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죽고 싶다의 반대말
새벽 1시 반, 2시. 오늘은 12시.
이른 시간에 잠이 들고 늦은 밤에 깨버려서는 다시 잠들지 못한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면 , 하루를 잠과 싸우며 보내야 한다. 어제는 어쩌다 샷으로 따지면 다섯 잔의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면 신경은 날카로울 때로 날카롭고, 몸은 몸대로 힘이 든다.
그래서 어떻게든 잠이 들기 위해,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고 있는데 아이가 잠결에 웃는다. 좋은 꿈을 꾸나보다 하고 안아주고 나도 한번 씨익 웃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이번엔 잠결에 아주 서럽게 우는 것이다. 흐느끼는 아이에게 '엄마가 혼냈어?' 하고 토닥이며 말을 걸었더니, '엄마가 죽는데'라는 답이 나왔다. '엄마 안 죽어. 엄마 옆에 있네..' 하며 안아주고 토닥토닥 다시 재웠는데... 이번엔 내가 눈물이 난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의 연속에는 고민이 있었다.
고민이 많은 날은 잠이 사라진다.
매일 돈 때문에 살얼음 판을 걷고 있는 이 삶이 정말 힘겹다. 그래서 '죽으면 좀 편해지려나' 이런 생각을 달고 살고 있는 중이다. 괜히 아파서 죽을 거 같고, 오래 살지 못할 것만 같고. 이런 생각 자체가 우울증이라는 글을 봤는데 나는 상황적 우울증일지도 모르겠다. 돈만 해결되면 깨끗하게 사라지는.
그래서 숨이 턱턱 막히는 삶이다.
내가 매일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서 그런가. 아이는 늦은 밤 걱정 많아 잠 못 드는 엄마의 죽는 꿈을 왜 꿨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도 한참을 울었다. 내 생각이 아이에게 닿아서 그런가 싶어서. 서럽게 흐느끼면서. 그렇게 울다 보니 '나는 살고 싶구나. 정말 죽고 싶어서 죽었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나는 그냥 살고 싶은 거구나. 평범하게 남들처럼 그렇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때는 정말 좋았다. 평범하고 걱정이 크지 않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괜찮지 않은 삶을 살다가 괜찮은 삶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러다 다시 곤두박질을 했다. 다시 돌아온 이 시궁창엔 냄새가 더 찐한 것 같다. 보기 좋게 포장되어 있지만 속에선 썩은 냄새가 너무 난다. 그래서 종종 역겹다. 내 삶이.
그렇게 너무나도 지치는 날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렇지만 난 살고 싶은 것이다. 긴긴 터널 안에 갇혀서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터널의 끝에 닿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 이 터널 참 기네.
그렇지만 오늘부터는 생각을 좀 고쳐 먹어볼까 싶다. 어젯밤 아이의 눈물이 그리고 나의 눈물이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하자. 힘들면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주겠어.'라는 생각으로 채워볼 작정이다.
그러니 일단 복권부터 구매를.
삶의 의지를 다지는_구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