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시국 방문기
-금관에 갇힌 예수, 그 화려한 감옥을 걷다
서유럽 패키지여행의 일정은 여러 나라로 이어졌지만, 내 발길을 가장 오래 붙든 곳은 단연 로마였다. 그리스의 철학과 문명을 흡수해 천년 제국을 일구어낸 도시. 콜로세움과 판테온, 포로 로마노의 폐허 사이를 걸으며 나는 인간 문명의 기운을 온몸으로 들이마셨다.
그러나 압도적 경외감은 바티칸 시국에서 시작되었다.
박물관의 긴 회랑을 따라 흐르는 인파는 거대한 강물 같았다. 시스타나 성당에서 성 베드로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열하듯 늘어선 조각상들, 빈틈없이 천장을 메운 황금빛 프레스코화들. 르네상스 거장들의 숨결이 켜켜이 쌓인 성화의 바다를 지나며 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이 수많은 보물은 과연 무엇을 증언하는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할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가득 채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아래서 우리는 일제히 목을 젖힌다. 단 몇 분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목덜미가 저려오는데,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천장에 매달려 붓을 들었다. 그의 육체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삼켜야 했을까. 신의 형상을 그리는 인간의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순교가 아니었을까.
성 베드로 대성전의 내부는 황홀경의 정점이다. 눈부신 금빛과 거대한 돔 아래 서 있노라면 인간이 신에게 바친 예술의 총체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물음도 피어오른다.
이곳은 지상의 천국인가, 아니면 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또 하나의 궁전인가.
중세를 흔히 ‘암흑기’라 부르지만, 그 시대는 또한 인간의 신앙과 권력이 가장 밀착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성전 건축을 위한 면죄부 판매, 교황권의 세속화, 예술 후원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 신성과 욕망은 한 공간에서 공존했다. 하늘을 향한 열망은 찬란한 예술로 피어났지만, 그 그늘 또한 깊었다.
그 화려한 천장 아래서 나는 문득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를 떠올렸다. 독재와 빈곤의 시대, 권력과 타협한 종교를 향해 던진 통렬한 질문. 고난 받는 자와 함께하지 못하고, 무거운 금관에 눌린 채 숨 가쁘게 서 있던 예수의 형상. “이 금관을 벗겨 달라”던 절규가 바티칸의 황금 장식과 겹쳐졌다.
또한 김민기가 곡을 쓰고 양희은이 노래한 〈주여, 이제는 여기에〉의 선율이 귓가를 맴돌았다. 웅장한 성가보다 더 낮고 더 간절한 음성으로.
한 시대 한국 교회는 대형교회에서 축복을 신앙의 증표처럼 말하던 시절을 지나왔다. 그러나 동시에 낮은 자리에서 민주주의와 소외된 이웃을 품어온 신앙의 역사도 있다. 서울의 명동성당의 석조 벽면에 남은 촛농 자국과 기도의 숨결이 그 증언이다. 비록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짧지만 명동성당은 박해받는 자의 옆을 지켰다.
화려함은 눈을 사로잡지만, 소박함은 영혼을 깨운다.
최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화려한 교황궁 대신 소박한 거처를 택하며 교회의 얼굴을 낮은 곳으로 돌리고자 했다. 완전한 변화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교황의 섬김의 자세는 비신자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변화였다.
바티칸의 궁전은 여전히 세계인을 불러 모은다. 그곳은 눈이 황홀해지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황홀함을 지나 귀 기울이면, 또 다른 물음이 들린다.
우리는 어떤 예수를 선택하고 있는가.
금관 속의 예수인가, 아니면 맨발의 예수인가.
나는 그 질문을 가슴에 안은 채 다시 로마의 거리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