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어른이 되는 법 1. 사과하기
많은 해를 경험하진 않았지만, 살다 보면 차마 용서하지 못할 사람들이 나타난다. 극악무도한 이를 용서하는 건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현들은 가능하겠지만 한낱 범부인 나에겐 가혹한 일이기에 패스한다. 내 마음에 대못을 박아버린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언젠가는 가능하겠지만 그 시기가 지금일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자잘 자잘한 실수를 저지르는 직원이 있었는데,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하거나 뒤처리에 대한 감사를 표한 적이 없었다. 나름 좋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며 잔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사과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 대해 더 이상 내가 낭비할 에너지가 아깝다는 것이었다.
무관심, 최소한의 대응으로만 마주하니 내 감정소모도 줄어들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왜 그럴까 생하는 감정도 결국은 에너지다. 나에게 객관적인 -잘못의 유형을 따지자면 누가 봐도 잘못했다고 분류할 수 있을 법한- 실수를 한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다.
일례로 나는 누군가를 '무관심'이 아닌 법의 심판을 보여줘야겠다 생각한 사건이 있었다. 반성의 여지도 없고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행위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심을 한 시점부터 나는 더 피로해졌다.
내 마음속으로 며칠 삭히고도 쉬이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하면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는 타인에 대한 불신. 최소한의 도리도 지키지 않는 이를 경험하고 나면 그 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도 또다시 이런 유형의 인간군상을 접하게 될까 두려워진다. 둘째로 후유증이 제법 오래간다. 아팠던 그 순간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다. 실은 이 후유증은 사과를 받았더라도 지속되기는 한다. 그래도 받지 않았을 때보다는 비교적 덜 머물다 지나가는 듯하다.
결국 세상 일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아닐까 싶다. 학생일 시절에는 권선징악, 나쁜 사람은 무조건 벌을 받아야 하고 선처와 용서에 대해선 쉽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조소했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벌을 내리는 것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선처와 용서를 하는 것이, 징벌보다는 에너지가 덜 드는 경우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앞서 잠시 언급한 사건에선 다행히 법의 심판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후 나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사과를 했고, 내가 더 이상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에 대해 환멸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생각보다 많은 일이 '진짜' 사과로 해결될 수 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늦지 않게 사과하자. 정상적인 유형의 사람이라면 내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계속해서 그 일이 생각나게 된다. 걸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그 사람 많이 다친 거면 어떡하지 와 같은 후회 등등. 진정성 있는 뉘우침은 내 죄책감도 덜 수 있고, 내가 다치게 한 상대의 마음에도 가장 좋은 명약이 된다.
받는 사람에게도 주는 사람에게도 위안이 된다는 것에 있어서 사과는 기부와 유사한 듯하다.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해 주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