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서도 뚝 떨어진 마을 풍경은 농사일로 바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집집마다 모내기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왔다 갔다 혼이 다 나갈 지경이다.
한쪽에선 서로 품앗이 날짜를 받느라 왁자지껄하다.
모내기가 한창인 영희네 집에서는 논으로 가져갈 일꾼들 밥을 준비하느라 부엌에서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시커먼 가마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밥이 익어가고,
마당에 걸린 양은솥에서는
큼지막한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열기를 더해간다.
통통통 경운기 소리와 함께 배달된 막걸리 통들이 토방 위에 줄지어 서있다.
모내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이기도 하다.
아마도 일꾼들은 밥보다도 막걸리를 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배가 남산만 한 일촌댁은 땀이 비오 듯
쏟아지는 이마를 훔치고 허리를 곧추세운다.
모내기가 한창인 일손이 모자라던 5월 어느 날,
일촌댁은 애타게 기다렸던 아기를 낳았다.
11년 만에 낳은 귀한 아기는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
3대 독자인 집안에서는 아들을 원했지만,
삼신할미는 이번에도 딸을 보내 주었다.
일촌댁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와 언니랑 셋이서 힘들게 살고 있었다.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조차 힘들었던 생활이었다.
엄마 혼자서 딸 둘을 키우는 일은 없는 살림에
무척이나 힘에 부쳤다.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을 했고,
엄마 일을 도우면서 성인이 되었다.
그러던 중에 가까운 이웃 동네에서 선자리가
들어왔다.
신랑감은 나이는 열 살이나 많았고
키도 크고, 논도 많은 집의 외동아들이었다.
일촌댁은 마음에도 없었지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시집을 가게 되었다.
논이 많은 부자라서 밥은 안 굶고 살 거라고
중매쟁이의 넉살에 가난에 지친 엄마도
쉽게 승낙을 하고 말았다.
일촌댁의 남편은 키도 크고 인물도 좋았지만,
11살이나 어린 색시를 무척이나 아껴 주었다.
결혼을 하고 그 이듬해 떡두꺼비 같은
첫아들을 낳았다.
대를 이어갈 아들을 낳았다고 일촌댁의 남편은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아들은 첫돌이 지나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명도 모른 채 그렇게 아들은 일촌댁 곁을 떠나가버렸다.
병원 한번 못 가보고 아들을 떠나보낸
일촌댁의 가슴은
피멍으로 얼룩져 까맣게 다 타버렸다.
그렇게 아들을 가슴에 묻고 힘겨워할 때
두 번째 아이가 찾아왔고, 큰 딸이 태어났다.
아들을 기다린 남편은 못내 서운함을 드러냈지만,
자식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첫아들을 잃은 슬픔과 불안은 큰 딸에 대한
지극정성으로 이어졌다.
바람 불면 날아갈까 봐 감싸고, 바쁜 집안일도
손도 못 대게 금지옥엽 귀하게만 키웠다.
손이 귀한 집에서는 아이를 기다렸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일촌댁은 몇 해가 지나도록
아이가 안 생겼다.
새벽마다 정한수 떠놓고 삼신할미께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10년이 넘도록
아이 소식은 없었다.
집안의 대가 끊기면 쫓겨나기도 했던 터라
일촌댁의 마음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 속에서 드디어 찾아온
11년 만의 둘째 아이 소식에 일촌댁은
좋아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드디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둘째 딸 영희를 낳았다.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와 기적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일촌댁의 몸은 자꾸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다음 이야기는 제2화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