 열정의 지성인이었다. 조국을 떠나 멕시코에서 조용히 글을 쓰며 살아가던 한 혁명가.


스탈린은 ‘펜의 힘이 무력보다 강하다’는 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혁명가와 예술가의 불꽃같은 사랑이 남긴 동네, 코요아칸.

그곳은 프리다의 그림처럼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픔 위로 사랑의 꽃잎이 눈처럼 쏟아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불안한 연인들이었으나, 순수한 사랑은 끝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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