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투 노멀 분석

2. 영어원문과의 비교분석

by 건포도

소개

maxresdefault.jpg 웨스트엔드의 게이브, Jack Wolfe. 기존 게이브들과는 이미지부터가 굉장히 다르다.

앞서 1편에서 영국 웨스트엔드의 <넥스트 투 노멀>에 대해서 잠깐 언급한 바 있다. 해당 극은 나온 지 15년이 넘어가는 N2N을 새로운 무대구성과 연출, 캐릭터 해석으로 올린 일종의 '리메이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참신한 극이었다.

(이번 아마추어 공연에 참여하기 전 극을 결제해서 n회독하고 갔는데, 연출적으로 오리지널 N2N보다 웨스트엔드 N2N을 지향하겠다고 듣고 기뻤던 기억이 난다. 해당 극의 풀영상은 유료로 결제한 후 vpn을 사용해야만 볼 수 있지만, 그럴 의향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링크를 남겨두겠다.)

당연한 수순으로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수십 번, 장면만은 수백 번 넘게 해당 극을 반복하며 보다 보니, 한국어 대본 및 악보와 영문 원작의 내용이 미묘하게부터 크게 차이 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덕에 캐릭터 분석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 됐던 만큼, 해당 내용을 공유하여 극을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도움을 주고자 2편을 작성하게 되었다.




순서

1. 줄거리

2. 극의 전체 분석

2-1) 아들의 존재, 트라우마

2-2)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

2-3) 의사와 치료

2-4) 주제

3. 영어 원문과 한국 번역 간의 비교 분석

3-1) 게이브

3-2) 번외

4. 맺으며



영어 원문과 한국 번역 간의 비교 분석

1) 게이브


Prelude


"엄마 이제 날 그만 내버려 둬, 나 벌써 열여덟이야"

"mom you gotta let go, im almost 18"


'Let go'는 굉장히 흔한 표현이다. 말 그대로 놓아줘부터 N2N 번역의 내버려 둬, 그리고 겨울왕국 엘사의 메가히트곡 <let it go>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만약 'let go'가 '놓아줘'로 받아들인다면 극의 시작부터 굉장히 의미심장한 대사가 된다. 게이브가 자기 자신을 다이애나에게 놓아달라는 말을 하다니.

하지만 정확히 무슨 뜻으로 저 대사를 적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의미로든 받아들일 수 있는 애매모호함, 아리송함, 이것이 N2N 극 원문의 가장 큰 특징이자 무기이다.



I am the one <바로 나>


~are you hoping for a life to live 정말 괜찮기를 기대해

well so am I 나도 아파


게이브는 등장하자마자 다이애나를 중간에 두고 댄과 대척한다. 거의 랩처럼 쏟아내는 가사들과 바로 이어지는 댄과의 화음이 매력적인 순간이다. 그리고 게이브의 가사를 잘 보면 그 뜻 또한 굉장히 매력적이다.


댄에게 하는 말인지, 다이애나에게 하는 말인지는 연출마다 그리고 배우마다 다르겠지만

"are you hoping for a life to live"은 의문형에 책망의 감정이 담겨있다.

직역하자면 "니 삶을 살기를 바라?"라고, 바로 뒤의 "well so am I"가 "나도 그래"로 번역한다면 살아있기를 바라는 게이브의 절실한 마음이 노골적으로 보이게 된다.

물론 "정말 괜찮기를 기대해"로 번역한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나도 아파"로 고정된 번역엔 아쉬움이 있다.


Dan : I won't give a damn 날 탓하지만

Gabe : don't give a damn 아빠도 나를


"give a damn"은 신경조차 없는, 무관심한의 뜻도 있고 좀 더 잘 와닺는 한국어 표현으로는 "쥐뿔도 신경 안 써"다. 하지만 앞선 댄의 가사 문맥상 "날 탓하지만"은 좋은 번역이다. 하지만 같은 문장을 말하는 둘의 아이러니함이 더 극대화되려면 게이브도 "날 탓하지만"으로 통일해도 되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



I'm alive <난 살아있어>


게이브의 대표 넘버이자, 극 전체에서 가장 히트를 한 인기넘버. 뮤지컬 배우들에겐 오디션에서 절대 불러선 안 되는 곡 top 10안에 드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과장 보태서 수천번을 넘게 들으면서 굉장히 소름 돋았던 점이 많았다. 앞서 언급했듯 작가는 극에서 캐릭터들의 대사와 가사에 애매모호함을 집어넣는 것을 굉장히 잘하며 또 즐긴다. 그 정수가 이 곡에 다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시작 부분부터 천천히 하나씩 짚어보자면


I am more than memory 나는 기억 그 이상

I am what might be I am mystery 난 어둠 안개 나는 미스터리

'ㅣ'발음의 rhyme


이 곡은 라임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넘버이기도 하다. 추후에 다시 말하겠지만 영문에선 오직 "Im alive"만 반복하는 특징이 있어서 자칫 질릴 수 있는 곡의 분위기를 다른 가사들의 라임을 통해 완화한 것이다.

