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여행
인제 여행 중에 만나는 자작나무 숲은 그저
한 번 들렀다 가는 관광지가 아니다.
살다 보면 우연처럼 마주하게 되는 큰 행운
하나를 만난 기분이 드는 장소가 자작나무 숲이다.
자작나무 숲은 사계절 내내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늘 다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조용히 알려준다.
새순이 돋아나는 봄의 자작나무 숲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을 품고 있다.
하얀 나무 기둥 위로 파란 새순이 올라오는
모습은 마치 긴 침묵 끝에 다시 말을
꺼내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고도 단단하다.
물이 잔뜩 오른 하얀 나무 기둥에서는
금방이라도 단물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아 조심스럽게 스쳐간다.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하게 우리의
변화도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곡차곡 준비된 끝에
비로소 빛을 낸다.
여름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강한 햇살과 더위가 동행하는 임도 길은
산행에 익숙한 내게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떼게 만드는 이유는
힘든 길 끝에 마주하는 환한 숲을 알기 때문이다.
삶도 그렇다. 편한 길만 골라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풍경이 있다.
뜨거운 태양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여름의 자작나무 숲은 눈물이 날
정도로 눈부시게 환하다.
뙤약볕 아래서 흘린 땀 덕분에 숲은 더
눈부시고 성취는 더 깊어진다.
여름의 자작나무 숲이 유난히 밝은 이유는
그 앞에 놓인 고단함을 정직하게 견뎌냈기 때문이다.
가을의 자작나무 숲에 이르면 굳이 무언가를
애써 말하지 않아도 된다.
노랗게 물든 숲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은 여유롭고 생각은 깊어진다.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
구르몽의 시가 떠오르는 순간,
우리는 잠시 속도를 늦추는 법을 배운다.
자작자작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 속에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작은 위로와
이제는 내려놓아도 된다는 작은 위로가 담겨 있다.
겨울의 자작나무 숲은 또 다른 가르침을 준다.
잎을 모두 떠나보낸 채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서 있는 나무들은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증명해 보인다.
차가운 바람 앞에서 서로를 부둥켜안듯 서 있는
자작나무 기둥은 눈부시게 빛나며 서로를 토닥인다.
겨울 자작나무 숲은 멈춰 있는 듯해 보여도
잠시 쉬면서 봄을 준비하고 있다.
인제 자작나무 숲에는 사계절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의 가치와 인내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결국 다시 빛나게 된다는 믿음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숲은 한 번 보고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삶이 조금 흔들릴 때마다 다시 떠올리고 싶은 장소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