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by gulogulo

얼마 전, 베란다에 둔 양파를 꺼내 요리를 하려고 보니 싹이 나 있었다. 두 개가 남아 있었는데

둘 다 싹이 나 있어서, 오랜만에 길러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하나만 요리에 쓰기 위해 잘라 보니 속이 물러 있었다.


싹이 좀 더 크게 자란 양파를 물병에 반쯤 담가

해가 잘 드는 창가에 두었다.


생각해 보니 매번 양파를 기르다가 죽인 것 같아 조금 찾아보니,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우리에게 오는 양파는 이미 생의 절반 정도를 지난 녀석들이라는 것.


그리고 물에는 영양이 없기에 양파 스스로를

마치 배터리처럼 소모하며 싹을 두어 번쯤 내다가 이 주도 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내가 양파를 기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연명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화분을 만들어 심어 줄까? 하는 생각에 조금 더 알아보니, 화분으로 옮겨 심어 주어도 양파는 꽃대를 내던, 내지 않던… 두어 달 정도 더 생을 불태우다 죽는다는 걸 알고는 화분에 옮기는 것은 역시 관두기로 했다.


무슨 정성을 들여도 결국은 몇 달도 못 가

그 생을 마칠 거란 걸 알고 나니,


물컵에 올려둔 양파도 부질없는 짓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양파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너는 다른가?”


“우주의 영원 속에서, 너희 종족은 과연 길게 산다고 말할 수 있나?”


과연 그렇다.


영원 앞에서, 인간의 수명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 만큼 긴가?


그런 기준으로는 모든 것이 헛되다.


하지만 우리는 사는 동안 저 양파처럼

척박함 속에서도 뿌리를 내며, 싹을 틔우고

결국은 꽃대를 내기도 한다.


양파의 수명은 우리에 비해 순간이지만

그는 그동안 모든 것을 하며 끝내 자신을 모조리 소모하고 간다.


영원에 비해 우리의 수명은 순간이지만

우리도 사는 동안 모든 것을 시도하며 끝내

자신을 모두 소모하고 가야만 할 것이다.


물병에 꽂아 둔 양파는 아직도 내 창가의 볕을 받으며 씩씩하게 싹을 길러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