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태양 곁에서 타버린 날개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예술의 역사에는 언제나 거장의 영혼을 깨우는 ‘뮤즈’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아홉 명의 뮤즈가 시인들의 붓 끝을 인도했듯, 영감은 창작의 숨결이 된다.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가 있었고, 니체에게는 루 살로메, 클림트에게는 에밀리 플뢰게가 있었다. 프리다 칼로와 피카소의 여인들 또한 시대를 건너 예술가들의 삶에 낭만과 긴장을 불어넣었다.
조각가 로뎅에게는 카미유 클로델이 뮤즈가 되면서 그녀의 인생에 파도가 덮쳤다.
파리, 호텔 비롱에 자리한 로댕 미술관에 들어서면 그의 작품들이 웅변하듯 말을 걸어온다. 정원의 나무 사이로 우뚝 선 「생각하는 사람의」 고뇌, 「칼레의 시민」이 뿜어내는 숭고한 희생, 「지옥의 문」이 지닌 압도적인 위엄은 관객의 숨을 잠시 멎게 한다. 그러나 그 거대한 형상들 사이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가느다란 생명의 음성이 들려온다. 로댕의 뮤즈로 찬란한 천재였던 한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의 목소리다. 시대가 짓밟았던 여성 조각가. 오늘날에야 재 조망되어 우뚝 섰으니 정신병원을 박차고 승리의 트럼펫을 불고 있으면 좋겠다.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은 유년 시절부터 흙을 만지며 숨은 생명을 불러내는 재능을 지녔다. 열아홉의 나이에 로댕의 아틀리에에 들어선 그녀는 곧 제자를 넘어 조수이자 모델, 그리고 창작의 동반자가 되었다. 마흔셋의 거장 로댕은 카미유의 젊고 파격적인 감각에 매료되었고,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의 작품에는 이전에 없던 생명의 역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로댕의 수많은 걸작에 카미유의 손길이 스며 있었음에도, 세상은 그녀를 ‘연인’이나 ‘조수’라는 이름에 가두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늘도 짙어졌다. 카미유는 로댕의 온전한 선택을 원했으나, 그의 곁에는 오랜 세월 함께한 로즈 뵈레가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갈등과 좌절, 그리고 낙태의 아픔 이후 카미유의 정신은 서서히 균열을 드러냈다.
그 고통은 말 대신 작품으로 태어나, 살아 있는 감정의 형상으로 남았다. 그녀 작품 「사 클룬탈라」「왈츠」는 로댕과 행복했던 시절을 담은 듯 관능적이며 사랑을 표현했다.
「중년」「버려짐」등 그녀의 조각은 절규를 닮았고, 그 절규는 관람자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십 수년이 지나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로댕이 제자의 재능을 훔치고 있다”
이것은 예술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그 균열 속에서 카미유는 점점 고립되었다.
결국 거대한 태양 곁에서 그녀의 날개는 하얗게 타들어 갔다.
로댕과 결별한 뒤, 카미유는 자신의 아틀리에를 열고 독립을 시도했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예술계는 이 천재적인 여성을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품 주문도 들어오지 않고 그녀는 생활고를 겪게 되었다. 로댕이 경제적 지원도 해주었다 하나
서서히 그녀는 창작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나의 마음도 나락으로 떨어지듯 했다. 끝내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의 차가운 벽 안에 유폐되었다. 그렇게 삼십 년. 그녀는 침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시간 동안 로댕은 조각의 거장이 되었다. 「지옥의 문」 안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독립된 작품으로 인간의 공포와 욕망을 초인적인 기교로 형상화했고, 만년의 「발자크 상」은 외형을 넘어 내면의 웅대함을 빚어내며 미켈란젤로 이후 최고의 조각가라는 찬사를 얻었다. 그는 인간 내면의 약동을 청동과 대리석 속에 영원히 봉인했다.
로댕 미술관의 작품들이 전시된 정원을 거닐며 나는 묻는다. 예술가에게 ‘이름’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밑거름으로 내어준 이들의 희생은 정당한가. 카미유 클로델이 정신병원에서 보낸 고독한 시간들은, 로댕의 화려한 성공과 대비되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가 찬미하는 거장의 작품들은, 그 뒤편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예술가의 눈물로 빚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로댕의 정원을 나서는 지금, 내 귓가에는 찬사 대신 한 천재 여성이 흙을 만지며 흘렸을 거친 숨소리가 오래도록 맴돈다.
로뎅 사 후 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그녀가 재평가를 받게 된 것은 다행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몇 해 전 [폴 케티 뮤지엄]에서 그녀의 조각 작품을 집중 소개되었다.
작년의 그녀의 작품「성숙의 시대」가 파리 경매에서 한화 47억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쯤이면 그녀 영혼에 축복의 박수를 보낼 수 있겠다.
활짝 웃는 모습과 두 손을 높이 올려 픽토리를 그리는 모습을 간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