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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와 달팽이 Sep 21. 2022

겸손해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요.

겸손이란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겸손 :

                             나를 낮추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어 나와 관계맺고 있는 타인이 편안하게 느끼고 궁극에는 나를 매력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삶의 자세



겸손을 이야기 하기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먼저 나누고 싶다.  

나란 사람은 말 그대로 ‘나 밖에 모르는 사람’ 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이 더 정확하다.

어린시절 부모의 부유함은 나의 우월감이 되었고, 그것이 옳다고 믿었던 부모님의 생각이 더 굳어지게 만들었다.

우월감은 “멋진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은 욕구가 되고, 때때로 나를 가식으로 감싸기도 하였다.

이런 모습들이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고 그렇게 그해 화두는 ‘겸손’ 이 되었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내가 겸손할  모르는 이유에 대한 고민이었다.

가진 것도 잘난 것도 없으면서 겸손하지 않는 내 모습이 참 이상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고민을 한 후에 몇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첫째, 나의 기질 자체가 경쟁적이고 승리하는 것을 즐기는 기질이었고,

둘째, 우리나라 교육환경이 서열화하여 모든 것에 우열과 저열을 가르쳤기에 그것을 나의 기질과 일치시키면서,

상대방이 나보다 낫다 혹은 못하다라는 개념이 깊히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나의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방어기재의 작동해서였다.

결론적으로, 겸손하지 않는 것이  세상에서  기질대로 살아가기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이유를 찾고 난 후에 시도한  “3 생각하고 말하기였다.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적어도 겉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노력부터 해봐야지.

하지만 이내 이는  자신을  깊이 가식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면 깊숙이 있는 우월감을 더욱 꽁꽁 숨겨두면서 겸손한  포장하는 거니까. 그래 이건 답이 아니군…

다음으로 시도했던 것이 겸손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보는 것이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 정의해 보았다.

의식적으로 타인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연습을 해본 것인데, 처음엔  지 않았지만,

부부에서 답을 조금씩 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내를 ‘나와 다른 존재로 인정하는가?  아내가 나와 같아지기를 강요하는  아닌가?  

아내의 모습  자체를 사랑하는 보다 ‘변화하는 아내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문해본다.

있는 그대로의 아내를 인정  있을때 비로소 나의  ‘겸손배우기 시작되는  아닐까? 

니체는 겸손이란 노예근성을 미화한 것일  본디 인간에게 겸손이란 있을  없다고 .

겸손할  모르는 나로서는 위로가 되는 말이지만 결코  사회에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무는 봄에 피어나 여름에 만발하다가 가을에 결실을 맺은  겨울에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다.  

끝났나 했더니 다시 봄이 오면 피어나 새로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여름에 나무 그늘을 제공해주고 때론 땔감으로 자신을 아낌없이 나눠주지만  뿌리의 생명력과 단단함은 변하지 않고 다시 자라난다.  

나무만큼 겸손을 실천하는 생명이  있을까. 그래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무를 사랑하고 가까이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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