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셋_늘 예외는 존재한다
'첫째가 딸이면 좋아.'
이 말은 동생도 잘 돌봐주고, 엄마도 많이 도와준다는 내용이 포함된 말이다.
당연히 엄마에게 좋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붙인다.
'첫딸은 살림밑천이라잖아. 좋겠어!'
딸은 동생도 돌보고, 살림도 도와주면서, 집에 보탬까지 된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위로란 말인가. <아들이 아니고 딸이라도 괜찮다>라는 위로의 최상위맨트이다.
그렇지만 늘 예외는 존재한다.
나는 결혼 전에 남들 다 하는 그 취업이라는 것을 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다 결국 결혼이라는 것을 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는 결혼 자금을 전부 해주셨다.
이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돈이 없으면 결혼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혼이 뭐라고 나이 서른 넘어까지 결혼 못 한 것보다 직업 없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었는데...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엄마 손 안의 고운 철부지 '어른이'었다.
자라는 동안은 나는
살림밑천, 예쁜 맞딸.
나중에 엄마, 아빠 비행기도 태워 줄 수 있는 기특한 딸.
착하고, 말 잘 듣는 귀여운 딸.
이었을 것이다. (나는 섬에서는 공부를 잘했으니까)
대학 졸업과 동시에 공무원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이 좋지 않았다면,
혹은 엄마가 이제 공부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가라고 했음 어땠을까?
아니, 적어도 '나의 길은 이 길이 아니야'를 내가 미리 알아차렸음 어땠을까?
죽도록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그러니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어느 해는 한 문제 때문에 떨어지니, 그다음에 또 도전.
어느 해는 '많이 뽑으니까 이번엔 붙을 거야!' 또 도전.
그렇게 이어지는 도전에 시간은 무수히 그냥 흘러가 버렸다.
그러는 동안 친구들은 다 자신의 길을 갔고, 뒤처진 나는 점점 사람들도 잃었다.
그렇게 흘러버린 시간에 결혼 생활마저 힘이 들었다.
남편이 주식을 해서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진 것이다. 매일 오는 빚전화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해 보겠다는데 나는 해결이 될 때까지 기다릴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첫째를 키우고 있었고, 거의 3년을 기다리고 참아 준 상황이라 더 이상 가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친정에 도움 전화를 했었다.
울면서 전화를 하는 딸. 그 마음이 어땠을까.
결혼도 부모님 돈으로, 결혼해서 사는 것도 부모님 돈으로.
정말 엉망진창인 딸이었다.
이럴 딸은 결코 살림 밑천이 아니다.
'시집간 딸은 도둑년'
이 말이 나에겐 딱 맞다.
돈으로는 절대 갚을 수 없을 거 같아서(돈으로도 정말 갚고 싶다),
나는 매일 전화하는 딸로, 시간이 되면 얼굴을 자주 보려고 노력하는 딸로 그렇게 갚고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대신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열심히 마음으로만 갚고 있다.
지나치게 순종적인 딸은 재미가 없는 게 확실하다. 아니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마가 공무원 준비하고 해서 시작한 공부-나 싫은데 다른 일 할 건데
엄마가 시집가라서 해서 간 시집-나 싫은데 내 돈 벌어서 모아서 갈 건데
그랬다면 엄마 인생도 내 인생도 조금 더 재미있었지 않았을까.
내가 비행기도 태워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지금보다 더 많이 사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많이 아쉬운 딸이다.
첫 딸인 나를 낳았을 때의 그 기쁨과 설렘을 다 박살 낸.
정말 어릴 때 효도를 다한.
그런 딸이다.
어른이 된 지금 돈이 효도의 전부는 될 수 없겠지만, 잘난 자식은 나이 드신 부모님의 자랑은 맞다. 그리고 든든한 백이 되기도 한다. 용돈 많이 주는 남동생 자랑을 내게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인정 또 인정.
그 잘난 자식, 나는 글로 가능했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더 늙기 전에 아직 나를 기다려주고 있을 때, 두둑한 살림밑천은 될 수 없을지언정,
<네가 태어나서 뭐라도 했구나>하는 그런 딸이 되었으면 좋겠다.
토요일 연재.
딸, 엄마, 그리고 나로 살아가는 마흔다섯_구르뮈.
삶의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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