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 따위가 글을 써도 되는 걸까?
나는 기본적으로 내가 떠올리는 말을 그대로 적는다.
나로서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써 온 글을, ‘반응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듣고,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내 글은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거나 아예 전달되지도 못하는 경우가 다수인 것 같다.
나의 소중한 1호 독자에게 내 글을 읽어달라고 했다.
한참을 진지하게 읽던 1호 독자는, 이 고민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해줬다.
“당신의 글은 마치 어떤 사람을, 이미 파티가 진행 중인 음악이 크게 틀어진 방에 집어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누군가는 같이 신이 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리듬을 탈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너무 시끄러워요” 라던지. 분위기가 왜 이런지 모르겠으니 그냥 방에서 나가버릴 거다 “라고..
내 글쓰기는 보통 세 가지 정도의 목적이 있다.
1.’ 나의 호기심을 못 이겨서, 해 버리는 질문‘같은 생리적 현상
2. 독자들에게 생각을 유도하고, 그 생각을 공유받고 새로운 질문을 만들고 싶음
3. 내가 지금껏 해 온 질문의 답에 대한 개인적인 정리를 통해 새로운 질문을 만듦
세 가지 모두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새로운 질문을 만든다.
일전의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나를, ‘질문 그 자체이자 호기심’이라고 정의한다.
내 세계관에서는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만들며
영구히 끊길 수 없다.
질문과 그 답변이 새로운 질문을 생성하지 못한다면, 상기의 이유로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파멸이다.
그래서 내 글의 구조가 일종의 장애물이 되어, 전달 자체를 막거나 오해를 만들어 그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만들지 못하게 만든다는 깨달음은, 충격과 당혹이었다.
고민이 깊어진다.
일전에 내가 적은 글에서처럼
사람의 ‘말’ 이란 것은 상당히 불명확하고
희미하다. 심지어 중첩되어 있기까지 하다.
예를 들자면, 내 머릿속의 특정 색을
설명하고자 할 때, ’ 빨간색‘이라고 말하면 ‘쉽다’ 다만 문제는.. 사람들의 머릿속 빨강은 생각 외로 모두 각기 다르다.
그래서 색상표의 색 이름이 필요하다.
빨강이 아닌, 크림슨, 혹은 마젠타 등으로 칭할 수 있다.
이것은, 보다 선명하다.
다만 이 경우는 독자나, 나의 대화 상대가 크림슨이니 마젠타 등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영어 색이름이 아닌 진홍색, 혹은 산호색 같은 한글 색이름을 사용하는 등의 시도를 해봤지만, 그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반드시 생각한다.
“산호가 뭐지?”
그리곤,
그걸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이것은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내가 ‘내 생각을 전달하고 그로부터 오는 질문을 듣고자 하는 욕망’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아직 멀었다. 나는.. 욕망을 버리지도,
그렇게 친절하지도 못했다.
앞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