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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Dec 04. 2023

하드한 게이밍의 매력을 알려준 첫 작품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 대하여

때는 2021년 4월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마치 오랫동안 날 괴롭히던 비염과 위식도역류염이 한 번에 싹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상쾌하다기보단 불길했다. 마치 코와 목,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통로와 기관에서 수분이 싹 날아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나는 그제야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 느낌은 코로나 확진이라는 진단과 함께 내게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강제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던 관계로, 새로운 도전과 심심함을 이길 무언가가 필요했던 나는, 평소와 같은 상황 및 취향이었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게임을 하나 구매하고 말았고, 그것이 바로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만들어낸 캡콤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인 '몬스터 헌터 라이즈'였다.

난이도고 뭐고 그냥 얘네들이 너무 귀여워서 샀음

당시에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나 '슈퍼로봇대전 V' 정도의 쉬운 RPG 정도의 게임이나 손대고 있던 나에게 '몬스터 헌터 라이즈'의 장벽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모든 캐릭터의 특수 기술 조작법을 모두 외운 상태로 실시간 3D 액션에 도전해야 하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복잡한 시스템, 무기 파밍 방법이나 사냥에서 필요했던 전략과 순발력 등 모든 것에 대한 지식도, 스킬도 전무했던 탓에 '아, 괜히 샀구나.'라는 후회만 들었다. 초반에 잡몹에 해당되는 몇몇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미션은 너무나도 쉬웠으나, 첫 보스 몬스터와 마주했을 때 제한시간을 거의 다 쓰고 있는 약을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겨우겨우 잡고 나니 '이제 다음부터는 진행이 안 되겠는데?'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본래 캡콤의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대중적인 게임이라기보다는 매니아층이 두터운 프랜차이즈였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본래 인지도가 높진 않았고, 좋아하는 이들만 해외 버전을 구매해서 플레이하는 정도였으나,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한 그래픽과 편의성을 선보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일반 유저에게도 어필했던 2018년작 '몬스터 헌터: 월드'의 대중적인 성공으로 인해 유저층이 엄청나게 확장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과 PC, 엑스박스로만 플레이가 가능했던 '몬스터 헌터: 월드'와는 달리, '몬스터 헌터 라이즈'는 닌텐도 스위치를 기반으로 시작하여 추후에 PC와 플레이스테이션 및 엑스박스 모두에서 플레이가 가능하게 되면서 보다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어필하였다.

지금의 대중화된 몬스터 헌터를 만들어낸 일등공신

그렇다면 매니악한 성격이 강했던 기존의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월드와 라이즈를 기점으로 대중에게 더 어필할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 진입장벽을 낮추는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내가 깨달은 건 어쩌다가 방어구를 갈아입은 이후였다. 플레이 초반에 '검은띠 방어구'와 '수호단 무기'라는 걸 주는데 너무 멋대가리가 없게 생긴 탓에 착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 물품들이 게임 내 초반에 쓸 수 있는 다른 방어구나 무기에 비해 성능이 말도 안 되게 좋았던 것이다. 초보 플레이어 기준으로는 처음 몬스터를 잡는 데에 일반적으로는 20분이 넘게 걸리고 물약도 엄청나게 소비하는 데에 반해서, 이 방어구를 착용하고 무기를 사용하면 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들고 체력 소모도 적기에 소모품 사용도 줄어드는 것이었다. 게임이 훨씬 할만해지니까 그제야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 몬스터마다의 다른 특성, 각종 다른 무기들 사이의 장단점 및 차이 등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신나는구나!!

게임이 다소 쉬워졌다고 해서 동기 부여가 떨어지거나 플레이가 평이해지거나 도전 정신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상기했던 방어구와 무기는 성능은 좋지만 정말 비주얼이 누가 봐도 "저는 멍청한 초보입니다."를 외치고 있는 듯해서 빨리 내 실력을 늘리거나 이만한 성능을 가지면서도 비주얼이 좋은 방어구 및 무기를 획득하고 싶다는 바람이 더 강해져 오히려 더 열심히 플레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몬스터와 조우하고 스토리를 진행하고(사실 스토리는 좀 빈약하긴 하나), 더 많은 장비를 획득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다소 반복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퀘스트들도 전혀 지루하거나 평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몇 개월 동안 푹 빠져서 플레이했다. 마침 한창 진행할 무렵에 새로운 확장팩인 '몬스터 헌터 라이즈: 선브레이크'까지 출시가 되어 나의 플레이 경험을 더욱더 풍부하게 해 주었고, '선브레이크'의 2차 엔딩까지 모두 보았을 때는 약간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것 같다.

성능은 좋지만 입고 싶지가 않은걸...

이후에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몬스터 헌터: 월드'도 플레이하게 되었고(아직 완료하진 못했다), 이후 나올 차기작도 매우 기대 중이다. 반복적으로 그냥 다른 종류의 몬스터들을 사냥만 하는 게임이 뭐가 재미있을까 싶지만 단순해 보이는 포맷 안에서 각각 다른 무기나 장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각 몬스터 특유의 개성 있으면서도 치밀한 설계와 '예쁘면서도 좋은 장비'를 제작하거나 '성능은 거지인데 너무 아름다운 장비'를 장착한 상태에서도 기절하거나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나의 실력을 성장시키겠다는 동기만큼은 확실히 부여해 주는 얄밉고도 매력적인 플레이 메커니즘 덕에 질리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고, 일정 장벽만 넘어서면 푹 빠져서 2회차에는 1회차와 다른 무기와 방법을 써서 클리어해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중간에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끊임없는 업데이트와 이벤트로 유저들을 챙겨주는 측면이 있기에 플레이하던 기간 동안은 다음엔 또 어떤 것이 새로 나오려나 실시간으로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도 일종의 재미였다고 생각한다.


코로나에 걸림으로 인해서 '몬스터 헌터'를 접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접었다면 아마도 나는 플레이스테이션도 사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만큼 게임이라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살면서 제일 많이 빠지게 되었던 게임이고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요즘도 지속적으로 소위 말하는 '갓겜'을 꾸준히 내주는 캡콤의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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