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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5. 2018

고려인, 카자흐스탄에서 존경받는 민족이 되다

2013년 6월 16일(일)

박물관은 어마어마했다. 이 도시의 상징성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곳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규모에 비해 볼만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카자흐스탄 전체 지도와 상징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거기서 사진을 찍으려면 200텡게를 내야 한단다.                




알마티 국립박물관

     

지하실엔 선사유적지, 1층엔 기획전시실, 3층엔 대통령 업적실, 다민족(터키인, 카작인, 고려인 등) 소개실, 오일대국 소개실 등이 있었다. 특히 고려인들을 소개하는 부스가 다른 민족을 소개하는 부스보다 넓으며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서 놀랐다. 그건 그만큼 이곳에서 고려인들의 위상이 높다는 이야기이리라.               



▲ 바로 이곳이 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메인홀이다.




고려인카자흐스탄에서 존경받는 민족으로 서다

     

그러고 보니 어제 원장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이라고 밝히는 건, 그만큼 ‘성실하고 정직하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곳에서 고려인들은 존중도 받고 대우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죠.”라는 이야기다. 타민족이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독일에선 유태인들이 그랬고 일본에선 조선인들이 그랬다. 아무리 성실하고 정직해도 약자이기에 야비하고 돈에만 눈먼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선 그러지 않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고려인들도 위기라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분리 독립되었다. 소비에트 연합 시절엔 사회주의국가답게 문화예술을 우대하고 인문학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컸다. 무려 150여 민족이 살던 국가였는데도 전체가 어우러져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 덕에 고려인들도 초기정착 때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서서히 지위를 획득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인들 중엔 문화예술 쪽으로 진출한 사람도 많으며 공공기관에서 일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 알마티 박물관 앞에서 찰칵.




디아스포라Diaspora 고려인의 핍박

     

그러나 분리 독립이 되고 석유가 발견되고 생산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러시아어만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 요직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되자마자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연해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카자흐스탄의 개발은 1995년부터 불과 2년 사이에 비약적으로 진행되었다. 오일머니는 넘쳐나지만 그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철학이 없으니, 여기저기 흥청망청 개발이 진행된 것이다. 거리에는 왼쪽에 운전석이 달린 차와 오른쪽에 운전석이 달린 차가 뒤섞여 달리고 있으며 속도 경쟁이라도 하듯이 맹렬한 속도로 무섭게 달린다. 2년 사이에 갑자기 차가 늘어나니, 도무지 교통법규나 교통인프라를 갖출 시간적인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지금 카자흐스탄은 급성장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이게 긍정적인 미래로 연결될지, 아니면 흥청망청하다가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초래하여 고려인들에겐 힘겨운 나날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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