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좌절을 설계하려 하는가?

최적의 좌절에 관해.

by gulogulo



어느 분이 ‘최적의 좌절’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듣고 생각했다.


최적의 좌절은,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아무 좌절도 겪지 않고 자라는 것보다 적당히 극복할 수 있는 좌절을 겪으며 자라는 것이 건강하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육자들은 아이가 부서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최적의 좌절을 디자인하려고 여러모로 궁리한다.


과거에는 커다란 모수가 여러 가지 시도 속에서, 결과도 비교적 건강하게 분포되었다는 느낌이라면,


현재는 점차 모수는 줄고 통제하고자 하는(최고의 자녀를 얻고자(자녀의 행복을 위해) 하는)


노력이 극대화되며 효율을(국가의 정책적 비전에 대한 불신으로 각 개인이 자신의 수명 안에서 자녀를 최고로 키워내려는)

강구하는 느낌이다.


다만 그 ‘방법’에 대한 ‘정답’이 도출된 바 없는데도

많은 경우 ‘좋다고들 하는’ 방향으로 수렴하는 중이라 삐끗하는 순간 모두가 한 번에 무너질 위험성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고 본다.


아마도 (긍정적인) 미래는 점점 최대다수의 증강된 인간이 늘어나다가, 그 과정에서 ‘인간이 오랜동안 추구해 온 철인’ 몇 명이 관리하는

행복하고 배부른 최대다수의 사회로 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무질서 속 다양성이 있었고

현재는 질서 속 획일성이 강화된다.

우리는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은 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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