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Aug 18. 2018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21시간 걸리는 기차를 타다

2013년 6월 19일(수)

알마티에서 기차를 타고 아스타나로 가는 날이다. 오전 11시 45분 기차를 타고 떠나 내일 오전 8시 10분경에 도착하여 아스타나를 둘러보고 저녁 8시 20분 기차를 타고 모레 오후 4시경에 도착하는 무박 3일(?)의 강행군이다. 이런 여행 자체가 처음이었고 여행 중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기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과연 불편한 침대칸에서 자야 하는 3일간의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을까?               



▲ KTX 같은 기차는 12시간 걸리지만, 우린 21시간 걸리는 기차를




신분증을 가지러 다시 교육원으로

     

원랜 12시간 걸리는 기차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현지사정으로 인해 21시간 기차를 타고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21시간의 기차여행을? 그게 어떤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청량리에서 망상에 갈 때 5시간 걸리는 기차를 탔던 게, 가장 긴 시간 기차를 타본 경험이다. 그런데 그 5시간조차도 좀이 쑤셔 죽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단순 수치로 4배나 더 많은 시간을 기차 안에서 보내야 하니,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남학생들은 10시에 트렁크 가방을 끌고 왔다. 아스타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자고 토요일 일찍 탈디쿠르간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짐을 싸서 와야 한다고 알려줬었다. 가방은 교육원에 올려놓고 떠날 준비를 했다. 학생들이 다 온 걸 체크하고 기차표까지 확인한 다음에 차에 올라탔다. 오늘 여행엔 교육원 선생님 두 분도 함께 간다. 원장님께 현지 사정에 어둡기 때문에 직원을 동행케 해달라고 요청하여 같이 가게 된 것이다.  


▲ 이렇게 거국적인 기념의 자리에선 한 컷!



출발하고 5분 정도 지났을까. 교육원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고 있는데, 글쎄 기차 안에서 신분확인을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간다면 몰라도, 그렇지도 않은데 신분확인을 한다고 하니까 황당했다. 그렇지만 어쩌랴 카자흐스탄에 왔으면 카자흐스탄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을. 그래서 차를 돌려 교육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가 학생들의 여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잽싸게 챙겨서 내려왔다. 첫 해외여행이다 보니, 이래저래 자잘한 실수들이 많다. 하긴 이런 어설픔도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될 것이다.

알마티엔 두 개의 역이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고 서울처럼 지명을 따라 용산역, 영등포역처럼 부르는 게 아니라, 알마티1역과 2역으로 좀 더 단순하게 부른다. 우린 알마티2역에서 기차를 탔다.               



▲ 기차역엔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섬나라 기차와 대륙의 기차  

   

침대칸 기차를 처음 타본다. 해외에 나가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침대칸 기차를 볼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한국이 통일되면 도입될지도 모르지만, KTX가 있기 때문에 도입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무궁화호는 5시간 4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으니, 통일이 되어 의주나 나선까지 달린다 해도 10~1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색여행 상품으로나 등장할까, 일반적인 기차로는 도입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통일이 되어 이색여행상품으로라도 침대칸 기차를 타고 한반도를 누빌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칸 기차에 올랐다.



▲ 복도를 따라 우리 호실로 찾아간다.



기차에 탈 때 역무원이 여권과 기차표를 검사하더라. 아마도 한국은 ‘섬 같은 나라’이기에 기차를 통해 출입국을 할 수 없으니 그런 검사를 안 하는 걸 테고, 여긴 중국횡단열차가 관통하여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이어지기 때문에 출입국 관리 때문에 이런 식으로 철저히 검사하는 걸 테다.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국적인 경험의 장이 한아름 펼쳐지고 있다. 이래서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일 수밖에 없다. 내던져진 존재라는 걸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순간일 수밖에 없다.               



▲ 마실 차들도 잘 비치되어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이 열차의 이름은 특이하게도 ‘바이테렉Baiterek’이다. 이 이름만 들어도, 이 기차의 목적지를 단번에 알 수 있도록, 이와 같은 이름을 정한 걸 거다. 우리나라도 치자면, 서울행 기차를 ‘남산’ 또는 ‘경복궁’이라 명명한 것과 같다. 어찌 보면 촌스러울 수도 있는데, 그만큼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신수도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 기차에 비치된 생활용품 주머니, 그리고 기차표. 60.000원 정도면 기차를 탈 수 있다.



기차에 오르기 전, 시설이 매우 낙후됐을 거라 어림짐작했다. 서부영화에나 나올법한 나무로 만들어진 칸막이와 침대, 그리고 오래된 화장실을 연상한 것이다. 아마 이런 생각 때문에 21시간 달리는 건 곤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기차 내부는 최신식이며 깨끗하기까지 했다.



▲ 각 호실의 풍경. 우린 딱 12명이라서 4인실 3개면 충분하다.



객차 앞뒤로 총 2군데의 화장실이 있는데, 객실의 표시등으로 화장실이 비었는지 알 수 있으며, 침대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어 공간이 비좁지 않았고, 각종 수납공간이 있어 짐이 많은 여행객도 편하게 여행할 수 있으며, 긴 시간 여행을 위해 각종 차와 편의도구(칫솔, 빗, 구두주걱 등)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웬만한 여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면 오버라고 하려나. 내가 너무 최악의 조건만 상상해서인지 모든 게 좋아 보였다. 이런 여행이라면 4인 가족이 한 공간을 차지하고 여행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락하진 않지만,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며 동일한 시간, 동일한 경험을 나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 힘차게 아스타나로 출발.



매거진의 이전글 28공원과 젠코바 성당, 그리고 질료니 바자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