(잡설을 조금 더 하자면 왜 영문으론 전부 다 "I'm alive"인데 굳이 살아나 살아있어 이렇게 세 개로 번역했는가도 같은 맥락에서다. 한국어로는 라임을 맞추기도 어렵고 그 내포된 의미 살리기도 어려워서 하나로만 통일해서 불렀다면 자칫 지루하고 이상한 돌림 노래처럼 들릴 위험이 있다)


뜻을 보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what might be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를 묘사하자면, [게이브가 살아있다면 뭐가 됐을까?]의 의미겠다. 미래 노스탤지어, 겪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향수, 그 애틋함. 그것을 의미한다.


If I'm a sinful spirit or I'm flesh and blood 그저 영혼인지 피와 살인지


여기부터 바로 작가의 특징이 보인다. sinful은 simple과 발음이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sinful은 '죄 많은'이라는 뜻이고 simple은 '단순한' 혹은 '그저'라는 뜻이다. 둘 중 무엇으로 생각하고 부를지는 배우와 연출에게 그리고 무엇으로 듣고 이해할지는 관객에게 맡기고 있다.

즉 이 문장은 "그저 영혼인지"와 "죄 많은 영혼인지" 두 개의 의미가 있다.


I'm alive I'm alive I am so alive 하지만 난 이렇게 살아있어


I'm alive는 빨리 말하면 I'm a lie와 발음이 동일하다.

게이브는 영어로는 "난 살아있어"와 "난 거짓이야"를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 중 어떤 의미인지는 역시나 작가가 우리에게 맡기고 있다.

현재의 한국어 번역으로는 오직 "난 살아있어"의 의미로밖에 부를 수 없고 연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숨어있는 "난 거짓이야"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이는 한국에서 N2N을 연출한다면 혹은 게이브란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꼭!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겠다.


I am flame and i am fire 나는 불길 난 불꽃

I am destruction decay and desire 나는 파괴 난 소멸 또 욕망


1절과 마찬가지로 영문 라임을 살렸다. 번역으로는 그러기 쉽지 않으나 만약 시도한다면 파괴 대신 붕괴, 소멸 대신 부패, 또 대신 난을 넣어 억지로라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러면 부르는 사람 입장에선 발음하기가 불편할 수 있다.


i've shown you 넌 못 가


직역하면 "내가 보여줬잖아"가 번역으로는 "넌 못 가"가 되었다. 앞서 <바로 나> 넘버에서 처럼 "알잖아"로 번역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and though you made me you cant change me 난 니 그림자 못 벗어나


"네가 날 만들었을지언정 날 바꿀 수는 없어"의 의미를 과감히 버린 번역이다.


you're alive im alive and i'll show you why 난 너의 그림자 아주(난 늘) 가까이


대신 그림자를 강조해서 다시 한번 가사에 넣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I'm alive" 대신 "you're alive"라고 한 그 의미를 버린 것은 많이 아쉽다. 앞서 말했듯 alive와 a lie의 발음트릭을 사용한 것으로, 댄 혹은 다이애나에게 "너도 거짓말하고 있잖아"라고 말하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복선이다.


they say forget but i remind you 잊고 싶어? 그냥 포기해...


"다른 사람들이 잊으라 하지만, 내가 상기시켜 줄 거야" 상황 상 정신상담을 받고 있는 다이애나에게 게이브가 말하는 내용이다. 한국어로는 냅다 게이브를 잊고 싶어 하는 다이애나에게 포기하라고 외치는 느낌이 되어 아쉬웠다. 앞선 내용 중에서 한 번도 다이애나가 게이브를 잊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인 적 없는데 갑자기?


you won't breathe me you won't leave me behind 너의 절망이 날 잡아줄 테니까


"날 살아 숨 쉬게 하지 못할 거면, 날 또 떠나진 마" 굉장히 슬픈 외침이다. 이미 죽은 나를 되살리지 못할 거면 다시 버리지 말아 달라니. 아이를 잃은 부모가 듣기엔 너무도 잔혹한 말인데, 번역으로는 전혀 살리지 못했다.


이처럼 N2N의 가장 인기넘버 I'm alive에는 굉장히 많은 의미와 은유가 담겨있는 작가와 작곡가의 역작이다. 분석글에 적은 것 외에도 다양한 숨겨진 의미가 있을 테니 다들 꼭 한번 고민해 보면 좋겠다.



Aftershock


They cut away the cancer but forgot to fill the hole

They moved me from your memory Im still there in your soul

암세폰 잘랐지만 거길 안 채워놨어

기억에서 지웠지만 아직 난 여깄어


굉장히 라임을 잘 맞춰서 놀란 번역가의 역작이다. 너무 비판만 한 것 같아 잘한 점도 넣었다.


