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볼일이 있어 어디를 다녀오던 길에
택시를 탔는데, 주행 중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차에 작은 진동이 왔다.
놀란 나는 거의 동시에
“어우 뭐야? 이게 뭔 소리야?”를 외쳤는데
기사분께서 “우유팩을 밟았나 봐요”라고 하셨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선 펑 소리를 듣기 직전에 플라스틱 우유팩이 차바퀴에 깔리기 직전의 이미지를 ‘보았다’는 ‘기억’을 했다.
기묘한 경험이지만, 나는 대략적으로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우리 뇌는 의미 부여 머신이기 때문에 사건에
의미를 항상 부여하며, 그 과정에서 간혹 이런 식의 기억 조작도 이루어진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 경험은 아주 재미있다.
그래서 관련해서 생각을 이어나갔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내가 ‘미래를 기억’ 한 것이 뇌의 착각이 아니라면?
미래를 기억한다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블록 우주 가설이다.
블록 우주 가설은, 시간을 공간에 더해 ‘차원의 한 축’으로 간주하여,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사건이 하나의 '블록'처럼 이미 존재한다는 4차원 시공간 이론이다.
즉 모든 사건은 이미 완성된 한 장의 그림이나 마찬가지이고, 해당 가설에선 우리의 의식이 그 표면을 따라 흐르며, 사건을 순차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 살짝 양념을 쳐 보면,
내가 경험한 일은
레코드 판 튀는 것 같은 현상이라던지, 의식이 따라가던 트랙이 잠시 다른 구간을 읽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혹은…애초에 트랙의 형상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어도 문제는 없다.
우리는 세계나 시간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추측만 할 뿐이니까.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렇다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면, 그 위를 ‘순차로 경험하는 자아’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발생한다.
블록 안에 어떤 것이 완결되어 있건, 그것을 ‘순차적으로 경험’ 하는 ‘자아’가 존재하려면 이 구조는 이상해진다.
왜냐하면 완결된 구조 안에서는
‘지금 진행 중’이라는 감각 자체가 설명하기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블록우주가 스냅숏 사진 모음 같은 프레임의 집합이고, 각 프레임에 방향성이 내포되어 있다.라는 방향으로 ‘순차’를 풀어보려 했지만,
그 역시 내가 블록 우주 안의 그려진, ‘완결된 존재 자체’ 일 경우엔 어째서 ‘순차‘로 경험하게 되는가? 는, 풀어지지 않는 퀴즈다.
물론 이쯤에서
“아 그냥 블록 우주론이 틀린 거 아냐?”라고 해버리면 편한데, 이상하게 나는 그 가설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내 마음에 드는 블록 우주론을 유지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보자면,
기존 전제인
‘세계는 정적이며 완결된 세계속의 의식은 동적이다’
라는 이원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즉.
’ 내가 바로 세계다.‘
이 경우 꽤 그럴싸하게 퀴즈가 풀리는 듯하지만, 의문이 발생한다.
내가 상호작용한다고 믿는 ‘타자’는 무엇인가?
이건 꽤 쉽게 풀었다.
‘나는 세계가 자신을 관측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많은 눈의 시점 중 하나다’
결론.
세계는 완결된 구조일 수 있으며, 의식이란 그 표면을 살피려고 세계가 발생시킨 국소적 시선 현상이다.
덧) 내가 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어도
일단 나는 세계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시선 중 하나이고, 세계를 관찰하는 동안 그저
즐거우면 그만이다.
추가.
저 뒤에 생각한 게,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사건의 가능성 파동 조각들로 가득 찬 우주 구조 속에서
‘나’라는 우주의 눈 중 하나가, 한 사건에서 다음 사건으로 이동할 때, 중첩 파동은 하나로 수렴하기 시작하며 선택하여 이동하는 순간 그 시점의 파동은 입자로 붕괴하며 확정된다. 즉, 쉽게 말해 과거는 내가 선택하고 지나온 순간에야 확정된다.
확률적으로 모든 사건의 연결은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으며 선택지에 따라 결과적으로, 처음 있던 차원에서 전혀 다른 층위로 이동할 수 있다”
확률의 붕괴는 전적으로 ‘나’를 기준으로 발생하며, 각기의 눈들은 서로 직접 접촉이나 소통은 불가능하다.
타자는 독립 실재이자, 내 경험 구조의 일부이다.
눈들의 서로 다른 붕괴 상태 공유는 각기의 해석으로 갈리며, 그것을 통해 통합된 하나인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한다.
이것은 수신기에 우연히 잡힌 메시지를 ‘내 기준’으로 풀어내려는 분석 과정이며 어떠한 강요도 확정도 아님을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