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국토종단 14 - 4월 26일(일)
국토종단을 계획하면서 예기치 않은 상황,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는 상황에 몸을 맡기려 했었다. 그래서 세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대충 시작점과 끝점만을 정한 후에 무작정 길을 나선 것이다.
과연 어떤 식의 예기치 않은 상황을 바란 걸까? 잠잘 곳이 없어 남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며 겪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등을 생각했다. 그런 상황 속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며, 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진 계획대로만, 예상 가능한 대로만 하려고 했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시간에 맞춰서 사는 플랜맨이 될 수밖에 없더라. 물론 그렇게 사는 게 나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사회는 은근히 그렇게 살길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맘속에 정해둔 기준이나 기치관에만 맞춰서 살 경우, 그와는 정반대에 있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것을 볼 때 ‘저렇게 행동할 수도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려 하기보다, ‘저건 매우 잘못된 행동이야’라는 마음으로 교정해주려 하기 때문이다. ‘나와는 다른 것은 악이다’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약 졸업과 동시에 임용에 합격했다면, 정말로 나의 가치관으로만 모든 걸 좌우하려는 무서운 교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 어떤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아왔으며,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보아왔는지, 그리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선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난 일주일 동안은 그런 상황이 전혀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상황을 만들 용기가 없었다. 피곤하단 이유로 숙소는 여관을 바로 정했으며, 남에게 부탁할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나름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라남도에서 시작하여 북도까지 걸어왔으면서도, 유일하게 남는 감상이라곤 ‘잘 걸었다. 그 뿐이다’밖에 없는 것이다. 걷는 동안에 마라톤으로 여행하시는 할아버지와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단순히 서로를 응원해주는 것 외에 다른 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 여행은 여행사를 통해 온 것마냥 단조롭고 그저 계획에 따라 흘러만 가는 여행처럼 보이게 됐던 것이다.
막상 그렇게 떠나고 싶어서 떠났지만 여전히 한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래서 저번 한 주는 워밍업이긴 했어도 여행답지 않은 여행을 한 주였기에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에게 ‘누구냐 넌?’이라는 갑갑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2주차 여행을 시작하는 만큼 이번엔 좌절도 하고 실망도 할지라도 좀 더 부딪혀 보고,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들어 보려 한다. ‘생각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처럼 생각대로 여행해볼 것이다.
김제에서는 이틀을 머물렀다. 어젠 여관에 일찍 자리를 잡으며 못했던 빨래도 하고, 밀렸던 여행기도 한달음에 썼으며, 그 외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침대에 누워 푹 쉬었다. 김제에 이틀을 머물렀다곤 하지만, 아는 건 거의 없다. 형 친구를 만나 하룻밤 자기만 했을 뿐, 김제의 주요명소를 돌아다니거나, 김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건 김제에 안 좋은 인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루를 푹 쉬다보니 좀이 쑤셔서 그런 거였다. 누군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는 말을 하던데, 나는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로 어느덧 걷는 게 익숙해졌다는 걸 터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 바로 여관을 나섰다.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고 날씨도 걷기에 매우 좋았다. 비가 그치고 난 다음 날이라 날씨는 정말 좋았다. 햇살은 따스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그리고 어찌나 가시거리가 긴지 멀리에 있는 것들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여서, 마치 세상에 뽀샤시 처리를 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물들이 맑은 기운을 받아 제 빛을 내고 있었으며, 그 속을 걸어 들어가는 나도 나만의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익산을 지나서 논산까지도 한달음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한참을 23번 국도를 따라 걷다가 벽성대학교가 보이는 곳에서 이름도 없는 한적한 길로 빠졌다. 그곳은 국도와는 달리 2차선이어서 아무래도 차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경치를 맘껏 구경하며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 시간은 10시가 넘었기에 아무래도 큰 도로에서 교회를 찾는 것보다 이런 구도로에서 교회를 찾는 게 수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기에 처음에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작은 개척교회가 먼저 눈에 띄길 바랐다. 큰 교회에 비해 아무래도 가족 같은 분위기일 테니 자연스럽게 그분들이 사는 이야기, 마을 이야기도 자연스레 들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처음에 눈에 띈 교회는 중형교회인 ‘황산침례교회’였다. 