Your life goes back to normal now 제자릴 찾은 거라고 믿고들 싶겠지


'Normal'은 극의 제목에 들어가는 단어인 만큼 굉장히 중요하다. ECT를 통해 게이브와 과거의 기억 대부분을 날려버린 다이애나. 그녀를 보며 기뻐하는 댄과 나탈리. 정상에, 평범함을 되찾은 굿맨 가족은 일견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곧 다가올 여진이 보이는 우리에겐 되찾은 '정상'이 진정한 행복을 뜻하지 않음을 알게 해 준다.



I'm alive rep <난 살아있어 reprise>


Until you name me you can't tame me 날 잊으셨나 내 이름도


"내 이름을 부르기 전까진 날 길들일 수 없어"라는 영문을, 제한된 문장의 길이에 번역하다 보니 그 의미를 다 날려버렸다. 이게 굉장히 의미 있는 가사인 게, 댄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라고 반협박을 하는 장면이다. 그전까지는 죽어도 말 안 들을 분위기다.

극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게이브의 이름이 극의 끝자락, 빛의 직전에서야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을 알 것이다. 그만큼 이 가사가 날아간 것은 정말 뼈아픈 번역이다.


I am death defied 죽지 않아


처음으로 I'm alive 말고 death defied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을 주목해 보자.

death defied는 testified와 발음이 거의 동일하다. testified는 '증명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게이브는 ECT와 약물치료 그리고 다이애나의 기억상실, 그 모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영문으로는 단순히 죽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이 증명된 존재로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게이브 번역을 끝내며


분석글 1편에서 N2N 극을 본 사람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그러니까 아들은 뭐야? 유령인 거야? 아니면 다이애나의 환각인 거야?'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어 번역으로는 이 대답이 한쪽으로 치우쳐질 수밖에 없다. 발음트릭을 사용한 영문의 애매모호함, 의미심장함이 다 날아간 채 반쪽짜리 의미만이 남아 연기할 수밖에 없으니까.

번역을 고칠 수는 없겠지만(때론 완벽한 정상보단 그 주변 어딘가가 더욱 행복한 것처럼) 그래도 이 분석글을 통해 원문에 담긴 뜻들이 이러함을 알고 더 좋고 깊은 극을 만들어준다면 감사하겠다.



2) 번외

다이애나

I miss the mountains <산이 그리워>


산이란 다이애나에게 뭘까? 다이애나 역을 맡은 배우라면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다. 자유일 수도 혹은 과거일 수도 있지만 영어 원문에는 또 다른 단서가 숨어져 있다.


i miss the mountains 난 또 산을 꿈꿔

i miss the dizzy heights 그 아찔한 높이

all the manic magic days 행복에 미쳤던 날


산의 높이와 굴곡 오름과 떨어짐. 그리고 원문에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단어 'manic' 조증이다.

극 중 상황을 보면 파인박사의 약물치료를 통해 다이애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된다. 그러던 중 헨리와 꽁냥거리는 나탈리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곤 <산이 그리워> 노래를 부른다. 즉 다이애나가 그리워한 것은 자신의 조증과 우울증 모두를 포함한 감정기복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mountains make you crazy 산은 무서웠지 미칠 것처럼


직역하면 "산을 널 미치게 해"이다. 그 감정기복들로 인해 미쳤다고 정신병을 진단받은 자신을 뜻할 수 있다.



I've been <네 곁을 지켰어>


cause i've never been alone 혼자되기 싫으니

i could never be alone 혼자 견딜 순 없어


직역하면 "난 혼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어, 난 혼자 있을 수 없어"이다. 상황상 아내는 자살시도를 했고 본인은 그 흔적을 치우는 중이다. 혼잣말로 자책하고 자조하고 있는데 게이브는 자꾸 자신과 화음을 맞춘다. 그때 영어 원문 뜻 그대로 내뱉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왜 댄은 혼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단 걸까? 왜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걸까? 그게 무슨 말인지는 댄만 알겠지만 듣고 있는 게이브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묘하다.




맺으며


6개월 간 <넥스트 투 노멀>만 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이 극을 공부하며 깨우친 바를 분석글로 담았다.


처음 공연을 봤을 땐 '뭐 이런 극이 다 있냐' 하고 두 번째 봤을 때에도 '진짜 별로다' 했었는데

반년이란 시간 동안 N2N와 게이브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극과 캐릭터가 되었다.


12월 21일 자로 모든 공연이 끝난 후, 실감이 안 났었는데, 이렇게 글로 마침표를 찍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니 이제야 비로소 끝났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이 글을, 어떤 연유로 찾아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25.06.28 ~ 25.12.20

게이브, 건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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