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5. 아고라 광장과 소크라테스의 빛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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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고라 광장과 소크라테스의 빛


아고라는 고대 민주주의의 심장부였다. 처음에는 군사 훈련장이었고, 다시 시장이 되었으며, 마침내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결정하던 공간이 되었다. 세계 최초의 ‘광장 민주주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광장에서 오래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소크라테스가 서서 열변을 토하고, 시민들이 귀를 기울이는 장면이 보이지 않아?” 하이디도 감격한 듯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도자로 키우기를 원했다. 그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 절제, 용기, 경건을 묻고 또 물으며 젊은이들의 영혼을 흔들었다.

“그는 직업도 없이 여기서 토론만 했던 걸까?” 내가 묻자 하이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원래는 석공이었고, 아버지의 일을 이어 조각도 했어.

국가를 위해 세 번이나 전 쟁에 참전했지. 마흔 즈음 선언했지.

나는 돈을 벌지 않고 철학에 내 인생을 바치겠다."고

그의 목소리는 광장 곳곳에 스며 있는 듯했다.

“그래서 아내 크산티페가 물을 끼얹은 거겠지.” 하이디가 웃으며 덧붙였다.

물세례 받은 소크라테스의 유머. “천둥이 치더니, 기어이 소나기가 오는군.”


먼지 날리던 광장의 소란 속에서 수천 년의 시간을 뚫고 그의 음성이 되살아났다.

추한 얼굴로 태어났으나 누구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던 사람.

그는 인간에게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소크라테스(B.C. 469~399)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안티스테네스, 아리스티포스, 파이돈, 에우클리데스 등 여러 인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의 사상을 기록하고 확장한 인물은 플라톤과 크세노폰이었다.


플라톤(B.C. 424~347?)은 아테네 근교에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와 덕(아레테)을 탐구하는 대화법을 바탕으로 이데아론, 영혼론, 국가론, 인식론 등 서양철학의 핵심을 체계화했다. 수학과 천문학까지 포함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국가를 이끌 지도자를 기르는 데 목적이 있었다. 훗날 마케도니아에서 유학 온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이곳의 학생이었다. 플라톤의 교육은 인간의 영혼을 완성하고, 올바른 국가를 세울 인재를 길러내려는 시도였다.

반면 크세노폰(기원전 430년경~354년경)의 삶은 격랑에 휘말렸다. 페르시아의 반란 지도자 소 키루스가 아테네 용병 만 명을 모았을 때, 그는 기록자이자 병사로 참전했다. 그러나 키루스가 전사하자 병사들은 사막에 고립되었고, 크세노폰은 그들을 이끌고 귀환했다.


“그래도 결국 아테네에서 배신자로 몰려 추방당했다지?”

하이디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래. 고국 아테네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어.”


그는 스파르타에 머물며 『헬레니카』, 『키루스의 교육』 같은 명저를 남겼다. 훗날 정복자들의 교과서가 된 책들이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다 생을 마감한 크세노폰의 삶은, 철학자 이전에 인간의 운명을 생각하게 한다.


스승이 떠난 자리


우리는 감옥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었다. 바위를 파내 만든 소박한 공간,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을 맞이한 자리였다.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세상이 지혜를 두려워했나, 소크라테스를 질투했나.”

그의 죄목은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전통 종교를 부정했다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탈옥을 권했지만, 그는 법과 공동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결국 사약을 받아들였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귓가에 남는다.

당신은 무엇을 아는가? 당신은 정의로운가?


무력으로 문명을 제압한 스파르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철학과 예술, 사유의 도시 아테네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신의 땅에서 발견한 인간의 뿌리


여정의 끝자락에서 고린도에 닿았다. 태양신 아폴로를 모셨던 신전에는 앙상한 기둥 몇 개만이 남아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한때 상업과 향락이 들끓던 타락의 땅.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바로 그곳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장’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을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4장)


차가운 돌무더기 위로 그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쳐 갔다. 한때 방황하던 나를 신앙의 품에 머물게 했던, 뜨겁고 투명한 언어였다.


「태양의 후예」의 배경이 된 나바호 바다, 화산의 상흔을 하얀 집들로 덮어버린 산토리니에 머물렀다. 한 덩어리였던 섬이 불의 분노로 조각난 자리. 그 파편들이 지중해와 이루는 조화 속에서, 나의 시선과 마음은 깊은 평온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며 서양 문명이 피워낸 화려한 가지와 열매를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 그리스 순례는 그 화려함의 근원, 즉 ‘뿌리’를 직접 어루만진 시간이었다. 수백 개의 폴리스 중에서도 사유와 예술의 꽃을 가장 화려하게 피워낸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에서 느낀 전율은 아직도 내 가슴에서 뛰고 있다.


그리스 지혜의 원형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싹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서사시를 성경처럼 암송하며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신들이 도처에 있었지만, 그 신들은 인간보다 더 질투하고 불완전했다.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탄생한 신화는 인류 상상력의 샘이 되었다.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모신 도시였지만, 여성들은 가사와 출산이라는 보이지 않는 성벽에 갇혀 있었다. 그 사회에서 유일하게 예외로 빛난 인물이 이방인 아스파시아였다. 소크라테스와 지적 대화를 나누고,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을 썼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조선의 달빛 아래에서 시를 짓던 황진이를 떠올리게 한다.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것은 페리클레스가 펠로폰네소스전쟁 중에 병을 얻어 세상을 뜬 것이다. 찬란했던 아테네 영광도 그 자리에서 멈추어 버렸으니..


오늘의 그리스인들은 투명한 공기와 강렬한 태양 아래, 올리브오일과 요구르트를 주식 삼아 자연의 리듬대로 살아간다. 그들의 얼굴에는 건강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그 미소의 이면에는 시리아 난민들의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전쟁을 피해 유럽을 꿈꾸는 이들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불확실한 내일이 겹쳐 있다. 국가 부도의 위기를 넘긴 그리스 역시 여전히 생존의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스를 떠나며, 신화와 철학으로 쌓아 올린 오래된 대지 위에서 다시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너진 신전 기둥 사이로 시간의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이 속삭인다.

서양 문명의 뿌리는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었다고. 그 뿌리에서 자라난 사유의 깊이와 예술의 열매는 다시 로마인을 통해서 이어져왔다.

다양한 모습의 인간 탐구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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