이런 시골에 저렇게 큰 교회가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규모였고, 저 멀리서부터 보일 정도로 언덕 높은 곳에 지어져 있었다. 막상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규모만 큰 게 아니라, 신자 또한 많았으며 시설도 좋았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고 있지도 않다면서 저번 목포에서도 그렇고 오늘도 예배를 드리려 하는 게 의아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비신자라고 해서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법도 없거니와 이렇게 드리려 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사보다는 젯밥에 정신이 있다’는 말처럼 점심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를 댈 경우 흔히 신성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너무 불경한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이 이유야말로 잰 체하거나 멋들어지게 꾸미지 않는 진솔한 마음이라 생각한다. 둘째는 함께 밥을 먹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의 주요 컨셉은 ‘걸어서 내 나라를 남에서 북으로 종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법에 관한 것일 뿐, 알맹이는 빠져 있다. ‘그렇게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면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라는 건 쏙 빠져 있으니 말이다. 바로 그 뚫려 있는 빈칸엔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리고 지금껏 놓치며 살아왔던 가치들을 알아보고자 한다’는 내용이 들어간다. 그러려면 어떻게든 사람들과 마주쳐야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럴 때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는 건 가장 쉬운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셋째는 교회별로 다른 예배스타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열혈 신자로 교회의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다녔고, 군대에서 군종이란 직책을 받아 대대 군인들의 신앙심 향상을 위해 봉사했던 적도 있었다. 이처럼 다년간 교회에 다닌 경험이 있기에 예배 스타일의 비교, 목사님 설교 말씀이 어떤지에 대해 나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비신자가 되었음에도 교회를 찾아가려 하는 것이다.
성경 구절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하느님의 심판을 당하는 내용이었다. 교회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여기서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이 구절을 가지고 목사님은 ‘하느님을 잃어버림=절망’이란 공식으로 정의하셨다. 하느님이 아담을 만들 땐 하나의 규율만을 지키도록 하고, 나머지엔 완벽한 자유를 주었다. 그 규율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따먹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뱀의 꾐에 빠진 이브의 유혹에 빠져 금기를 범하게 되고 그에 따라 하느님의 눈을 피해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처럼 숨바꼭질을 하게 된다. 당연히 그에 따라 아담은 깊은 절망감에 빠져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금기를 범한 아담에 대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먼저 찾아와주셨고 희망을 주셨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절망에 빠질 때 하나님은 어김없이 찾아오신다는 걸 믿고, 희망을 잃지 말고 살라고 결론을 내려주시며 말씀은 끝이 났다.
분명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가뭄의 단비처럼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말씀이다. 낙담하고 체념하여 주저앉고 싶을 때, 세상의 창조자인 하느님이 내 편으로 남아 있다는데 그 어느 누구가 싫다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이 말씀에는 ‘어거지’가 있다. 하느님이 다시 아담을 찾아간 것은 그를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죄를 심판하기 위해서다. 고로 ‘하느님의 찾으심=희망’이란 공식은 억지로 껴 맞춘 결말에 불과한 것이 된다. 아담이 징계를 받아 인간세상의 온갖 고초를 감당해야 했듯 ‘하느님의 찾으심=더 큰 절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절망조차 시간이 흐른 후에 결과적으로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예수님의 핍박과 못 박히심이 그 당시엔 곤욕이고 치욕이지만, 큰 그림에선 인류 전체를 구원하는 역사라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감당의 시간이 아담을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 탈바꿈시켰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위에 제시된 구절만으로 ‘희망’이란 메시지를 전하는 건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구절 어디에도 ‘새옹지마’의 이야기와 같이 인생이 시시때때로 변해가는 이야기는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구약의 냉정한 유대민족의 신’을 ‘신약의 인자하고 세계보편의 신’으로 해석하고 싶으셨던 걸 터다.
하지만 그 때 보여준 동영상은 내 심금을 울렸다. ‘닉 부이치치Nicholas James Vujicic’라는 손과 발(한쪽 발은 있지만 그 발은 지느러미 같은 역할을 함)이 없이 몸과 얼굴만 있는 외국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동영상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꽤 많은 지면이 필요하기에,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여행기에 마저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