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둘_내가 부모 대신이라고?!
집안일을 많이 도맡아 하는 성실함
동생들 챙기는 책임감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적인 성향
가끔은 억울할 정도로 ‘맏이’ 역할을 떠맡는 상황
ChatGPT가 정의한 K장녀.
이거 왜 내 이야기하는 거 같지?
나도 모르게 난 K장녀로 살았다.
아빠는 경찰공무원이셨다. 집에 계시는 시간보다 사무실에 계시는 시간이 더 많았다.
공무원 박봉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그래도 다 먹고 살만큼은 준다고 엄마는 늘 말씀하시지만, 외벌이로 두 아이를 키우기엔 부족했던 것인지 늘 일을 하러 다니셨다. (커서 들은 이야기지만 할아버지 빚을 갚는다고 젊었을 땐 힘이 드셨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하기도 했다고.)
울릉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흔한 부업은 오징어 손질이었다. 살고 있던 사택 근처에 오징어 건조 공장이 있었다. 엄마는 자주 그곳에 일을 하러 가셨다.
오후 네시가 넘어가면 전화가 온다.
“연아, 밥 좀 안쳐라.”
4학년부터 나는 밥을 할 수 있었다. 그 쯤 엄마가 일을 하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반찬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밥은 했어야 했다.
내가 맏이고 내가 누나라서.
날 때부터 맏이는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삼키고 태어나는 것 같다.
남동생이 태어나고 그때부터 '엄마, 아빠가 없을 땐 동생을 네가 지켜야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갓난쟁이가 운다고, 세 살짜리가 포도를 까서 먹였다니.. 음.. 동생을 끔찍하게 사랑했나 보다.
그 뒤로도 나는 늘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엄마 대신으로 동생을 돌봐주었다.
엄마가 둘을 놔두고 잠깐 시장에 다녀왔는데, 둘이서 문 앞에 붙어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며 지금도 종종 말씀하신다. (외울 지경이다)
"엄마 시장 갔다 올 테니까, 동생 잘 돌보고 바깥에 나가면 안 된다."
”응“
내성적이고, 주변에 친구가 많이 없었던 나는 엄마가 유일한 친구였다.
엄마가 시장에 가도 졸졸졸. 뭔가 해야 할 일 있어도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징징징.
동네에서 내 별명은 '엄마 따개비'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엄마의 집착이 부담스럽다.
이럴 땐 정말 세월이 무섭다. 흐른 시간이 나를 이렇게 달라지게 하다니. 놀랍다.
이제 정말 독립선언을 하고 싶지만,
토요일 연재.
딸, 엄마, 그리고 나로 살아가는 마흔다섯_구르뮈.
삶의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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