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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4. 2017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2009년 국토종단 8 -  4월 22일(수)

오늘은 국토종단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이제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지도 보는 법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조금 익숙해졌다고 방심한 탓일까. 그 자신감에 된통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은 이래저래 걸으면서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최악의 날이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오늘은 가야 할 목적지가 분명하니 좋다. 하지만 과정이 힘들거란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출발할 때부터 별로였다. 잠을 뒤척였기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몸은 무겁고 의욕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니 조금 생기가 돌았다고나 할까. 그런 생기로 힘차게 영광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김밥을 사서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내가 점차 멀어지고 있는데도 김밥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더라. 어쩌겠는가? 그저 점심을 식당에서 먹자는 생각으로 나름의 위안을 삼으며 가던 길 계속 가는 수밖에. 

하지만 그게 낭패였다. 앞날을 그 누가 알겠는가ㅡㅡ;; 내가 계획했다 할지라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계획은 변경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런 여행에서는 계획 자체가 하나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라는 바람에 불과할 뿐이다. 언제든 새로운 상황이 닥쳐올 것이고 그에 따라 계획은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걸 테다. 3시가 넘어서야 점심을 먹게 될 줄은 그 땐 정말 몰랐다.               



▲ 영광에 왔는데, 굴비를 먹어보진 못했다. 아쉽게도~




도보여행자들이여 4차선 도로를 피하라

     

오늘은 23번 국도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더 빨리 갈 수 있는 일반도로가 있는 데도 헤맬까봐 쉬운 길을 택한 거다. 하지만 그 선택이 비수가 되어 돌아올 줄이야. 

영광에서 고창군 경계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2차선 도로였고 민가를 사이에 둔 한적한 길이어서 걷는 기분이 남달랐다. 늘 생각했던 도보여행이 그대로 재현된 듯했다.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았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았다. 그러니 오로지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창에 들어서니 모든 게 변했다. 길도 4차선으로 넓어졌고 고속도로에서나 보았던 은색의 소음방지막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에 오후로 들어서면서부터 시원하게 불던 바람도 그쳐 뜨거운 햇볕만이 작렬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햇볕은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궜고 쫙 펼쳐진 아스팔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열기는 그대로 나에게 흡수됐다. 햇볕의 이중고를 견디며 걸어가고 있으니 아주 미칠 지경이더라. 



▲ 다음뷰에서 본 23번 국도.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닌 자동차만을 위한 길이다.



그런 상태일지라도 자연을 보며 걷는 재미라도 있었으면 참을 만 했을 거다. 하지만 목포에서 무안으로 향하던 국도 1번 길이 그랬듯, 이 길도 끝없이 쫙 펼쳐져 있다 보니 반복해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들더라. 내 인내심은 그렇게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국도도 4차선으로 확장한 곳이면 고속도로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예전에 만들어진 길은 마을을 지나고 굽이굽이 돌아갔던 데 반해, 지금 새롭게 만들어진 4차선 도로는 오로지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직선화하여 마을을 지나가지도 굽이굽이 돌아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4차선 도로는 차에겐 최적의 도로지만, 사람에겐 최악의 길일 수밖에 없다. 여태까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을 막상 걸어보며 제대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몰랐기 때문에 했던 선택으로 인해 된통 당하고 있다. 그동안 헤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방도나 일반도로 가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았다는 게 이 순간은 엄청 후회가 되더라. 편한 국도만을 고집했기에 그런 안일주의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거다.                



▲ 어쩔 텐가. 그래도 왔으니 계속 가야 하는 것을.




오후 3시에 첫 밥을 먹다

     

아침도 굶었지, 끝도 없이 쫙 펼쳐진 도로는 지겹도록 계속 되지, 어쩌다 차들이 지나가면 그 굉음에 온 몸에 신경이 곤두서지, 이와 같은 삼중고 속에서 걸으니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중간에 쉬면서 여관에서 챙겨온 쿠키(체육대회에 온 선수들에게 주려고 쿠키를 카운터에 비치해놓고 있었는데, 그걸 두 주먹 집어 왔다^^)를 먹고 육포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아~ 언제 밥을 먹게 될까? 

3시가 넘어서야 고창 시내 근교에 도착할 수 있었고 드디어 음식점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의 흥분이란^^ 신기루를 보는 듯 했다고나 할까. 먹을 것이 풍부하다던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뭐든 사먹을 수 있는 돈까지 있는데 식당이 보이지 않아 굶어 죽을 뻔 했다. 이런 게 바로 코미디중 상 코미디다. 

