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하나_섬아기
1981년 7월 18일.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의료원
저녁 5시에서 6시경.
그땐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할 때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나를 낳으면서 병원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애국가를 들었다고 했다.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병원에서 나는 엄마, 아빠의 첫 딸로 태어났다.
나는 섬소녀였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 울릉도에서 살았다.
나름 똘똘했던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처음으로 독립을 했었다.
내 나이 17살이었다.
여고 특설반.
울릉도에서 일등은 육지 특설반에서는 꼴찌였다.
1학년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침 등교하기 전 엄마랑 통화하면서 울고, 방학 때 집에서 다시 기숙사로 가기 싫어서 울고...
눈물의 열일곱을 보내고 나니,
열여덟의 나는 꽤 성장해 있었다.
눈물은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그 뒤로 지금, 마흔다섯까지 부모님과 같은 공간에서 1년 이상을 살아 본 적이 없다.
같이 산 세월보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더 길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부모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엄마는 나에게 '내 속으로 낳았지만,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라고 종종 말씀하신다.
이건 오랫동안 같이 살아도 종종 듣는 말이겠지만... 나도 우리 아들 속을 알 수가 없으므로... 아마 더 오래 같이 있어도 그 속을 알 수 없을 거 같다.
가끔 엄마가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실 때가 있다.
'니는 그게 제일 문제다. 바른말을 해서라도 만날 사람은 만나야지. 사람을 안 만나고 어떻게 살 수 있노. 사람이 어떻게 혼자 사노. 할 말은 하고, 바로 잡아야 할거는 말해서 바로 잡고, 그래 살아야지!‘
엄마는 모른다. 나는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내 말이 먹히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다. 자신이 제일 똑똑하고, 자신의 결정이 다 맞고, 다른 사람의 말은 다 틀렸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도 해주지 않는다. 바른말도 들어먹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지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려 만나는 것이다. 나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과 만나는 것이 좋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말대꾸를 잘하지 않는 착한 딸로 남고 싶다. 그냥 그렇게 말하면 ‘알았다’ 한 마디만 할 뿐이다.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덕분에 지금껏 단 한 번도 엄마와 싸워 본 적이 없는 딸이다. 고등학교 때 엄마랑 아침에 싸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가끔 부럽긴 했다. 싸울 수 있는 엄마와 같이 산다는 건 좀 부러웠다.
엄마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딸.
물론 아빠에게도 말대꾸 한 번 해 본 적 없는 딸.
토요일 연재.
딸, 엄마, 그리고 나로 살아가는 마흔다섯_구르뮈.
삶의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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