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 하지 말고 성실히 하자> 서문
지금 시간 오전 9시 3분. 여긴 501호 임용고시반 55번 자리. 지금은 한 사람이 왔지만 금방 전까진 나 혼자만 있어서 흡사 이곳을 내가 다 차지한 양 노트도 북북 찢고 줄도 쫙쫙 긋고 짐도 쾅쾅 내려놨다. 그렇게 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나니 얹힌 가슴이 풀어진 것 같고 막힌 속이 뚫린 것 같아 마구 대장부의 기운이 샘솟아 지구를 돌파하여 우주까지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더라.
임고반에 들어온 지 어느덧 3주가 지났고 이렇게 1학기부터 임고반에서 공부를 하는 건 2007년 이후 처음이니 11년 만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이 축복 가득한 시간이고 다신 없을 수도 있는 복에 겨운 시간이란 사실.
지난 삶을 되돌아볼 때,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다. 나의 능력이나 성품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여전히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여기에 하나 더 첨가하여 ‘좋은 기회를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단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학문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게 그것이다. 이를 테면 천운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운을 어느 정도까지 확장하여 임용합격까지 이루어갈 수 있느냐가 이제부터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나의 역량이라 할 수 있다.
3주 공부를 해보니, 예전에 임용공부를 하던 쪼가 아직도 남아 있고, 실력은 개뿔도 없으면서도 조급해지고 욕심나려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도 내 스스로의 이상은 높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굳이 ‘욕속부달’이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행동이나 실력은 없이 마음만, 의욕만 앞설 경우 어떻게 되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또 다시 임용엔 실패할 거고 나는 더욱 위축되어 솜털만큼 작아지게 될 거란 걸.
그래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슬로우 슬로우 퀵퀵’에서 단호하고 멋있게 ‘퀵’을 뺄 수 있는 용기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천천히 그러면서 성실하게’라는 말씀이고, 그 말씀은 사람의 의식과 함께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노트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단어들, 기본이 되는 한자들을 적고 수시로 보며 생각을 다듬어 갈 것이다. 얼마나 이 노트가 채워지느냐, 그리고 얼마나 수시로 들여다 보느냐에 따라 좀 더 공부와 친해지게 될 거다. 고로, ‘타짜’ 정마담의 말을 빌어 “이 노트, 갖고 싶다”라 할 수 있지 않을까.
2018년 4월 8일 9시 46분
55번 자리에서 건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