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an 16. 2017

고생 끝에 낙이 올까

2009년 국토종단 12 -  4월 24일(금)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다. 그래서 우의를 입고 걷고 있는데, 솔직히 비가 올 것 같기도 하고, 안 올 것 같기도 하더라. 공기도 잘 통하지 않아 엄청 덥게 느껴졌기에, 우의 상의만 벗고 걷게 됐다.                



▲ 드넓은 김제평야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을 간다.




거리의 인연 – 경쟁이 아닌 동지의 마음을 확인하다

     

오후에 신태인 부근에서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을 만났다. 영광에서 고창으로 여행할 때 ‘함평나비축제’란 깃발을 달고 뛰며 여행하시는 할아버지를 만난 이후 두 번째다. 나는 김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그 분은 정읍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쌩하니 지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분도 저렇게 혼자 여행하는 분이신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서로 방긋 미소를 지어 보내줬던 것 같다. 그렇다고 원래 알던 사람도 아니니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통성명을 하기에도 매우 어설픈 상황이었다. 그렇게 서로 지나치려던 순간에 그 분은 자전거의 방향을 틀어 내 쪽으로 오시더라. 이게 바로 동병상련이 만들어낸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분은 서울에서 여행을 시작했고 3일 만에 여기에 왔다고 하더라. 우선 첫 번째 목적지는 땅끝마을까지 가는 것이란다. 막상 거기까지 가보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부산을 경유하여 속초까지 U자형으로 여행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길에서 만난 인연답게 나도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경위에 대해 말하고 철원까지 걸어서 가볼 생각이라고 대답해줬다. 

자질구레하게 긴 말을 하거나 서로를 파고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인생 자체를 즐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나의 마음이 그 사람의 이야기에 투영된 해석일 터다. 그만큼 ‘여행’이란 공통분모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얘기가 다 끝난 후엔 자연스럽게 사진기를 세워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고서 서로를 응원한다는 의미로 자신도 먹을 게 부족할 텐데도 체력을 보충하며 걸으라고 쵸코바를 주더라. 그 마음이 어찌나 고답던지 나도 육포를 주며 함께 나눴다. 이런 게 바로 ‘사람이 사는 세상’의 감흥이라 할 수 있다. 무한 경쟁이어서 너를 밟고 나만 살아야 하는 ‘살아 있는 전쟁터’가 아니라, 서로를 응원하며 꿈꾸던 것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 거리의 인연을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많은 걸 알 순 없지만, 공감이 있고 동감이 있으니.




배낭의 배움학 1 - 배움엔 시간과 함께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비가 많이 온다던데 그냥 흐리기만 하다. 정읍역 쪽을 벗어나니 비가 한 방울씩 내릴 뿐 본격적으로 내리진 않더라. 하늘만 잔뜩 찌푸려 있었다. 거기에 바람도 불지 않으니 어찌나 덥던지. 30번 국도로 접어들었을 때 기어코 우의를 벗어서 언제 비가 시작될지 모르기에, 배낭에 넣지 않고 배낭 위에 얹고서 걸었다. 

그런데 그렇게 걷다보니 배낭이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그제야 알겠더라. 배낭의 구조에 대해 말이다. 배낭은 위아래에 수납공간이 있다. 처음엔 단지 수납공간을 많게 하려고 나눠놓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래 넣는 짐의 무게는 골반 쪽에 실리고, 위에 넣은 짐의 무게는 어깨 쪽에 실린다. 우의는 원래 아래쪽에 넣고 다녔기에 그 무게는 당연히 골반 쪽에 실렸었는데, 그걸 배낭 위에 얹어 놓은 것이니 골반 쪽은 전혀 무리가 가지 않되 어깨는 평소보다 두 배의 무게를 지게 된 것이었다. 더욱이 비가 온다고 하여 아래 쪽 물건까지 빼어 비닐로 감싸고 그걸 위쪽에 넣어뒀기 때문에 어깨에 실리는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던 거다. 



▲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배낭은 그냥 짐을 넣고 다니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의 동반자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그러한 사실을 김제에 들어오기 전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하루 종일 걸어서 몸이 힘드니까 배낭도 더욱 무겁게 느껴지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지, 배낭의 구조에 대해선 전혀 의심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김제 시내에 들어와 잠시 쉬려고 짐을 내리고 보니, 어깨는 엄청 아픈데 반해, 골반 쪽은 멀쩡하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그런 상황을 알게 됐다. 내가 이렇게 둔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배낭 꾸리는 요령도 익히게 되었다. 짐을 잘 분배하여 위아래에 무게가 골고루 나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곳에 집중적으로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고르게 무게를 나눠지게 되기에 한결 수월해진다. 이것이야말로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익힌 두 번째 지혜라 할 수 있다. 시행착오를 통해 익히는 만큼 시간도 필요하고 몸은 고되지만 그만큼 제대로 익히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즐거운 아픔’, ‘유쾌한 아픔’이라 할 수 있다.                



