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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Nov 30. 2023

번외편: 그 많던 음악 DVD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컬렉션 속 묻혀있던 음악 DVD에 대한 이야기들

한 때 뮤지션들이 DVD를 한창 발매하던 시기가 있었다. 내용은 각양각색인데, 앨범 제작 과정에 대한 다큐와 기존의 뮤직비디오들을 조합하여 편집한 형식이 있었고 2시간 정도 분량의 라이브 공연을 온전히 담아낸 공연실황, 그 외에도 밴드나 뮤지션의 특색과 감독의 개성이 독특한 조합을 이뤄내어 독창적인 영상을 만들어낸 경우도 있다. 20대 즈음에 CD에 빠져있던 만큼 그러한 DVD 콜렉팅에도 꽤나 열을 올렸던 것 같다. 지금은 상기한 모든 것들이 대부분은 유튜브에 업로드되고, 특히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에는 검색하면 스마트폰이나 PC로 바로 고화질 영상을 감상할 수 있지만 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2000년대에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찾고 싶었던 아티스트의 DVD를 음반점에서 마주할 때면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꽤나 많은 것들을 구매했고, 지금도 소유하고 있다.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었고, 보다가 지루해서 관람을 완료하지 못한 것들도 꽤 있지만, 나름 인상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본 영상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은 이 정도 급 안 되면 영상물 안 내줘!!

지금은 누가 들어도 다 알 만한 최정상급의 아티스트가 아닌 이상은 따로 1시간 30분~2시간 이상의 영상물을 만드는 경우가 별로 없다. 빌리 아일리쉬, 테일러 스위프트(최근에 아예 극장개봉까지 했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콜드플레이 정도의 아티스트들이 그나마 영상물을 제작하는 편이고, 올드스쿨 방식의 라이프스타일(현재까지도 많은 오프라인 음반점이 운영 중이며, DVD나 블루레이 관람 인구도 적지 않다)을 아직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아직도 꽤나 많은 뮤지션들이 영상물을 발매하기는 한다. 한 때 열정적으로 뮤지션들의 DVD를 모으던 나도 이제는 집에 재생할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에 즐겨보던 영상들은 리핑해서 파일로 가끔 재생하는 정도이고, 실물 디스크들은 나의 컬렉션들을 담아둔 장에 고이 보관 중이다. 이번에는 나의 컬렉션에서 내가 한 동안 즐겨봤던, 인상적이었던 것들 몇 개만 간략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Korn - Deuce

엄밀히 말하자면 두 개의 영상물을 담고 있는 발매 버전인데, 이들의 1집 시절을 담은 초창기 다큐멘터리 'Who Then Now'와 전성기인 2~4집 시절의 모습을 담은 'Deuce' 모두를 관람할 수 있기에 밴드의 팬으로서는 굉장히 소중한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Who Then Now'의 경우에는 감독이 '미녀 삼총사' 시리즈로 우리에게 친숙한 McG인데, 특유의 휘황찬란한 스타일이 느껴지지는 않고, 오히려 밴드의 1집의 결에 맞게 날것의 느낌이 강하다. 보컬인 조나단 데이비스가 광기 어린 모습으로 발작적인 보이스와 액션으로 녹음을 하는 모습, 아직 전국민적인 록스타로 발돋움하기 전의 앳된(?) 모습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팬으로서 굉장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Deuce'에서는 전성기에 오른 이들이 각 앨범마다 다른 모습으로 음반 제작에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2집인 'Life is Peachy'를 녹음할 때에는 1집 시절의 정제되지 않은 광기를 마저 표출하는 듯한 느낌이고, 3집 'Follow the Leader'는 정상에 오른 상태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매일매일 파티하듯이 레코딩에 임하며, 4집 'Issues'에서는 3집의 성공을 잇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훨씬 더 딱딱하고 정제된 모습으로 진지하게 녹음하는 걸 볼 수 있다. 영상들 자체의 퀄리티도 훌륭하지만 메뉴 탐색도 일종의 호러 게임 같은 인터페이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탐색하는 재미가 있는, Korn의 팬이라면 갖고 있으면 후회하지 않을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Sigur Ros - Heima

음악 다큐멘터리와 영화 사이 그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 느낌의 'Heima'는 2006년에 시규어 로스가 자신들의 고향인 아이슬란드를 투어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몽환적이고 개성적인 이들의 음악과 초자연적인 느낌의 아이슬란드의 풍광이 어우러져서 관람하는 이들에게 진한 감흥을 선사해 준다. 댐 건설에 반대하기 위해서 특정 지역에서는 아예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어쿠스틱으로 공연을 하기도 하고, 작은 교회에서든 본인들의 스튜디오에서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각 곡과 컨셉에 맞는 개성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본래 어느 정도 좋아하는 밴드이기는 했으나 자신들만의 언어인 'Hopelandish(대충 희망의 나라의 언어 정도로 해석하면 될듯하다)'로 가사를 쓰는 모습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이 간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으나 'Ágætis byrjun'을 부르는 보컬 Jónsi의 표정에 엄청난 감정과 진심이 서려있는 것을 느꼈기에 이들이 더욱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감상하며 잠시 잡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재생하면 실패가 없는 작품이다.


Slipknot - Disasterpieces

개인적으로는 DVD를 관람 혹은 구매할 때 라이브 공연 실황보다는 밴드의 무대 뒤에서의 모습, 스튜디오 레코딩 부스에서의 모습 등을 담은 다큐 형식의 DVD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단, Slipknot의 2002년 런던에서의 라이브 공연을 담은 'Disasterpieces'만은 예외이다. 26개의 카메라로 촬영된 이 공연 실황은 역동적인 영상과 훌륭한 사운드 퀄리티로 음반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이들의 에너지와 광기를 온전히 보는 이에게 시청각적으로 전달해 준다. 인트로 뒤에 바로 이어지는 첫 곡 'People=Shit'의 라이브부터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기믹이 음악을 묻어버리는 우스꽝스러운 밴드로 묻힐 수도 있었던 이들이 왜 지금까지도 최고의 메탈 밴드 중 하나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영상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

2001년 발매된 Linkin Park의 'Frat Party at the Pancake Festival'과 Incubus의 'When Incubus Attacks, Vol.2'는 객관적으로 뛰어난 영상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록스타급으로 오른 밴드의 풋풋한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초창기에만 느껴질 수 있는 날것의 에너지가 온전히 전달된다고 생각하기에 꽤 좋아한다. 그 외에도 Godsmack의 'Changes'는 재미있게도 초중반에 보컬인 Sully Erna가 피자를 너무 맛있게 먹는 장면이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고, Red Hot Chili Peppers의 1991년 다큐멘터리 'Funky Monks'는 특유의 개성적인 스타일이 아직도 강하게 인상에 남아있다. 그 외에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운 DVD들도 많았으나, 굳이 지금 시점에 와서 안 좋은 얘기를 해서 무엇하겠나. 다 이제 와서는 재미있고 소중하면서도 소소한 기억들이고, 나의 수납장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는 추억의 상징물일 뿐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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