맨 처음 보이는 기사식당에 들어갔다. 한참 굶은 후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맛있게 밥을 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뱃대지’가 불렀는지 그렇지도 않더라. 반찬은 형편없었으며 된장찌개는 싱겁고 맛도 이상했다. 여태껏 지나온 기사식당들이 참 좋은 곳이었다는 걸, 이런 극과 극의 체험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무리 맛이 형편없어도 어쩔 텐가 한참을 굶었으니 맛있게 먹어야지^^ 밥을 먹고 나니 활기가 돌고 목적지에도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아졌다. 이제 두 시간 정도만 더 걸어가면 신림에 도착한다.^^ 기쁨이란 힘듦에 비례하여 느껴지는 감정인가 보다~               



▲ 아침과 점심을 굶은 상태로 무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됐다.




국토종단 최초로 여관이 아닌 곳에서 신세를 지다

     

그 곳에서부터 소라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오늘 야자에 빠질 수 있으니 만나자는 문자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니 당연히 좋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소라네 집이 교회와 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에 도착하여 씻고 보러 가면 예배 시간 전에 올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교회로 오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기는 싫단다. 하는 수없이 다음에 고창에 놀러오면 그 때 보기로 했다. 한참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으며 걸으니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 신림교회가 보이더라. 신림교회에 도착한 시각은 5시 15분이었다. 



▲ 드디어 신림교회가 코앞에 보인다.



짐을 내려놓으려 바로 교육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때 교육관 문이 열리더니 천길영 목사님께서 나오시는 게 아닌가. 아주 극적인 타이밍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어찌할지를 몰라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다짜고짜 “목사님 하룻밤만 신세질게요.”라고 이야기 꺼내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목사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몰라 긴장은 됐지만 걱정은 없었다. 다행히도 바로 승낙해 주시더라. 

이로써 처음으로 여관이 아닌 곳에서 늘 그렇게 꿈꾸어 왔던 누군가에게 신세지는 상황에서 자게 된 것이다. 물론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부탁할 정도로 용기를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부탁하고 승낙 받았다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꿈꿔왔던 대로 한 걸음씩만 나갈 수 있으면 그걸로 이미 만족이다. 

교육관에 들어가 바로 짐을 풀고 땀으로 범벅된 몸을 풀기 위해 샤워를 했다. 무릎도 아팠는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통증이 완화되더라. 머리끝까지 치밀던 화도 그 개운한 기분에 사라졌다. 오늘은 잘 곳을 구하러 옥신각신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기쁘던지. 

3년 만에 수요예배를 드렸다. 신림교회는 여전했고 가족 같은 친화력도 여전히 좋아보였다. 새벽기도에 참여해야 했기에 여행기를 정리할 시간도 없이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경험을 통해 알아보기 쉬운 국도길만 따라다닌 나의 한계를 여실히 볼 수 있다. 그만큼 떠났으면서도 변하고자 했으면서도 안주했고 머뭇거렸던 나의 고지식함을 엿볼 수 있다. 내일부터는 지도를 잘 보고 4차선 국도로는 가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여행의 목적은 목적지에 하루라도 빨리 도착하려는 게 아니라,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새로운 세계를 맘껏 느껴보기 위해서다. 그러니 좀 더디더라도, 좀 헤매더라도, 좀 골탕 먹더라도 그걸 무서워하지 말고 즐겁게 맞이해봐야겠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즐거운 도보여행이 될 수 있도록 경로를 잘 다듬어볼 생각이다.                



▲ 고창신림교회는 2005년에 동아리에서 수련회를 왔던 곳이라 알게 됐다.




거리의 인연 – 뛰는 놈 위에 나는 분

     

아참! 고창 시내에 접어드는 길에서 배낭에 ‘함평나비축제’라는 깃발을 꽂고 뛰어오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분은 2000Km 마라톤을 하시는 분이었다. 함평에서 시작해서 전국을 다 돌고 다시 함평으로 돌아오는 길이란다. 

그 분을 만나기 전까진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분 앞에 서는 순간 난 아무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고나 할까. 더욱이 그 분은 60살이 넘어 뵈셨으니 그 분의 포스에 내가 어떻게 미칠 수가 있을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 물론 내가 ‘뛰는 놈’의 반열에 낄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세상엔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도 이번 여행을 계기로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더 열심히 날갯짓 해야겠다. 이 여행이 잘 끝난다 해도 뿌듯해하긴 하되 만족은 하지 말아야지. 아직 세상엔 할 일이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으니 말이다. 


“할아버지 완주 잘 하시고요. 건강하세요. 할아버지를 통해 정말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점심 5.000원 / 총합 5.000원)



▲ 고창은 청보리밭과 고인돌이 유명한데, 제2의 고향이라 하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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