▲ 배낭을 잘 꾸리는 것도 즐거운 여행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배낭의 배움학 2 - ‘고생 끝에 낙이 온다와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의 함의

     

그렇게 본다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어떤 고생을 했기 때문에 인생이 술술 풀려 돈도 벌고 지위도 얻는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떤 고생을 통해 삶을 보는 안목이 바뀌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이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일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해봤다는 경험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예전엔 전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던 것이 중요한 것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바뀌는 전복적인 사유가 가능해진다. 삶의 문법이 바뀌니, 예전엔 불만 가득하기만 했던 현실이 더 이상 불만스럽게 느껴질 이유도, 자기비하를 해야 할 이유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생의 순간을 지나야만 인생이 술술 풀리는 시기에 다다를 수 있다’고 풀이한다. 바로 그때 ‘고생’이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참고 견뎌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풀이할 수 있다면, ‘고생 속에서 나 자신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고 풀이할 수 있고, 그때 ‘고생’이란 ‘자신을 꽁꽁 깜싸고 있던 허울과 허영심을 깨기 위한 순간’이라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현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고 있는 반면, 후자는 긍정 내지는 가능성의 측면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맘껏 부릴 때 쓰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얼마나 왜곡된 말인지도 알 수 있다. 그 때의 고생이라는 것도 누군가가 짐 지어 놓은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온갖 허명을 깨기 위한 것이어야 하니 말이다.                



▲ 김제의 대표적인 명소인 벽골제를 지나오면서도 들어가볼 생각을 못했다는 게 이번 여행의 한계다.




김제 XXKm’라는 표지판의 기준점은 어디일까? 

    

4일째 여행을 하며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김제 XXKm’라는 표지판에서 ‘XX는 어디서부터 잰 거리일까?’하는 것이었다. 

가설은 크게 두 가지로 세웠다. ‘김제라는 도시의 외곽에서부터 잰 거리’라는 것. 즉 ‘김제 1Km’라고 써있다면, 1Km만 가면 정읍을 지나 김제라는 도시의 경계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시내를 중점으로 잰 거리’라는 것. 즉, 1Km를 가면 드디어 시내권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가설엔 문제가 있었다. 시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일 뿐 정식으로 구획 지어진 공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시내의 넓이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그런 가설들을 세운 채 길을 걸어보니, 드디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중심관공서를 기준으로 측정한 거리였던 것이다. 김제라면 김제시청을 기준으로, 무안이라면 무안군청을 기준으로 잰 거리였다. 즉, ‘김제 1Km’라는 표지판을 보았다면, ‘1Km 앞에 김제 시청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표지판에 표시된 거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숙박업소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킬로수만 보고 지레 겁에 질릴 필요는 없다는 말씀^^               



▲ 이정표에 나타난 남은 거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여행 중에 알게 됐다.




나를 위한 여행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다

     

김제는 형이 살고 있는 기숙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막연히 그곳에서 쉴 수 있겠거니 기대하고 왔다. 그런데 하필 목요일 저녁부터 집에 가서 쉬고 있다는 게 아닌가. 이런 게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것인가ㅡㅡ;; 간만에 돈 안 쓰고 쉴 수 있으려나 했는데 글렀다. 

이젠 최대한 돈을 아끼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제에선 하루를 쉬었다 가기로 맘먹었으니 두 번의 밤을 지내야 한다. 김제에 들어설 때만 해도 ‘몸이 힘드니까 금요일 저녁은 여관에서 지내고 토요일 저녁에 찜질방에서 보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김제 시내에 들어서니 바로 찜질방이 보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맘이 확 바뀌었다. 줏대는 눈꼽만치도 없는 나~ *^^* 

그래서 찜질방에서 하루를 지내고 토요일에 여관에서 지내기로 급히 생각을 바꾼 것이다. 물론 돈을 절약하는 차원이라면 두 번 다 찜질방에 보내야 하지만 빨래도 해야 하고 모처럼만에 푹 쉬고 싶었기에 돈을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나 좋으라고 떠난 여행인데 너무 돈돈하다가는 주객이 전도되니 말이다. 돈을 절약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거겠지라고 스스로 합리화해본다~               



▲ 그래도 오늘은 701 지방도를 따라 걷는 길은 호젓하니 기분이 좋았다.




형의 도움으로 편히 잘 수 있게 되다

     

찜질방에 가기 전에 저녁부터 해결해야 했다. 찜질방을 지나쳐 한참 식당을 찾아서 올라갔다. 점심도 빵으로 대충 때운 터라 저녁은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헤매다가 들어간 곳은 소음식 전문점이다. 저녁은 최대한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육회 비빔밥을 시켰다. 배가 고프기 때문인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더라.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의 맛있었다. 

밥을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전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거다. 누군가 하고 받아봤더니 형의 친구였다. 다른 데서 자지 말고 그 형네 기숙사에서 같이 자자는 것이다. 우리 형이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챙겨주라고 했을 것이다.^^ 아까 전까지 그 문제로 심하게 고민 ‘때리고’ 있던 중이었으니, 그 전화가 무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생각도 못했는데 그렇게 한 순간에 자는 문제가 해결되니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다. 일 분, 일 초도 알 수 없는 삶이란^^ 이래서 삶은 흥미진진한 건가보다. 아무튼 그 덕에 아무 걱정 없이 밤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몸은 피곤해서 잠이 올 것 같은데 형이 책을 보며 한 시가 넘도록 자지 않는 바람에 좀 뒤척였다. 그래도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마음은 여유가 있었다.      


(아침 2.000원, 점심 2.000원, 육회비빔밥 6.000원, 편지지 2.000원, 멘소래담 3.000원 / 총합 15.000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