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9일(수)
우린 12명이었기 때문에 3개의 방을 배정받았다. 첫 번째 방엔 근호, 주원, 규혁, 민석이가, 두 번째 방엔 굴심쌤, 혜린, 연중, 이향이가, 세 번째 방엔 교육원 선생님 둘과 나, 승빈이가 들어갔다. 들어가고 나선 한참이나 이것저것 만져가며 시설물을 둘러봤고 다들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남학생들은 각각 침대를 펴고 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여학생들은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다.
그에 비해 우리 방엔 분위기가 좀 냉랭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사람과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교육원 선생님은 둘 다 고려인으로 한 분은 카자흐스탄, 또 한 분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왔다고 한다. 둘 다 어느 정도 한국말을 할 줄 알기에, 느릿느릿 정확하게 발음하면 알아듣고 웃긴 말이 나오면 곧잘 웃었다. 그 덕에 금세 친해져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갈 수 있었다. 난 하나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지만 이 분들은 러시아어, 카자흐스탄어, 조선어와 같은 여러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며 살고 있다.
과연 이 분들과 내가 느끼는 세상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그만큼 다양함이나 어떤 경계라는 것들이 이상적인 생각만이 아닌 현실로 구현되어 있을 테니, 이들이야말로 경계를 걷는 사람들이며 사이를 횡단하는 모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소재가 떨어져 침묵이 흐를 땐, 교육원 선생님들끼리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러시아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으니, 기차의 철컹철컹하는 소리나 그들의 말소리나 전혀 다르게 들리지 않더라.
언어꾸러미를 가지고 있으냐, 없느냐는 이처럼 세상을 의미 있는 세상으로 만들기도, 무의미한 세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언어꾸러미(이건 단순히 단어만을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꽃과 채소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 갯벌에서 무언가를 잡을 수 있는 능력 등도 포함되는 것이다)가 있으면, 음성신호를 낚아채어 의미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언어꾸러미를 가진 사람은 그만큼 폭넓게 세상을 인식하며, 사람과 소통하며 살 수 있는 것이고 언어꾸러미가 없는 사람은 수많은 신호들을 흘려보내며 대충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세상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언어꾸러미를 통해 내 의식에서 재구성된 세상이 내 눈에 비칠 뿐이고 난 그 의식에 지배를 당하며 살 뿐이다. 이 말이 아마도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근거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언어꾸러미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야 하며, 다양한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어 대화가 한낱 소음일 수밖에 없음을 느끼며, 이런 생각을 했다.
기차는 허허벌판을 달린다. 이 너른 땅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신기하다. 더욱이 지나가는 길에 여러 번 호수가 보일 때마다 승빈이는 “이게 발하슈 호Ozero Balkhash인가 봐요”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아는 호수 이름이 ‘발하슈 호’이니 그렇게 말한 거여서, 나도 “뭐 여긴 모든 호수 이름이 발하슈 호냐? 그럼 이미 발하슈 호 one, two는 지나갔으니 지금은 발하슈 호 Three겠네”라고 농을 쳤다. 그랬더니, 교육원 선생님까지 한바탕 웃더라.
그런데 어이없게도 나중에 확인해보니, 승빈이의 그 말이 정말로 맞았다. 이런 걸 우리 말로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이라고 한다. 여긴 모든 게 고정관념을 깨부수고도 남을 정도다. 한국에서 경험한 것들이 절대적인 것 인양 함부로 떠들어 대면 나처럼 민망해지기 십상이다. 그런 단상이 어릴 때, 여학생들이 들어와서 A, B, C, D 게임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조금 시끄럽게 놀았는데도 기차가 움직이는 소리 때문인지 우리 소리를 묻히는 듯했다.
서서히 해가 저물어 간다. 여긴 9시 가까이 되어서야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광활한 대지 위에 드리운 석양빛이 어찌나 장관이던지 탄성이 절로 났다. 더욱이 기차의 창을 통해 보는 석양빛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승빈이와 나는 게임 도중에 통로로 나와 석양빛을 배경으로 컨셉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석양의 은은함이 두 남자의 고독 또는 감성과 어우러져 분위기를 한껏 업 시켜줬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객실 안으로 들어가니, 얼핏 바다처럼 보이는 발하슈호가 눈앞에 펼쳐지더라. 바다처럼 보이는 호수를 보며 GPS가 발달되지 않고 이동이 활발하지 않던 시대엔 ‘발하슈호’가 아닌 ‘발하슈해’로 불렸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스쳤다. 어느덧 기차에 탄지도 12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은 무척이나 빨리 갔고, 이제 잠만 자고 일어나면 아스타나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2층 침대칸에서 잤다. 덜컹거려 불편하긴 했지만,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세상 모르게 잠이 들었다. 우리가 잠든 그 시간에 기차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려면 기관사는 두 명이나 세 명이 번갈아 가면서 운전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선 기관사도 꽤 힘들겠단 생각을 하며 눈을 뜨려는데 굴심쌤이 돌아다니며, 곧 있으면 사람들이 일어나 화장실을 사용하기에 조금이나마 한산한 지금 씻어야 한다고 알려주시더라. 역시 경험자가 있다는 건 이럴 때 정말 좋다. 이때가 도착하기 1시간 전이었다. 그 때 이미 1층에서 잠을 자던 선생님들은 일어나 차를 마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